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오리알의 위력

벼랑 끝에 몰리고서야 진짜 목소리를 찾다

by 이서후

평화로운 오후, 치프가 나를 불렀다.


“Ju,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좋은 소식은 네 학생 비자 문제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거야. 아마 이번 주 내로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대신 이번에도 서류심사가 좀 깐깐하기는 해. 아마 우리 회사 변호사님이 너에게 연락할 거야. 그리고 안 좋은 소식은…. 재키가 그만뒀다는 거야.”


내 사수님이 그만두신다니? 나는 충격받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치프는 한숨을 내쉬더니, 나름 예상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몇 주 전부터 재키가 회사 업무에 별로 집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재키는 결국 개인적인 사정으로 직장을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치프는 왜 이렇게 디자이너 구하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 취업 비자 문제도 그랬지만, 지금껏 YV에서는 UX 디자이너를 구하기 위한 무진 노력을 해 왔기 때문이다. 첫 번째 디자이너는 릴카와 성격적 마찰이 심해서 나갔고, 두 번째 디자이너는 예상보다 실력이 좋지 않아서 해고됐고, 세 번째로 만난 디자이너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개인 사정으로 이직을 했고, 그다음 만난 디자이너가 재키였는데 그녀 또한 몇 달만에 그만두게 된 것이다. (YV에서는 이 사태를 두고 ‘디자이너의 저주’라고 괴담이 돌 지경이었다.)


“재키랑 나누던 업무를 당분간 혼자 감당할 수 있겠어, Ju? 물론 네 학업이 먼저야. 그러니까 일이 너무 많으면 꼭 얘기해. 우리도 새로운 디자이너를 빨리 뽑도록 노력할게.”


치프의 말대로 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내가 디자인 업무를 전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학생 비자로는 겨우 주당 15시간씩 일하면서 그래픽 디자인과 UI 디자인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 일단 내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YV에 더 큰 혼란이 올 것 같아서, 치프에게는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자 치프는 내가 잘할 것을 믿는다며 빙그레 웃었다. 안심하는 듯한 그의 얼굴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망했다. 과제도 많아 죽겠는데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혼자 다하지? 이러다가 학점도 못 따고 일도 망쳐서 잘리는 거 아니야?’

그날 이후, 재키는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 함께 웃으며 일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니 느낌이 이상했다. YV에서는 아무도 재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로날도만이 슬쩍 옆으로 와서 내게 물었다. 이제 내 업무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그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나에게 업무의 물살이 밀려들어왔다.


일단 재키와 야심 차게 진행 중이었던 그래픽 디자인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예전에도 거의 완성된 프로젝트가 수포로 돌아갔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나마 감당할 수 있었다.) 대신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대빵 치프와 각종 랜딩 페이지(landing page) 만들기, 재키가 하던 웹 페이지들 UI 디자인 마무리하기, 유저 테스팅 등.


당연히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 학교에서는 곧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는 무조건 학교에 붙어있어야 했다. 모든 학생의 수업 스케줄이 그랬기 때문이다. 하루 당 3-4개의 과목에서 어마 무시한 프로젝트 과제들이 쏟아졌다. (학기 초 새로 오신 교수님들 간의 기싸움도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왜 과제의 양으로 그 승부를 가르려 하시는 건지….)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하면서 초단기간 내에 엄청나게 많은 툴을 익혀야 했다. 개발 팀과 협력하여 일하려면, 전문 UI 디자인에 필요한 기술(어도비 XD, 스케치, 피그마, 프로토 파이, 인비젼 등)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했다. 당시 시각디자인 일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었던 터라, 갑자기 UI와 관련된 일을 하려니 좀 난감했다. 게다가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살아냈는지 모르겠다. 트램 안에서도 일했고, 장을 보면서는 머릿속에서 툴을 연습했다. 학교에서의 점심시간은 당연히 반납하고, (안 그래도 외톨이였지만) 자진 아웃사이더가 되어 혼자서 일하며 밥을 먹었다. 새벽을 넘겨 일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마감 일에 맞춰서 일을 건네준 후에는 학교 과제를 했다.


그래도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려 애썼다. 일단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회사가 있고,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YV를 알기 전에 겪은 일들에 비하면 오히려 즐거운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북돋았다. 그러나 결국, 강철같이 지키려던 멘탈이 툭-하고 끊어질 때가 오고 말았다.


역시, 이번에도 일보다도 사람이 문제였다. 또한 직장보다도 학교가 문제였다. 내가 속해있던 과의 교수님들은 모든 수업을 팀 프로젝트로 진행하셨다. 학생들은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을 불편해했다. 당연히 나와 팀을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은 사람들은 내 노력에 편승하고자 하는 부류뿐이었다.


직장에서 쏟아지는 일을 처리한 후, 여느 때처럼 혼자 과제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점심시간이었다. 학생들의 아뜰리에(작업공간) 옆에 있는 야외 공간에서 탁구를 치는 팀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듣는, 익숙한 소리였다. 늘 그렇듯 나는 혼자 프로젝트에 매달리고, 그들은 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게 무슨 일인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학교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 이게 뭐하는 일인지. 학교에서는 미운 오리 새끼, 직장에서는 낙동강 오리알이라니.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 올라서 결국 그 프로젝트의 교수님(심지어 학장님이셨던 그분)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남은 프로젝트를 혼자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학장님은 웬일로 그러라고 하셨다.


직장에서 가서는, 내가 아직 학생이라는 이유로 내가 한 작업을 계속 반려하는 대빵 치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YV에는 제 디자인을 검수해 주실 분이 안 계시잖아요.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어야 하고요. 어쨌든 제게 일을 맡기셨으니, 일단 저를 믿어주세요.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 같은 새가슴 쫄보가 대빵 치프에게 그렇게 말하다니! 그런데 그게 효과가 좀 있었나보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나를 대하는 대빵 치프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그랬다. 프로젝트를 혼자 해 나가는 나의 모습에 성깔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학생들은 나를 더 피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동양인이라고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았다. 교수님들은 여전히 나에게만 터무니없이 박한 점수를 주셨다. 하지만 전처럼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 않으셨다.


그렇게 벼랑 끝에 몰려보고 나서야 내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내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자, 인생이 조금 더 살만 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껏 남이 내 위에 얹어놓는 불편하고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고 살지 않아도 됐었다는 걸. 조금만 더 당당해지기가, 용기 내서 말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디자인을 공부하러 간 스위스에서 정작 배운 것은 내 목소리를 내는 법이었다니, 아이러니하다.


다음 글에서는 그렇게 찾은 목소리로 내가 YV에서 진행한 단독 프로젝트, ‘무료 이미지를 예술로 탈바꿈시키기’로 돌아오겠다.


다음 글: 16. 능력을 무시당할 때 대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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