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팀장

10. 화성인 남자 팀장, 지구인 여자 팀원(2)

by 오얼 OR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구구절절이 틀린 말은 없는데 현실이 그러니까 받아들여라. 당신은 모르겠지만 외부에서 스카우트 해 온 그 친구는 뛰어난 역량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사업을 강력하게 실행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얘기들을 해야 하는 데 그게 나 자신도 사실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현대리도 부족한 점은 많다. 다만 그 친구가 전 회사에서 나와 함께 일할 때 큰 프로젝트에서 가진 역량을 충분히 보여 주었고 성과 역시 좋았다. 전 회사를 퇴직하고 박사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에게 다시 나와 함께 일하자고 얘기를 던진 것도 나였고 회사에 추천과 동시에 인사팀장을 비롯해 임원들에게 잘 데려왔다는 칭찬을 받았다. 나도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뿌듯했다. 다만 남과 여, 나와 함께 이 조직에서 세월을 보내고 나의 지지세력이었던 친구와 내가 추천해서 데리고 온 친구 이런 상황의 대립구도가 생길 것이라고도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주 긍정적으로 서로 자극이 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우리 팀은 현대리로 인해 한 걸음 더 나아갈 거라고 생각해서 프로젝트의 리더 역할을 하게 했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다. 최대한 감정을 비추지 말고 얘기해야 했다.

“그럴 수 있죠. 현영씨가 무슨 얘기하는지 이해는 합니다. 다만 이 프로젝트의 PM은 나이고 이번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기 위해 각 파트별로 노력을 기울여 줘야 할 뿐이지. 그게 남녀의 차별도 현대리와 현영씨의 차별도 아니고 전 생각합니다. 현영씨는 저와 함께 일하면서 충분히 많은 성과와 수행역량을 보여줬고 제가 현대리와 현영씨 두 사람에게 이번 프로젝트의 주요 업무를 맡긴 것도 둘 다 파트너십을 가지고 서로를 독려하면 지난 여러 프로젝트 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해요.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조직 모양이 기형인 것은 맞습니다. 현영씨의 비전에 회의가 들만도 하고요. 일하는 실무자는 대다수가 여성인데 팀장은 남자죠. 나 아니어도 각 팀마다 드러내 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성별이 다른 리더로 인해 내재된 불만과 여러 말이 나올 거라는 건 저도 예상은 됩니다. 다만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면 저는 이런 생각도 한 번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여성 팀장이라고 해서 저와 다른 어떤 답변을 현영씨에게 줄 수 있을까요? 올 해가 지나면 현영씨도 진급대상이 되겠죠. 대리될 때 다 되었다는 것도 제가 인지하고 있습니다.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되면 우리 그룹에서는 마일리지에 따라 팀장이 될 대상이 될 거고 자신의 역량에 따라 리더가 되는 사람도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는 외부에서 스카우트를 받은 사람이지만 현영씨처럼 여기서 육성되는 사람들은 그 갈림길에 서겠죠. 그룹 전체로 보면 시간이 갈수록 조직이 안고 있는 인사정체라는 문제 때문에 계열사 간 이동이 흔하게 이루어질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저는 현영씨가 우리 회사만 보고 여성인 나에게는 기회가 적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으면 합니다. 그게 사실일지라도 현영씨가 직장생활이라는 걸 계속하고자 하는 한 그런 생각은 리더가 되는데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 제가 보기에는.”

능구렁이처럼 여기저기 빠져나가는 내 얘기도 내 모습을 현영씨는 말없이 경청하고 있었다. 그냥 듣기 싫어서 유체이탈 했을 수도 있고 예상했던 답안이어서 아무 말을 안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 편의상 경청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현영씨가 입을 열었다.

“팀장님이 그런 생각이시라면 저도 그렇게 알아야겠죠. 다만 저는 팀장님이 데려 온 사람이라고 해서 남자라고 해서 함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더 좋은 평가를 받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저 지금까지 팀장님이 아시는 것처럼 우리 팀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사실만 인정해 주시면 됩니다.”

“네. 현대리 문제에 앞서 제 인정이 부족했나 보네요. 제가 여성 리더처럼 감성적이고 섬세한 면까지 다 갖추고 있지 않아서 표현이 좀 모자를 수 있겠지만 현영씨에 대해서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업의 환경이 별로 좋지 않은데 그래도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에 현영씨의 노력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제 표현이 좀 부족했다면 이해해 주길 바랄게요.”

“네. 알겠습니다. 일어나 보겠습니다.”

현영씨가 자리를 뜨고 다 식어버린 머그잔의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면서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여성 속의 남성 팀장, 참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더 생길지 예상은 안 되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실을 기반으로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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