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화성인 남자 팀장, 지구인 여자 팀원(1)
사람들은 업종에 따라 회사의 성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과거에 유통, 물류회사를 거쳐 정말 쌩뚱맞은 전업(轉業)을 한 나로서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극과 극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몸으로 배웠다. 사회생활의 초반부에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마초를 지향하는 완전한 남초의 집단에서 일을 시작해 지금 위치를 돌아보면 리더인 나를 제외하고는 남자 팀원을 찾아봐야 할 정도의 여초 집단에서 업무를 꾸역꾸역 꾸려가고 있다. 아내를 만나고도 내 생각과 생활은 많이 달라졌는데 딸을 낳으면서 한 번의 더 큰 전환기 그리고 본격적으로 팀장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직장동료 간에 이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좀 웃기지만 여러 명의 여자 팀원들과 지내면서 높은 파고를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남녀를 떠나서 나에게도 아군이라고 느껴졌던 팀원도 있었고 적군까지는 아니지만 늘 과제로 남았던 팀원도 있었다. 하지만 아군이라고 해도 남자 팀원들 대하듯이 무심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아무리 무딘 팀원이라고 해도 여자 팀원에게는 말을 하는 기본적인 기술이라는 게 필요했다. 사람들이 고급스럽게 이야기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신임 팀장이었던 나에게는 부족했던 것인데, 왜 그게 잘못됐는지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여자인 아내의 도움이 많은 역할을 했다.
어느 날 신사업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현영씨가 면담을 요청했다. 지난 번 누리씨와의 면담에서 나에게 던져진 전공과 업무에 대한 질문들, 성과가 나지 않는 고참인 신차장과의 일적인 관계에 대한 해답을 낼 틈도 없이 또 과제가 부여되는 기분이었다. 다만 현영씨는 늘 내 말을 잘 수용하고 열심히 일하는 일 중심적인 친구니까 ‘뭐 무겁거나 특별한 대화를 위해 나와의 티타임을 갖자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일이 잘 안 풀려서 ‘내가 좀 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는지를 물어보러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야 보다.
“현영씨, 별 일 없죠? 요즘 진행되는 사업은 뭐 내가 보고 받고 있으니 괜찮고,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문제나 도와줄 점이 있어요?”
“아뇨. 일 얘기는 아닙니다. 아니 일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원래 시원시원하게 말을 잘 하는 친구인데 이야기를 꺼내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같이 긴장이 되었다. 로켓 발사대에서 카운트를 기다리는 로켓처럼 그나마 나에게 아군이라고 느껴지는 이 친구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뭐지?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 삽시간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갑자기 예민해 지는 느낌이었다.
“팀장님, 팀장님은 팀에서 제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업기획자죠. 새로운 사업 발굴하고 또 실행하고 그런 일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열심히 하면 저도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프로젝트에 들어가면서 좀 생각이 바뀌게 되네요.”
갑자기 섬광이 지나가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현대리와 일하는 데 문제가 있나요? 둘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프로세스도 잘 진행되고 있고 협업에 문제가 크게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팀장님, 팀장님이 현대리를 추천해서 선발하신 것까지는 알고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그 분이 우리가 추진하는 사업을 얼마나 알죠? 저는 그 분하고 일하기 싫다는 것 보다는 그 분이 저보다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현장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닌데 팀장님께 그리고 본부장님께 시시각각 보고되는 이 일에서 핵심 키(key)를 가진 사람처럼 보고자리에서 나서는 게 별로 이해가 안 갑니다. 사람의 특성일 수 있죠. 저는 그렇게 나서는 편이 아니고 그 분은 그게 너무 익숙해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그보다도 저는 성차별 뭐 이런 걸 얘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분이 우리 팀에 유일한 남자 팀원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온 팀원들을 모두 뒤로 한 채 부각되고 남자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예비 리더인양 프로젝트 매니저처럼 자리를 잡아가는 것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의 비전이라는 면에서 볼 때도 우리 회사의 여자 리더는 달랑 두 명입니다. 본부장님 그리고 팀장님들 절대 다수가 남자분이시죠. 하지만 구성원들은 80%가 넘게 여성입니다. 제가 어떤 생각이 들까요? 팀장님, 저는 팀장님이 시키시는 일 모두 열심히 제 성심 성의껏 실행해 왔습니다. 근데 왜 회의감이 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