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올 것 같지 않던 그 시간이 왔구나.’
졸업 시즌을 맞이하는 심정이란. 삐약거리며 들어올 신입생들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 백 년은 산 할머니가 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큰일이군. 무슨 주제로 졸업 프로젝트를 하지? 덜컹거리는 트램에서 창가에 턱을 괴고 창 밖을 빤히 응시했다.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가 않았다. 학교에 관련된 일이어서 그런지, 그 어떠한 열정도 들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불안한 미래를 예견하는 내 뇌의 자기 방어 시스템이 이런 생각을 내보냈다. ‘하기 싫어도 해야지. 졸업 못하면 여기서 영영 탈출하지 못할 거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절대 아니될 말씀. 이번에 반드시 졸업해야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마음을 다잡고, 좀 더 극단적인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짜 내기 시작했다.
‘그래, 길어봤자 6개월. 이걸 학교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목숨을 다해 할 일이라고 생각해보자. 내가 만약 지금부터 딱 6개월만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연극 활동을 했던 옛 경험을 살려, 시한부 인생의 상황극에 돌입했다. 생각만해도 갑자기 가슴이 찡-해 왔다. 벌써부터 비운의 주인공이 된듯한 마음에 눈물이 어렸다. (엄마께서도 드라마만 보면 우시던데, 감정 이입 능력은 유전인가.) 아무튼 내가 그런 슬픈 소식을 듣는다면…. 우선 감사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반갑게 만나겠지.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음…. 우리 엄마 아빠, 못난 저를 지금껏 먹여 살려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제게 큰 사랑을 베풀어주신 여러분, 짧은 삶이었지만 그대들을 만날 수 있어서 보람되었답니다. 저는 이제 어차피 곧 사라질텐데, 마지막으로 좋은 일이라도 하고 싶네요. 사람 사는 게 뭐 있나요. 죽고 나면 남는 것이 결국 이야기일 뿐인데, 여러분의 이야기와 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야기라고? 그래. 그런 상황이 온다면, 다시는 못 볼 그들의 이야기를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겨준다면 어떨까? 그동안의 감사함을 전할 선물을 하고 싶은데 잘 됐다. 얼굴을 담은 표면적인 초상화가 아니라, 그들 개개인의 의미를 담은 ‘삶의 초상’을 선물해야겠다. 나의 글과 그림, 영상과 음악을 융합한 특별한 선물을!
‘잠깐, 이거 괜찮은 것 같은데?’ 상황극에서 퐁, 하고 깨어난 나는 일단 허둥지둥 트램에서 내렸다. 하마터면 정류장을 놓칠 뻔했다. 우당탕 계단을 올라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작한 브레인스토밍. 대충 이런 생각을 빠르게 적어놓았다.
- 내가 준비한 질문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한다.
-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5-6분짜리 스크립트를 쓴다.
-그들의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며, 그 과정을 타임랩스 영상으로 만든다.
- 완성된 그림 동영상에 스크립트 나레이션을 얹는다.
- 은은한 배경 음악을 작곡하여 동영상을 완성한다.
- 완성된 동영상과 그림을 상대방에게 메일 등의 방법으로 선물한다.
- 선물을 받은 개개인과 피드백 세션을 갖는다.
마침 내가 전공하고 있는 과가 상호작용을 주제로 하는 ‘인터렉션 디자인 Interaction Design’ 아닌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터렉션이라니, 프로젝트로서의 테마도 알맞지 않을까? 이걸 졸업 프로젝트로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갑자기 없던 열정이 불끈불끈 솟아 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벌써부터 학장님의 따가운 눈총과 비난이 느껴지는듯 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 분이야 뭐, 내가 하는 건 뭐든지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 존경스러운 이순신 장군도 그러셨다고 하지 않은가.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그러니까 정말 내 인생이 시한부인것 처럼 밀어붙이지, 뭐. 사람 일은 모르는 건데, 후회 없는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이미 ‘Portraits of Life (인생의 초상)’ 이라고 프로젝트 제목도 정해 놓았다. 내 마음이 이렇다는데 천하의 학장님이라도 어쩌실 것인가. 인생 한번 살지, 두번 사나.
‘난 의지의 한국인 이주영이야! 쫄지 않을 거야. 이번이 졸업 전, 나의 꿈과 열정을 펼칠 마지막 기회니까. 이놈의 스위스에서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해 보자!’ 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아이디어 발표가 있는 날이 되자 덜덜 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학생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온 아이디어 발표 날, 모든 교수님들이 다 모여 계셨다. 심지어 같은 과 2학년 애기들도 선배들의 발표를 구경하겠답시고 눈을 반짝이며 앉아있었다. ‘오늘도 왠지 난 화장실에서 울것 같군.’ 안 좋은 예감이 드는 순간, 귓가에 들리는 학장님의 딱딱한 목소리.
