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선택의 무게를 배웠다
"네?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라고요? 그럼 제 졸업은 어쩌고요?"
"일단 네가 살고 봐야지, Ju. 그건 우리랑 나중에 차차 논의하자고."
2020년 3월.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코로나가 스위스를 강타한 후, 마트의 물건들은 동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난생처음 겪는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에서 교수님들은 나를 서둘러 한국으로 보내려고 했다. 외국인인 내가 전염병에 걸렸을 시, 스위스 국민들처럼 보호받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모님의 걱정과 영사관 사람들의 절망스러운 한숨, 그리고 학교 사람들의 작별인사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운 좋게도 한국으로 가는 좌석이 딱 하나 남아있던 것을 발견했던 덕분이었다. 비행기의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저 초현실적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무수한 우여곡절 끝에, 4년의 시간과 공을 들여서 스위스에서의 기틀을 서서히 잡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쪽에서 직장 생활도 하고 있었으며 마음을 터놓는 친구들도 하나 둘 사귀고 있었다. 취리히를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할 정도로, 이제야 진짜 적응을 좀 한 것 같은데 갑자기 이게 무슨 봉변인가.
한국으로 돌아온 몇 달 동안은 내가 그곳에 곧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생각해보면 그 믿음은 아마 소망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토록 힘들어하고 싫어했던 곳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니. 그건 그동안 고생했던 것이 아까워서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정들었던 사람들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얼마 동안은 다시 스위스에 갈 생각을 가지고 원격으로 졸업 준비도 하고, 일도 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7월 말까지 졸업 전시와 온라인 발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기에 그럭저럭 살만은 했다. 그렇게 바쁜 동안만큼은 앞으로 닥쳐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금 유예할 수 있었으니까.
다행히 내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 프로젝트와 함께 졸업을 하게 되었지만(<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보지 않는다>26화 참조) 문제는 그 이후였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완전히 탈진에 빠졌던 그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비행기 안에서 했던 같은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이렇게 졸업까지 했는데,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코로나 상황을 보니 도저히 스위스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에, 어둠 속에 던져진 기분으로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하며 내 안의 동굴로 들어갔다. 내 안으로 웅크리고 들어가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자 오랜만에 내 안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내면의 소리와 대화할 수 있었다.
Q. 솔직히 말해 봐. 왜 스위스에 돌아가고 싶은 거지?
A. 거기에 직장이 있잖아. 친구들도 있고. 기틀을 다졌던 시간이 아깝잖아.
Q. 직장은 한국에서 잡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이런 디지털 시대에, 진짜 친구는 네가 어디에 있던 상관없이 우정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 아닐까?
A. 그렇기는 하지. 다만 한국에서 뭘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직장 잡는 것도 만만치 않을 거고.
Q. 그건 스위스에서도 똑같을 걸? 결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아무도 네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잖아. 그리고 취업해야 한다는 강박은 도대체 왜 가지고 있는 거야?
A.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어서 경제생활을 해야지. 부모님한테 더 이상 폐 끼치기 싫어.
Q. 그래? 그럼 그렇게 직장을 잡아서 열심히 살면 행복할 것 같아?
A.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아. 지금까지의 삶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다가는 아마 평생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은 못하고 죽을 것 같거든.
Q. 희한하네. 그런데도 직장 잡는 것에 목매고 있다니. 한번 부모님 빼고, 네가 느끼는 사회적인 시선도 빼고 생각해 봐.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
A.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마침내 동굴에서 나왔을 때, 아주 희한한 답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내가 고민하던 것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스크룬하이>를 쓰는 것이었다. 내가 꿈에서 보았기에 꼭 세상에 전하기로 약속한 이야기, 그렇기에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완성해보고 싶은 이야기. 무엇보다도 그것은 스위스에서 나를 버티게 한 이야기였다.
내가 그 긴 이야기를 알맞은 양의 글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며, 그게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전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매력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진심을 다해서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코로나라는 상상도 못 할 이 상황이 미친 것만 같았지만, 그렇게 미친 것 같은 세상에서 살려면 나도 조금은 미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선택한 길을 따르며 마음속에 수많은 갈등과 고비가 찾아올 것이라는 건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긴 고민 끝에, 나는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스크룬하이>의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열정을 바쳐 보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지지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진정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선택의 무게를 견뎌야 할 거야. 다른 것보다도 그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면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거란다.'
졸업 이후의 행보로는 너무 무모한 선택이라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았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이니만큼 후회 없이 살고 싶었다. (여러 번 죽음에 가깝게 갔던 고비를 넘겨 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되었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 책임을 인정하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내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는 나더러 용기를 내라고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틀림없이 <스크룬하이>는 좋은 영향을 전하는 이야기가 될 거야.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이 들어.'
그렇게 나는 선택의 무게를 견디고,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그 여정을 떠나보기로 했다. 어찌 보면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 그 길이, 내가 진심을 다해 찾은 인생의 '직진 코스'일 수도 있었기에.
아래는 <스크룬하이>에서 아파라티 할아버지가 고민에 휩싸인 루딘에게 해 주는 이야기다. 루딘은 미래에 일어날 가장 공포스러운 장면을 보여주는 괴물 '모테라'의 눈을 마주친 후, 그 저주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잠시 후 루딘은 힘겹게 입을 열고 자신이 모테라의 눈에서 본 것, 그리고 어제 보리얀을 찾아간 것 등을 아파라티 할아버지에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그것을 막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숙인다. 진지하게 듣던 아파라티 할아버지가 입을 연다.
“힘들겠구나, 루딘. 어떨 땐 미래를 본다는 게 커다란 저주가 될 수도 있으니까.”
루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떡하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할까요?”
아파라티 할아버지는 루딘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네가 본 책에 적혀있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 수도 있겠지. 다가올 나날들을 두려움으로 허비하면서 말이야. 그렇지만 그때까지 시간을 아낄 수도 있어. 그리고 그렇게 아낀 시간은 중요한 것을 바꿀 수 있단다.”
“시간을···아낀다고요?”
“그래. 그리고 시간을 아끼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곧고 빠른 길로 가는 것이지.”
“그, 그게 어떤 길인데요?”
“네 진심을 따르는 거란다. 진심을 다한 선택은 새로운 운명을 만들 수 있거든.”
아파라티 할아버지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잇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선택의 힘이 있단다. 너한테도 마찬가지고.”
“음···. 그럼 제가 뭘 선택하면 되죠?”
“그건 너에게 달린 일이 아니겠니, 루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는 나에게 달린 일이기에, 오늘도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선택했다. 우연히 이 글을 마주칠 누군가가 자신이 내리는 선택에 조금 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나의 곁에는 변함없이 나를 믿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