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딪힘과 파열이 남기는 결에 대하여
소음은 언제나 파열을 동반한다.
단순히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미세한 파동과 균열의 집합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소음이
내 삶을 무너뜨리고 흔들어 놓는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 소음이 남기고 간 것들이 화면 위에서 ‘결’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결은 소리가 남기는 흔적이다.
파열이 지나간 자리에서 보이지 않게 자라나는 미세한 표면이다.
우리는 흔히 고요 속에서 표면이 정제되고 정리된다고 생각하지만
결은 그 반대다.
결은 언제나 부딪힘과 흔들림, 상처와 마찰 속에서만 생긴다.
두 존재가 만나 흔들리면
그 흔들림이 표면을 긁고 지나간다.
그 순간 생기는 미세한 균열들이 시간이 지나며 결을 이룬다.
결은 상처이면서 동시에 상처가 지나간 자리에서 새로 생겨나는
표면의 첫 형식이다.
많은 이들이 고요 속에서 자기의 중심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반대였다.
나는 소음 속에서 나를 들었다.
아이의 울음, 기계의 소리,
일상의 부딪힘, 감정의 마찰,
말의 파열음…
그 모든 소음이 처음엔 나를 흔들고 무너뜨렸지만
그 흔들림이 지나간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새로운 결이 남아 있었다.
그 결을 보는 순간, 나는 알았다.
소음은 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든다는 것을.
내 그림 속 빛 조각들,
새싹처럼 솟구치는 선들,
중첩된 레이어 아래에서 은은히 남아 있는 흔적들.
그 모든 것은 소음이 지나간 뒤 남긴 결의 언어다.
결은 처음부터 있지 않다.
먼저 파열이 있고,
그 파열에서 생긴 틈을 통해 빛이 스며든다.
그 빛이 흔들리며 색과 선을 바꾸고
표면을 다르게 밀어 올리면서 새로운 결이 형성된다.
소음은 나를 흔들고 깨뜨리지만
그 깨진 자리에서 자라는 결은 언제나 새로운 생명의 첫 형식이었다.
결은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누군가의 말,
어떤 표정,
부드러운 손짓,
예상치 못한 상처,
날 선 침묵까지도
모두 결이 된다.
어떤 만남은 표면을 따뜻하게 만들고,
어떤 관계는 표면을 거칠게 남긴다.
결은 보이지 않지만
표면에서는 절대 숨길 수 없다.
그것이 관계가 남긴 가장 깊은 흔적이다.
결은 형태가 아니라 감각이다.
그래서 캔버스에서는
아주 미세한 변화들로만 드러난다.
색의 농도 차이, 선의 떨림과 속도, 멈추는 지점이 남기는 공기, 겹쳐진 레이어의 두께, 빛의 가벼운 잔향 , 파열 뒤에 솟는 미세한 선 하나 등.
이 모든 것이 소음이 지나간 뒤 남기는 결의 기록이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늘 깨닫는다.
내가 그리고 있는 것은 ‘형상’이 아니라,
소음의 결이 어떻게 남는가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을.
소음은 나를 흔들어 놓지만
결은 나를 다시 세상에 이어준다.
소음은 균열을 만들고
결은 그 균열을 표면의 새로운 질감으로 바꾼다.
소음은 나를 파열시키지만
결은 그 파열에서 새로운 생명을 틔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예술은 결국
소음이 남긴 결을 읽어내고,
그 결을 다시 세계와 연결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결은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나를 다시 만드는 표면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