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이름의 지지대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의 힘

by 서히

우리는 종종 삶의 의미를 거대한 순간에서 찾으려 한다.
특별한 사건, 강렬한 감정, 결정적인 깨달음 속에 비로소 ‘살아 있음’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은
그런 특별한 정점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사소한 반복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흐트러진 주변을 정리하고,
몸을 움직여 밥을 먹으며 하루를 이어가는 일.

이 모든 것들은 너무 평범해서 거의 의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단순한 행위들이 이어질 때,
흐트러져 있던 마음은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생각 속에만 머물 때,
마음은 쉽게 불안으로 기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확인할 수 없는 미래,
붙잡을 수 없는 가능성들이
머릿속에서 끝없는 불안이 상영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불안은 현실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시작된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우리가 다시 생활의 감각으로 돌아오는 순간,
불안은 힘을 잃는다.

손을 움직이고,
몸을 쓰며,
지금 해야 할 아주 작은 일을 해나갈 때,

마음은 다시 지금 이 자리로 착지한다.


어쩌면 일상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우리를 현실에 붙들어 두는 하나의 장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지루함이라 부르거나
무의미하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그 반복이야말로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단단한 구조다.


삶은 거대한 의미 속에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반복들 속에서 비로소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기보다,
다시 생활로 돌아오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을 마시고,
몸을 움직이고,
지금의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이 된다.

일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지된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붙잡아 주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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