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전화, 그리고 면접

스타트업 면접 준비 꿀팁 + 영어 울렁증 극복!

by 이서후

임팩트 허브에서 스피드 미팅을 한 기업들에게서 하나 둘 2차 면접에 대한 연락이 올 때였다. 학교에서 지루한 수업 중,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는 번호가 아니었다. 만난 기업의 번호들은 다 저장해 놨는데. 그럼 기업이 아니라면 나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으려고? 스팸인가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 했다. 몇 초 뒤에 끊어질 줄 알았는데, 무음으로 해둔 핸드폰에서 착신 신호가 계속 왔다. 결국 호기심이 들어 일단은 교실을 나와서 받았다. 강의실에서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안 받았으면 정말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다.)


“안녕하세요, 이주영 씨가 맞나요?”

“네, 맞는데요.”

“YV 임팩트 투자 회사 대표입니다. 우리 스피드 데이팅 때 봤죠?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네?”

“다름이 아니라, 이주영 씨 CV를 보고 연락드렸어요. 혹시 우리 회사에 면접 보러 올 생각 없으세요?”

“네에에에?”


너무 크게 소리를 질러서 학교 통로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움찔거리면서 쳐다봤다. 수화기 너머로 그 사람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버벅거렸다.


“저는, 디… 디자이너인데요? 혹시 전화 잘못 거신 거 아니신가요, 대표님?”

“하하, 여기 이주영 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하나밖에 없어요. 디자이너 이주영 씨를 찾는 게 맞아요.”


그렇다. 스위스에서 이주영은 흔한 이름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나를 다른 사람과 헷갈린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피드 데이팅 때 만났다니? 엄연히 말해서 만난 건 아니지 않나? 눈만 껌벅이고 있는데, 약간 허스키한 매력이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지닌 그가 말을 이었다.


“혹시 이주영 씨만 괜찮으시다면, 다음 주 수요일 오후 6시에 임팩트 허브에서 뵐까 하는데요. 그때 시간 가능하신가요?”

“우와! 그럼요, 당연하죠!”

“좋아요. 초대에 응해줘서 고마워요. 만날 때 준비해 오시면 좋을 것들을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몇 마디를 더 친근하게 주고받은 후 전화를 끊었다. 그때까지도 실감이 안 났다. 그런데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확인이라도 해 주듯, 잠시 후 면접 준비사항에 대한 메일이 왔다. 게다가 메일의 마지막 줄에는 너무 떨지 않아도 되고, 그냥 편한 미팅이라고 생각하라는 글과 귀여운 웃음 표시 :) 까지 담겨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 치프의 스윗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하.) 복도에 창문 너머로 강의실에 있던 같은 과 학생들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들을 마주 보며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베실 베실 웃음이 새어 나와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작게 소리를 질렀다.

“예쓰!!!”


이후 그날의 수업에 대한 기억은 없다. 후다닥 집으로 달려와서 면접 준비를 했던 것만 생각난다. 이게 어떻게 얻게 된 기회인데, 만전을 기해야지! 일단 YV 임팩트 투자(여기 나오는 사람들 이름과 마찬가지로, 기업 이름도 실명에 가까운 가명)의 대표님이 원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 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두 번째, 제일 자신 있는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실물 있으면 더 좋고.)

세 번째, 마음의 준비. 전문성을 알아보기 위한 추가적 질문이 있을 수 있음.


벌써부터 긴장이 돼서 집 안에서 발을 동동거리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사극 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반드시…. 반드시 YV 임팩트 투자 회사에 들어가고야 말 것이다!” 마치 며칠 굶은 후에 따끈따끈한 치킨을 눈 앞에 둔 사람처럼, 두 눈에 불을 켜고 차근차근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창의적인 면접 준비 꿀팁)


1. 자기소개


일단 면접을 보러 갔다고 상상해 보자. 가장 처음 이야기할 부분이 자기소개다. 첫마디를 평범하게 ‘저는요….’이렇게 시작할 수는 없다. 스위스에서는 보기 드문 ‘이주영’이라는 이름만큼, 대표님에게 스스로를 각인시킬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 나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인 나만의 특장점을 살려서 내 삶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그 방법은 ‘내 삶의 지도’를 준비해 가는 것이었다. 우선 내 가치관, 지금껏 걸어온 길 등을 한 장의 A3 종이 한 장에 담았다. 그리고 그 지도를 보여주면서 스토리텔링 할 부분과 키워드를 2-3분 내로 연습했다. 아래는 그 지도의 구성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2. 포트폴리오


세 가지를 기억하자. 책자 포트폴리오, 그걸 뒷받침할 디지털 자료, 그리고 눈을 사로잡을 실물 프로젝트. 특히 당시의 나처럼 면접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면, 일단 컴퓨터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과 실물로 가져가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정리해야 한다. 면접에서 허둥대면 전문성이 떨어져 보이니까. 당시 나에게는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다닐 때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위해 만든 포트폴리오를 다시 살펴봤다. 아주 최신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이미 책자 형식으로 준비되어 있기도 했고, 디자인 관련 프로젝트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피드 미팅 때 가져갔던 책들도 따로 준비했다.




3. 질문 대비:


확률 게임이기는 하나, 솔직히 그쪽에서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은 꽤 예상 가능하다. 일단 디자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물을 것이다. 그리고 내 말에 통일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요런조런 질문들을 세세히 던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 그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은 뭔지 등을 물을 수 있다. 진실성 파악을 위해서.) 그렇기에 전문 분야에 관련된 질문 10개와 개인적 삶에 대해 물을 수 있는 것들 10개 정도를 미리 준비해서 연습했다. 내가 나를 상대로 바둑을 두는 것처럼, 스스로 질문자이자 대답자가 되었다. 그렇게 준비해서 여러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게 되면 자신감도 생기니까 일석이조다.