“다들 프로토타입(예시 작품)은 다 준비해 왔죠? 그럼 바로 시작하죠.”
그날, 내가 기억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마치 ‘식물’ 같았다. 예상치 못한 좌중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긴장하던 그들의 눈빛. 학장님과 다른 교수님들의 크리틱에 추풍 낙엽처럼 떨어지던 그들의 자신감…. 수치심에 벌겋게 익은 토마토같았던 그들의 얼굴까지. 아아, 그동안 우리가 학장님의 매서운 말씀에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그분의 말씀은 더욱 더 혹한의 칼바람 같았다.
이윽고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벌써부터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나는 그저 차근차근 내 프로젝트의 배경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음…. 사실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생했어요. 그래서 ‘만약 이것이 내 마지막 프로젝트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더니, 이 아이디어가 찾아왔습니다.”
짧게 프로젝트 진행 순서를 설명하고, 영상 재생을 위해 방의 불을 껐다.
드디어, 대강 만든 나의 첫 번째 비디오가 플레이되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쓰고 읽은 스크립트, 그리고 영상 속에서 완성되어가는 그림의 모습….
나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 이 때는 그림도 그냥 포토샵으로 대충 그렸으며, 그 과정을 스크린 녹화한 영상을 썼다.
“…글쎄요. 나를 정의하는 단어라. 찾기 힘드네요. 저한테 의미 있는 것은 아무래도 나의 딸이겠죠. 제 남편하고요. 저한테는 물건보다는 사람들이 중요한 것 같거든요….”
내가 처음으로 만든 비디오의 주인공은 사실 나의 엄마셨다. 당장 만나서 인터뷰할 수 있는 사람도 엄마였고, 가장 먼저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싶었던 분도 엄마셨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시기에. 나는 가만히 서서, 내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엄마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물건은 책. 삶에서는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 중요하기에.
가장 소중한 순간은 어린 나와 비오는 날 산책을 하며 맡았던 장미꽃 향기.
가장 두려운 것은 마음이 여린 나와 아빠를 두고 갑자기 작별을 고하는 것.
가장 바라는 것은 성실히 살며 감사한 삶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
영어로 자막을 달았지만, 강의실에 울려퍼지는 한국말을 들으니 알 수 없는 눈물이 벅차올라왔다.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타국 생활을 견디다가 아파서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의 심정이 어떠셨을까. 다시 가겠다고 고집부리던 나를 보내시던 심정은 또 어떠셨을까.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복합적인 감정에, 결국 꺼이꺼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아무리 애써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서 흐느꼈다.
오분 간의 비디오 시간이 끝났다.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곳 교수님들의 특성상, 이런 건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걸 뻔히 알았으니까.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늘 진심을 다하는 편이기에,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었다. 나는 비로소 눈을 들어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학장님의 눈에도.
침묵 속에서 성격이 괴팍하기로 소문난 교수님 한 분이 일어나셨다. 그리고 천천히 나에게 걸어 오셨다. 그리고 나를 꼭 안아 주시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여기저기서 작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훌쩍거리던 사람들은 휴지를 꺼내 들었다. 나를 안아주시던 교수님은 내게 휴지를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디자인을 넘어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켰구나.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런 일을 다 한 거니? 프레젠테이션 날짜가 잡힌지 고작 이틀만에.”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 순간, 엄마께 마음속으로 속삭였던 것만 기억난다. ‘봐요, 엄마. 이렇게 용기를 내서 우리의 이야기를 이 사람들 앞에서 펼쳤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울고 있어요. 지금까지 마음도, 말 한마디도 통하지 않던 이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학장님의 반응이었다. 차분히 계시던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프로젝트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잘 진행되기를 응원할게. 그런데 혹시 나도 면담자로 들어갈 수 있을까?”
와, 사사건건 내가 하는 일에 반기를 드시던 학장님께 승인을 받은 것이다. 나에게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다니. 어, 그런데 학장님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으시다니? 그럼 완전히 왕부담인데?
내가 눈물이 쏙 들어간 얼굴로 학장님을 멀뚱멀뚱 쳐다보자, 그분이 이렇게 물으셨다.
“왜 또 긴장한 표정이니?”
“…학장님 면담할 생각 때문에요.”
이런. 솔직히 대답해버렸다. 그러자 그 분은 처음으로 빙긋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Ju. 너란 애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인터렉션 디자인을 가장한 내 졸업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껏 내게 쌀쌀맞던 우리 학장님은 도대체 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보고 싶다고 하셨던 걸까? 무엇에 마음이 동하셨기에?
다음 글에서 그분의 놀라운 비밀이 펼쳐진다!
다음 글: 24. 그 날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