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로 가지고 간 깜짝 선물

사무실에서의 '진짜' 직장 라이프, 드디어 시작!

by 이서후

“안녕, Ju! 다들 네가 만들어 준 광고 이미지를 좋아하고 있어. 빨리 해 줘서 고마워. 다른 프로젝트들 때문에 바쁠 텐데…. 아 참, 이제 곧 취리히로 돌아올 거라며? 그럼 드디어 2주 뒤에 진짜로 만나는 거야?”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브리나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YV의 직원들 중, 그녀는 화상 통화로 먼저 만나게 된 동료였다. 두 살배기 아이의 엄마였던 브리나는 동화처럼 포근포근한 느낌을 주는 내 그림 스타일을 좋아했다. 그때는 아직 회사의 브랜딩이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나는 브리나와 함께 다양한 스타일의 광고 이미지를 만들어볼 수 있었다. 물론 주된 프로젝트는 사수님인 재키, 개발자인 릴카와 함께 웹페이지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브리나와 작업한 ‘지속 가능한 크리스마스 선물’ 가이드 책자.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의 북극곰이 특히 인기가 많았다.


브리나의 말처럼, 내가 스위스로 돌아가야 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곧 시작될 새로운 학기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YV의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더 설렜다. 스위스에 도착하면 새로운 학생 취업 비자를 신청해야 할 것이다. 비록 주 당 15시간 밖에 일하지 못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계속 이 훌륭한 회사와 인연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테니, 이번에는 부디 비자가 나와 주기만 한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거리로 일하면서 화면 상으로만 만나던 사람들을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화상 통화로 일하는 것에 이제야 좀 익숙해졌는데, 사무실에 가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컴퓨터의 폴더들을 정리하던 중, 몇 주 전에 했던 일러스트레이션이 눈에 띄었다. 외부 UI 디자이너 때문에 무산된 마터호른 그림이었다. 문득 재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Ju, 나 이 일러스트레이션 진짜 좋아! 티셔츠로 만들어서 입고 다니고 싶을 정도야. 웹사이트가 아니더라도, 이걸 어떻게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자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번뜩 스쳤다. ‘그래, 이걸로 진짜 티셔츠를 만들면 되잖아!’


정말 엉뚱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뭐 어떤가. 재미있는데. 안 그래도 나를 많이 도와준 치프와 재키에게 뭐라도 선물을 하고 싶었던 참이었다.


스위스로 돌아갈 때까지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배송까지 받고 가려면 빨리 준비해야 했다. 우선 인터넷으로 티셔츠를 주문 제작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봤다. 그리고 티셔츠를 고르고, 그것에 맞게 일러스트레이션을 손 보았다. 그런데 신나게 다 만들어 놓고서 주문을 버튼을 누르려고 보니, 이런. 생각보다 제작비가 꽤 많이 들었다.


허허, 그렇군. 역시 뭘 하려고 해도 자본이 뒷받침해 주어야 하는구나.’ 슬픈 깨달음이었다. 어쩔 수 없이, 결국 만드는 비용은 부모님께 지원을 받아야 했다. 물론 두 분께도 같은 티셔츠를 하나씩 만들어드리는 대가로. (부모님께서 내가 만든 티셔츠를 가지고 싶어 하셔서 다행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마터호른의 만년설이 시원하게 들어간 여름용 반팔 티셔츠가 완성되었다.


좌측: 등판 쪽에 들어간 일러스트레이션의 모습. 우측: 티셔츠를 입고 계신 등 모델 아부지.

흠. 막상 재키와 치프에게 티셔츠를 주려고 생각하니까 조금 창피했다. 만약 그들이 내 선물을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리고 이 티셔츠를 줄 때는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제 마음입니다?’ 아냐, 아냐. 끔찍하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다시 새가슴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결국 취리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심장이 떨렸다. 심지어 이런 고민까지 들었다. ‘이걸 줘야 해, 말아야 해? 주고 욕먹으면 안 주는 게 더 낫지 않나? 아직 안 늦었잖아?하지만 곧 본전 생각이 뒤따라 왔다. 우 씨, 그럼 돈 들여 애써 만든 건 어떡하라고!


1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을 거치며, 결국 들었던 비용을 생각하며 선물을 주기로 다짐했다. ‘싫으면 알아서들 처리하시겠지. 뭐가 됐든 난 내 진심을 담은 선물을 한 거야. 그럼 된 거지, 안 그래?’



비행기는 난기류를 뚫고, 내 마음은 뒤늦게 밀려오는 창피함을 뚫고, 그렇게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스위스에 도착했다. 우선 취리히에 있는 나의 작은 방에게 그동안 잘 있었냐고 인사를 했다. 벌레 몇 마리가 죽어 있는 것 빼고는 꽤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시차 적응에 헤롱 거리며 간신히 짐을 풀고 나서, 치프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사무실로 향했다.


‘왜 면접 보러 가는 것보다 더 떨리는 거지?’ 심장이 둥둥 울렸다. 입술을 꼭 깨물고 사무실 문을 두드리자, 치프가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며 크게 외쳤다. (부끄러워….)


“우와, Ju! 이게 얼마 만이야! 드디어 YV에 온 걸 환영해!”


얼마만이긴요. 어제 통화했잖아요. 괜히 쑥스러워서 그냥 하하 웃으며 네, 안녕하세요, 했다. 재키와 릴카, 브리나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로날도가 그중 하나였다. (첫인상은 좀 무서웠지만 알고 보니 재밌는 친구였다. 다음 글에서 얘기하겠지만, 그 친구는 곧 나만 보면 사사건건 놀리는 재미에 들리고 말았다. 덕분에 내가 얻은 별명이 많다.)


사람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는 척하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다. 다들 친절했는데도 왠지 모르게 등골에서 식은땀이 났다. 막상 얼굴을 보고 한 공간에 있으니, 일하는 느낌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날 치프와 재키가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줘서 긴장은 금세 풀렸다. 한두 시간은 금방 흘렀고,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그때를 틈타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드디어 작전 개시!’


사무실이 한산해진 틈을 타서, 준비한 선물을 치프와 재키에게 전했다. 그리고 반응은….



“어머머 Ju! 땡큐!! 잇츠 어메이징!!”


휴우. 마터호른 산신님 감사합니다. 고맙게도 치프와 재키가 내 선물을 마음에 들어했다. 심지어 감동을 받은 얼굴로 나를 안아주었다! 아무도 자기에게 이런 선물을 해 준 적이 없었다는 그들의 말에 내 코끝이 다 찡해왔다.


깜짝 선물을 성공적으로 전하고서 나중에 집에 돌아오는데, 트램 안에 마터호른 이미지를 쓴 여행 광고가 보였다. 자연스럽게 일러스트레이션을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후훗. 이제는 그 프로젝트에 여한이 없군.


스위스에서의 ‘진짜’ 직장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펼쳐지는 온갖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얼른 나누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위스의 직장 생활의 첫 주에 벌어진 일과, 새로 만난 친구들과의 일화로 돌아오겠다.


다음 글: 14. 비자 때문에 상사와 결혼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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