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비자 불발 사태

이봐 스위스, 너 나 싫어하지?

by 이서후

면접이 끝난 후, YV 임팩트 투자의 대표님 (이제부터는 치프라고 부를 그분)과 나는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한번 더 만났다. 난생처음 계약서라는 걸 보고 눈이 동그래진 나를 두고, 치프는 중요한 내용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그리고 맛있는 저녁까지 사줬다!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의 학생이 최종 면접에 합격했는데, 다른 둘에게도 이렇게 친절하게 한턱을 낸 모양이었다. 후한 대접부터 받아서 그런지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의지가 절로 샘솟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계약서 쓰고 도장 찍고 했으면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남의 나라에서 돈 번다는 게 쉽지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취업 비자라는 엄청난 관문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직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던 치프는 걱정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예전에도 외국인 인턴이 한 명 있었는데, 별로 어렵지 않게 비자를 받아 냈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문제는 회사의 대표 변호사가 알아봐 줄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내가 준비할 서류를 꼼꼼히 챙겨서 제출했다. 하지만 며칠 후에 문제가 터졌다. 치프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안녕, Ju. 음…. 별로 안 좋은 소식이야. 취업 비자 신청이 거절당했어. 그런데 관공서에서 그 이유를 안 알려주고 있다는 게 더 문제야. 지금 우리 회사 변호사가 그쪽하고 좀 설전을 벌이고 있나 본데, 아마 네가 유럽 연합(EU) 출신이 아니어서 절차가 좀 더 복잡하고 힘든가 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치프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에휴…. 그럼 그렇지, 또 관공서가 발목을 잡는구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스위스에서 살며 행정 처리에 관련된 일은 언제나 머리가 아팠다. 대부분이 아직까지도 오프라인 우편으로 처리되어서 시간도 꽤 걸리는 데다가, 상당히 까다롭고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치프는 일단 그들이 거절 이유를 알려준다고 했으니,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그동안 관공서에서 아무 말도 없자, 결국 다시 회사 측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마저도 연락이 잘 되지 않아서 애를 먹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담당자가 휴가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내 취업 비자 일을 넘겨받은 다른 담당자는 심지어 아예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계약서에 일하기로 적힌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속상해서 울고 싶었다. 드디어 스위스에서 잃어버린 내 열정을 되찾을 일을 만났는데…. 신나게 달리던 자동차에 갑자기 펑크가 난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임팩트 허브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친구, 클레아도 내 말을 듣고 어이없어하며 이렇게 말했다. “딱 우리 엄마 얘기가 생각나네. 엄마께서 여기로 이민 올 때랑 직장 잡을 때, 행정 처리를 하면서 트라우마가 생기셨대. 아직까지도 그 생각만 하면 이를 가신다니까.” 이해가 된다. 나도 이 답답한 시스템 때문에 백골이 진토 될 정도로 속이 터져 문드러져서, 넋이라도 있고 없을 지경이니까. 이미 울화병은 생긴 지 오래다.



그때, 치프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 있잖아 Ju, 갑자기 그쪽에서 다른 서류들을 요구했어. 내 느낌 상으로는 딴지를 걸려고 별 꼼수를 다 부리는 것 같아. 그래도 한번 다시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일단 학교에서 조금 권위 있는 사람한테 추천서를 하나 받아 줄 수 있겠니? 예를 들어 학장 같은 사람 말이야.”


치프의 말을 듣고 당장 우리 과의 지도 교수이자 학장을 맡고 있는 분께 메일을 썼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결국 학장실에 찾아갔는데, 그분은 없고 다른 교직원 분들만 있었다. 교직원 분들이 왜 찾아왔냐고 묻자,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나이가 지긋하신 교수님 한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취업이라니 좋은 소식이구나. 당연히 그런 건 학교에서 지원해 줘야지. 걱정 마라, 학장님이 추천서를 써 주실 거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니 더 걱정이 됐다. 결국 학장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분의 자리에 쪽지를 남기고 왔다. 다행히 다음날 메일을 받았는데, 적혀 있는 내용은 걱정한 대로 다행스럽지 않았다. ‘이봐, Ju. 학교 다니느라고 시간 없을 텐데 어떻게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할 거니? 나는 반대일세. 내게서는 추천서를 기대하지 말렴. 아니 된단다.’ 하하, 보통은 이런 일이 있으면 행운을 빌며 추천서를 써주신다는데, 왜 우리 학장님은…. 치밀어 오르는 여러 감정을 억누르며,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가 예전에 건강 문제도 있고 했으니까, 무리할까 봐 그러셨을 거야. 그런 거겠지?


하지만 뭐가 됐든 추천서를 받지 못한 건 이 사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학장님 말고 다른 교직원 분들을 쫓아다니며 사정을 말하고, 운 좋게도 어느 마음씨 좋은 한 분께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몰래 추천서를 써서 내게 건네주었다. 그러면서도 학장님께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추천서와 다른 자료들을 얻어서 제출했다. 하지만 그새 관공서의 담당자는 또 바뀌었고(휴가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없이 거절 통보를 건넸다. 결국 화가 단단히 난 치프는 이 일에 특화된 변호사를 하나 더 연결해서 어떻게든 나를 팀에 영입하려고 애썼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빵 치프(치프와 함께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와 다른 팀원들 사이에서 꽤나 말이 오갔던 모양이다. 디자이너가 그렇게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그래도 치프는 나와 계약서까지 썼으니, 책임을 다하고 싶었나 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원했던 취업 비자는 결국 얻지 못했다. (나중에 프랑스 출신인 다른 동료에게 물어보니, 자기한테는 나에게 요구된 각종 서류가 필요 없었다고 했다. 기본적인 사항만으로도 취업 비자가 그냥 나왔다는 것이다. 하하, 이건 도대체 뭔 차별이냐.) 하지만 치프는 끝끝내 전문 변호사와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마음적으로는 회사에 소속된 인턴처럼 여기나, 법적으로는 프리랜서로 나를 고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계약을 다시 체결했다. 심지어 장점도 있었다. 인턴의 계약 기간은 3개월인 반면, 프리랜서에게는 기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방법이 아니었다면 아마 다음 글부터 펼쳐질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어떤 사회에서건, 차별은 반드시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차별과 보이지 않는 차별 모두. 외국에서 살며 그걸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나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여권에 찍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만약 국적 자체가 없다면, 난 아예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내 능력을 믿고 도와준 치프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인턴이든, 프리랜서든,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이렇게 나를 위해 마음을 써 주는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스럽지 않은가.


다음 글에서는 고마운 은인이 된 치프와 가졌던 특별한 명상 세션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취업 비자 사태의 폭풍 이후에 찾아온, 고요하고 아름다운 취리히의 아침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글: 7. 얼떨결에 치프와 단둘이 명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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