(전문 분야에 관련된 질문 예시)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정의는? (전공에 대한 포괄적인 개념)

디자인을 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3가지 요소는? (전문성)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다가 인터렉션 디자인으로 전과, 편입한 이유는? (전문성, 목표)


(개인적 삶에 관련된 질문 예시)

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었던 순간은? (삶의 가치)

내가 이 기업에서 하고 싶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비전 확인)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과 그걸 극복한 과정은? (인내력, 잠재성)


이렇게 준비를 해서 드디어 면접을 보러 갔다.


그런데 임팩트 허브로 가는 트램에 오르는 순간, 막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숨도 잘 안 쉬어지는 것 같고, 토할 것 같았다. 후우- 하고 큰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건 내가 (겉으로는 그렇게 안 보여도) 가뜩이나 겁 많은 새가슴이기 때문이다. 큰일 났다. 얼굴에는 홍조가 돌고,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 나이에 갑자기 갱년기가 찾아왔을 리는 없고, 이건 분명 면접 중압감과 함께 밀려온 영어 울렁증이었다.


물론, 나는 이전 글에서 분명 스위스에 살면 영어가 반가워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아예 못 알아듣는 독일어보단 나으니까. 하지만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거나 면접을 봐야 한다면? 모국어로 진행되어도 긴장될 판인데 어찌하란 말인가. 이건 영어 실력의 수준을 떠나서, 다른 나라 언어로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압력이 주는 문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영어 울렁증이 해결 못할 불치병은 아니다. 아래 세 가지 수법은 나의 면접을 성공으로 이끌어 주었다.




1. ‘나는 거북이다’ 수법


심장이 달리기를 해도, 일단 천천히 말한다. 허둥대지 말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 그러면 머리가 무엇을 말할지 생각할 시간을 벌고, 오히려 급하게 말하는 것보다 여유 있어 보인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정보를 정확히 전달할 확률이 높아진다. 상대방도 보다 편안한 태도로 나를 대하는 걸 느낄 수 있다.


2. ‘문법은 강아지나 줘라’ 수법


갑자기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려면 아무 말도 안 나올 때가 있다. 사실 문법보다 중요한 건 의사소통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걸 남의 나라 말로 어떻게든 표현하겠다는데, 이때 ‘문법은 강아지에게나 준다’고 생각하면 입이 좀 더 잘 떨어진다. 면접을 보러 온 거지, 영어 문법 시험을 보러 온 게 아니니까.



3. ‘저는 시골 쥐 입니다만’ 수법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시골 쥐와 서울 쥐를 기억하자. 잘난 척 번지르르하게 하던 서울 쥐보다 진솔한 시골쥐가 더 낫다. 마찬가지로,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그걸 잘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 자신감 있게, 그리고 여유 있게! 이건 실제로 내가 썼던 말이다.


"하하, 이렇게 면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영어로 면접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 많이 떨리는데,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혹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물어봐 주세요.”


이 수법은 상대방도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나 스스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반드시 주의할 점: “저 영어 잘 못하는데….” 와 같은 부정적 표현은 삼가자. 면접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감이 떨어져 보인다. 영어 실력보다도 면접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다행히, 이렇게 준비해서 본 면접은 엄청난 대성공이었다!


YV의 대표님은 내가 준비한 질문들 중 거의 대부분을 물어보셨다.(이 정도 적중률이면 자리를 깔아야 하는 것인가?) 게다가 회사에서 당장 디자이너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CV에 드러난 나의 열정과 창의적인 모습이 눈에 띄어서 면접 요청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영어 때문에 의사소통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고, 이렇게 창의적으로 자기소개를 구성해 온 친구가 지금껏 없었다며 폭풍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무엇보다도 짧은 시간 내에 포트폴리오도 체계적으로 준비한 모습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 나는 감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여담으로, 내가 준비해 간 책들을 보고는 '아 저번에 임팩트 허브에서 본 책들이구나~' 하며 반가워하셨다. 좀 미안했다. 차라리 스피드 데이팅 때 이 분 앞에 줄을 설 걸 그랬나.)


메일에서 면접은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는데, 결국 이런저런 대화까지 합쳐서 두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게다가 대표님과 공통된 취미들까지 찾으며 인간적으로 친해지기까지 했으니, 면접을 넘어서 훌륭한 친구를 한 명 알게 된 시간이 되었다. 면접을 마치고 마지막에 나올 때, 우리는 가벼운 포옹을 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이게 꿈이야, 생시야'하는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며칠 후, 회사에 디자이너가 필요하지 않다는 팀원들까지 설득하신 대표님이 다시 전화를 하셨다. 이번에는 좀 더 들뜨고, 친근한 목소리로.


"안녕, Ju! 좋은 소식이야! 방금 팀원들과 면접 결과 회의를 마쳤어. 우리 YV팀에 온 걸 환영해!"

"우와, 진짜예요? 꺄아아아!!!"


나는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대표님도 방방 거리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엄청 기분 좋아하셨다. 그날 나는 자축의 시간을 가지며 치킨을 먹었다. 한국식으로 바삭바삭한 맛있는 치킨은 아니지만,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스위스 치킨을.


아아···. 하지만 그때 우리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기업과 학생이 서로 마음에 든다고만 해서 인연이 연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곧 스위스의 행정 기관과 결투를 벌여야 하는 엄청난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건 다음 글에서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다음 글: 6. 취업 비자 불발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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