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팀장

28. 과거 나의 팀장들(1)

by 오얼 OR

신실한 한팀장

처음 내가 인턴사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는 유통관리직으로 일을 했다. 물류센터에서 한 달 여 간의 실습을 마치고 대형 아울렛 매장에 막내 매니저로 업무를 시작했을 때 나를 담당한 한 팀장은 회사의 가치에 부합하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회사의 가치도 그랬지만 유난히 주님의 사업과 말씀을 강조하고 아침마다 개인의 종교를 불문하고 성경말씀을 외우게 했던 신실한 분이었다.

업무는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 때는 시대적 상황상 그 부장님의 역할은 관리를 잘 하는 것이기에 세븐일레븐이 생활이 되었다. 일요일에는 같이 교회에서 만나야 했고 청교도적 가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기는 안 움직여도 남의 근면하지 않음을 늘 채찍질 하시던 분이었다.

힘들었지만 취업이 어려워지던 시기, 개구리 왕눈이처럼 흘러가는 연못의 나뭇잎에라도 올라타야 했기에 코피 터져가면서 지하철에서 양복에 침을 흘리고 자면서 새벽에는 식품매장에서 수박통을 던지고 오픈 세레머니부터 시작한 하루 일과는 반짝이는 구두와 양복을 입고 여사님들을 관리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아침, 점심, 저녁 설교에 어디 유통점이나 그렇듯 직원들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창고 겸 백룸에 한 기수 선배와 동기들과 앉아 잠시 한숨을 쉬는 게 휴식의 전부였다. 종횡무진 매장을 휘젓고 다니는 부장님에게 매일 아침 기독교인이 되지 않으면 과장이상 진급은 없다라는 말을 들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대학의 마지막 학기, 정직원으로 인사팀에 발령을 받고 학업과 회사를 병행하던 한 달 후 나는 미련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새벽 기도와 체조로 시작되는 하루는 내가 꿈꾸던 직장생활도 하고 싶은 직장생활도 아니었다. 내가 영업팀과 인사팀을 거치며 짧은 몇 달 동안 느낀 점은 내가 부러워 하던 학벌 좋고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도 조직에 가면 이상한 또라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좋게 보였던 모든 게 나쁘게 보일 때쯤 한 대기업의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더 힘들지만 돈도 더 버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관계의 달인, 용팀장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 몇 기, 가슴에 달린 회사 뱃지, 시스템으로 아침을 여는 회사, 정확한 군대 문화로 서로를 맞아주는 위계가 명확한 사랑해요! 우리 회사. 용팀장님은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전형적인 관계형 팀장이었다. 내 동기들 모두를 뒤로 한 채 내가 신입 중 팀장님들께 알려지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우리 학교 후배'였다. 지금도 내가 졸업한 대학 출신들은 조직에 많지 않은데 용팀장님은 유독히 우리 학교 라인을 사랑하셨다. 술이라도 같이 하는 마지막 차수에는 어깨 동무를 하고 학교이름이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셨던 초기 나의 롤모델이었다. 내가 실제 졸업을 하고 시작한 본격적인 직장생활에 등불이 되어주신 분, 내가 퇴사할 때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남기신 분이었다. 다만 지금 생각하면 업무능력을 그닥 뛰어난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우리팀이 좋았고 팀장님은 내 존경의 대상이었다.

층층시야 공채 기수 선배들은 인간적으로는 팀장님을 좋아하지만 팀실적에 있어서는 쉽지 않다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특히 내가 자리를 잡고 있던 강남지역은 팀장님 실적의 절반이었기에 지역 매니저부터 점장, 선임 모든 인원들이 정말 한 몸처럼 움직였다. 생각해 보면 팀장님이 바뀌시기 전까지 다들 너무 진하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팀웍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은 팀장님이 아니더라도 내부에서 진압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팀장님은 과장에서 차장으로 연말에 진급을 하시고 개발팀으로 떠나셨다. 내가 쓴 기획서를 회람까지 시키시면서 신입이어도 이렇게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라고 팀원들을 독려하면서 밤낮으로 점포를 돌던 팀장님이 떠나실 때는 옆 본부지만 좀 아쉬웠다. 그리고 다음 팀장님은 영업을 모르는 꼼꼼쟁이 재무팀에서 오는 분이었는데 팀 리더의 중요성을 난 그 때 이미 깨달았다. 팀장이 교체된 지 석 달도 못가서 우리 팀의 균열은 심해졌고 경쟁사가 약진하면서 외부 상황도 어려워지면서 결국 갈등의 쓰나미는 조직생활의 회의로 다가왔고 다시는 일반기업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지키지 못할 다짐과 함께 사직서를 던지게 되었다.

대학원 시험을 보고 석 달 동안의 폐인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대기업 공채 시험을 봤을 때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꼭 임원이 된다.'라는 생각으로 필드에 복귀했다. 그 사이 용팀장님은 폐인으로 지내던 나를 다시 한 번은 찾아와 챙겨주셨다. 인간적은 고마움은 그 후로 십 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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