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X세대 팀장, 밀레니얼 팀원(1)
개인 사업이나 소기업과는 달리 시스템에 따라 모든 일이 움직이는 대기업에서의 프로세스는 모두가 지켜야 할 룰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와 같이 어떤 일을 하는 데 명분싸움이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그 일에 대한 의사결정이 되고 실행이 시작되면 모두가 이해하고 함께 진행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지켜져야 한다. 절차와 보고라인을 지키는 것도 그 일의 내용만큼이나 큰 회사에서는 중요시 되는 항목 중 하나다.
아침부터 이본부장이 나를 찾는다. 아침 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내 책상에 머그잔을 내려 놓는 나를 보고 파티션 뒤에서 손짓을 한다. 이본부장 파티션 너머에 있는 작은 회의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았다.
“박팀장, 요즘 많이 힘들지?”
“아닙니다. 저야 뭐. 본부장님이 더 힘드시죠.”
우리는 이렇게 아주 형식적인 선문답을 주고 받았다. 이런 뻔한 답이 나오는 질문을 하는 것도 서로에 대한 예의이고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인사치레이겠지만 연옥과 같이 물고 물리는 팀장 이후의 삶에서는 어쩌다 서로 아쉬운 소리를 하기 위해서 시작되는 아침에 이런 인사는 늘 필요한 절차다.
“나 한 가지만 부탁하자.”
“네. 말씀하십시오.”
그냥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서도 듣고 싶지 않다는 안구 뒤쪽의 모습이 들키지 않게 본부장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아이컨텍을 계속했다. 내가 듣기 싫은 걸 알면 내가 아쉬운 일이 생겼을 때 말조차 꺼내기 힘들 테니 내 계좌에 본부장의 말을 저축한다 치고 의자를 당겨 앉고 몸을 기울여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새로 들어온 조나래씨 말이야.”
“네. 기획파트에 들어온 친구 말씀하시는 거죠?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적응도 잘하고 있는 것 같고 팀원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난 박팀이 그 친구 면담을 좀 해봤으면 좋겠어. 내가 어제 그 친구한테 몇 가지 얘기를 좀 묻다가 느낀 건데 자기가 되게 쓸데없는 운영 일에 시간을 많이 뺏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물론 우리 사업운영 하는 일도 바쁘지. 다들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친구는 자신이 기획자 포지션으로 선발됐지 운영자로 뽑힌 것도 아닌데 자기 업무 중 절반 이상은 이미 진행 중인 사업운영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답답해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여기서 대응을 할 것인가 아닌가를 잠시 고민했다. 아주 순간이었지만 판단을 했다.
“네. 면담해보고 보고 특이사항은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 요즘 친구들 나나 박팀이 신입일 때랑은 달라. 뭐 많이 나오잖아. 그룹에서 특강도 많이 열고.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는 방법들에 대해서 말이야. 자네나 나나 시간되면 그 영상이라도 한 번 봐야 하지 않겠어? 이것도 세대 차이인데.”
“네. 그래야죠.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그래. 사람관리에 신경 좀 쓰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본부장의 파티션을 넘어와 열 발자국도 안 떨어져 있는 내 책상에 다이어리를 던져 놓고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아침부터 해답 없는 과제를 받아서 나왔다. 흡연 장소 몇 발 떨어져 개발팀 이팀장이 우울한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날리고 있다. 동갑내기인 이팀장은 콘텐츠를 구현하는 기술인력들과 일하고 있다. 답답한 친구들이긴 한데 이팀장 또한 개발을 하던 출신이라 외형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슬그머니 옆에 가 서서 담뱃불을 붙였다.
“이팀, 본부장이 나보고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라는 과제를 던졌는데 뭐 방법없냐?”
“이본부장 요즘 무슨 TV프로그램 잘못 봤나 보다. 어제께는 나한테 우리 팀 막내와 소통이 부족하다고 세대 간 이해가 어쩌고 저쩌고 그런 얘기를 하던데. 오늘은 또 너냐? 막내랑 소통 잘하는 방법 연구하는 게 이번 주 과제인가 보지? 참, 할 일이 없나?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서 그러는 건지.”
“나한테만 그러는 건 아니었구나. 그러나 저러나 우리 팀 막내랑 얘기해 보고 특이사항 보고 하라고 하니 얘기는 해봐야지. 가서 뭔 얘기라도 보고하고 끝내지. 그나저나 어제도 못 잤어? 왜 이렇게 얼굴이 까매?”
“소주 반 병 마시고 겨우 잤다. 요즘 술이라도 한 잔 안 먹으면 잠이 안 와. 이러다 알코올 중독 되겠어.”
“제수씨 뭐라고 안 해? 난 집에서 한 잔 하려면 와이프가 또 술 먹냐고 밖에서 먹는 걸로 부족하냐고 뭐라고 하던데.”
“나 약 먹잖아. 내가 하도 우울해 하니까. 어제는 깡소주 먹지 말라고 오뎅탕 한 사발 끓여주더라고. 그래서 소주 반 병 시원하게 마시고 잤지.”
“얼굴은 못 잔 얼굴인 것 같은데 잤다니 다행이네. 운동이라도 좀 하러 다녀. 나는 다시 몸이 안 좋아질 것 같아서 요즘에 한강에 자전거 타러 다니는데, 그러면 좀 나아. 기분도 몸 상태도.”
“나 운동 싫어하잖아. 맨날 올빼미처럼 십 년 넘게 개발 일 하다 보니 허리도 무릎도 아프고 요즘은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다. 회사 10부제 때문에 차 못 갖고 오는 날이면 지하철에서 서 있는 시간만으로도 하루 종일 몸이 쑤셔.”
“그러나 저러나 그래서 넌 팀 막내랑 얘기는 해 봤냐?”
“뭔 얘기?”
“하는 일이랑 팀 내 관계랑 애로사항? 그 정도.”
“그거 물어보면 야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할거고. 선배들이 일 떠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할 텐데. 느네 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각 파트 밑으로 일이 기능별로 쪼개져서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그게 되겠어? 그냥 물어보지 말아야지. 걔 나랑 얘기하는 거 불편해 할거야. 본부장한테는 적당히 얘기하지 뭐. 어차피 그 양반도 기획 쪽 출신이라 우리 일도 잘 모르고 이해도 못 해. 애들 특성도 잘 모르던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 뭐.”
“그래. 넌 나보다 낫다. 나도 얘기하기 싫은 건 마찬가지인데, 본부장도 나 같은 출신이니 난 얘기하고 보고는 해야겠다. 게다가 우리 팀은 애들은 본부장하고 직접 얘기도 많이 하니 괜히 얼렁뚱땅 넘기려다가 더 욕 먹을지도 모르니 그냥 면담 한 번 시원하게 해야지. 뭐 별 얘기하겠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