미완의 악보로 남기기

- 끝까지 닫지 않는 선택

by 서히

작업을 하다 보면 어떤 화면은 끝내 매끄럽게 정리되지 않는다.
선은 여전히 어딘가로 열려 있고, 색은 완전히 섞이지 않은 채 층을 이룬다.

조금만 더 손을 보태면 보기 좋게 갈무리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마지막 한 번의 개입을 미루는 순간이 있다.

예전에는 그 지점을 견디지 못했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는 어딘가 모자라 보였고,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작업이라 부르기 어렵다고 느꼈다.

화면은 늘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업을 반복할수록 나는 스스로 묻게 되었다.
정말 모든 화면에 단호한 마침표가 필요한지.
어떤 작업은 쉼표로 남겨두는 편이 더 정확하지는 않은지.

음악을 배울 때 나는 악보에 적힌 음표만 읽지 않았다.
그 사이의 여백, 아직 울리지 않은 자리까지 함께 보려 했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공기 중에는 잔향이 남는다.

악보는 소리를 고정하는 장치라기보다,

소리가 머물 수 있는 틈을 남겨두는 구조에 가깝다고 느꼈다.

작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선을 정렬하고 색을 하나의 해석으로 닫아버리기보다,

어딘가 열린 상태로 남겨두는 것.

그것은 미숙함이라기보다, 아직 끝까지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나는 이제 어떤 화면을 ‘완성’이라 선언하기보다,

‘여기까지 두겠다’고 생각하는 쪽에 익숙해졌다.

더 나아갈 수도 있었지만 멈춘 자리.

충분히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남겨둔 간극.

그 비어 있는 지점이 화면의 숨이 머무는 자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의 화면에도 여전히 맞춰지지 않은 조각들이 남아 있다.
선은 조금 열려 있고, 색은 완전히 수렴되지 않았다.

나는 그 상태를 고치지 않는다. 이 화면을 하나의 미완의 악보처럼 두기로 한다.

언젠가 다른 시간에 다시 이 앞에 설지도 모른다.
혹은 끝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까지 남겨두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자연스러운 마침표다.


미완으로 남겨두는 일은 포기라기보다,
지금의 감각을 닫지 않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화면을 서둘러 완결하지 않는다.
조금 열린 채로, 다음 시간을 기다리는 악보처럼 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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