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과거 나의 팀장들(2)
진짜 완장 박팀장
다시 들어간 유통회사, 생활은 전과 같았는데 이 회사는 대기업의 계열사이기는 했지만 돈을 못 버는 상황이 열악한 계열사였다. 1지망, 2지망이라는 게 있었는데 하필 여기에 오게 된 건 처음부터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내부 갈등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인사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룹 공채 출신인 나는 그 차별에서 제외됐지만 몇몇 그룹 공채 출신들이 수시 채용 출신들을 적자와 서자처럼 구조화하여 지내고 있는 회사였다. 영업팀에 발령을 받고 얼마되지 않아 정말 짧은 부점장 생활을 끝내고 수도권에 있는 점포에 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거기에 본사 TFT에 동시에 배속되었고 원거리를 오가며 이도저도 아닌 생활은 계속되었다. 거기서 만난 박팀장, 정말 팀장 중 고참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거쳤지만 임원이 될 수 없는 출신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 체계가 별로 없을 때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여튼 부장이었던 그는 정말 '엄석대' 그 자체였다. 늘 회사를 위해 하는 일이고 늘 조직이 최우선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거기에 공감하는 팀원은 아무도 없었다. 회사는 날로 어려워졌고 동종업계에 이직을 했던 나는 실적이 좋은 회사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더 후진 곳으로 간 바보가 되었고 아마 몇몇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한참 이런 상황을 불편해 하던 시기에 회사는 수시 채용 출신들에게 소사장이 되라며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경기도의 한 지역 10명의 점장 중 트레이닝 점포도 내가 있는 곳 하나, 9명의 점포는 실적도 잘 안나는 수시 채용 출신 점장들의 점포였고 난 정말 그 지역에서의 생존 자체가 불편했다. 다만 제일 나이 많은 점장님이 나머지 점장들을 다독이며 가는 분위기였는데 그 분이 고등학교 선배여서 다른 사람이랑 말이라도 섞고 회식자리에도 낄 수 있게 되었다. 가끔 뉴스에서 소사장제의 병폐를 볼 때마다 그 때 생각이 나서 울컥하지만 29살 내가 감당하기에 소사장이 되는 건 그리고 실적도 나지 않은 회사의 점포를 할부로 사야한다는 건 너무 비합리적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채용사이트에서 한 회사를 보았고 결국 다시 짐을 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사팀 면담에서 웃기지도 않게 핵심인재가 어쩌고 저쩌고를 운운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이바이를 했던 생각이 난다. 정말 팀장과 아무 관계나 라포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건 내가 리더가 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오래 다니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그만 둔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 내 조직생활의 일단락을 지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최악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준 깐팀장
대기업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200명이 되지 않는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한 건 독점기업이라는 것과 높은 연봉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게 되었고 돈을 못 벌어서 아내를 고생시키고 싶진 않았다. 소사장이라는 사건도 있었지만 박봉에 시달리던 나에게 대기업, 중소기업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사직군에 있던 회사라 일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회사는 그 당시 중소기업이라고 하기는 뭐하게 1,000억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었지만 조직구조는 완전 옛날 구조였다. 80년대 뉴스에 나오던 공무원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복사해 놓은 느낌이었다. 들어간 지 1년만에 담당하는 매출은 40억 가까이 되었고 100억 매출을 하던 팀에서 많은 일을 배우고 하게 되었다. 팀장은 최고참인 수석부장, 깐팀장이었다. 일단 생활패턴이 참 특이한 분이었다. 언제 집에 가는지 모르게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같으면 그런 사람은 회사에 못 다니겠지만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관리자로 꽤 있었다. 회사 출근 시간은 9시지만 그 분이 출근시간은 6시 30분, 예전에 보디빌딩을 했어서 새벽에 와서 인근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온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인사를 하러 가면 정말 황당하게도 야동을 보고 있거나 인터넷 맞고나 포커를 치고 있었다. 결제도 해 주기 귀찮아서 잉크가 나오는 도장을 나에게 던져주시던 위대한 분이었다. 당신 연봉은 내 두 배였는데 나는 그 분을 보면서 꼭 팀장이 되고 싶었다. 팀장만 되면 '저렇게 돈을 받고도 저렇게 퍼질러 놀 수 있구나.'를 나에게 가르쳐 주신 분이었다. 오후가 되면 사다리를 타서 간식을 사다먹고 자리에 있는 시간보다 지하에서 담배를 태우고 커피를 들고 다니는 시간이 많은 분이었다. 2주에 한 번은 출장, 2주에 한 번은 회식이었다. 회식은 퇴근 시간 한 시간 전 결정이 되고 신혼이었던 나는 매일 아내에게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그건 팀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술마시면 욕하고 때리고 진상도 진상도 그런 진상은 없었는데 소름끼치게 무서운 사실은 2년차부터 신사업기획과 영업관리를 병행하던 나의 팀 이동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분도 친하지만 다른 성품을 가진 팀장님이 회식자리에서 말씀해 주셨다. 영업팀에서 니가 못 빠지는 이유는 니 팀장이 안 놔줘서 그런거라고. 나를 두 팀에서 데려가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빠지면 안된다고 거절하셨다고 했다. 의아했지만 참 뭐랄까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3년차부터는 신사업기획 쪽 일을 메인으로 하게 되었는데 정말 무지하게 힘들었다. 아는 건 없고 팀장님은 재무팀장 출신이라 영업 뿐 아니라 돈 빼고는 아무 것도 이해를 해 주시려고 하시지 않는 분이었다. 그래도 그 나이에 버는 돈이 많으니까 버티고 버텼는데 어느날 새벽 출근하는 길에 갑자기 길에 멈춰서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아들이 생기고 머리가 더 복잡해 졌고 매년 못마시는 술에 쩔어서 몸이 아프기 시작한 순간 다른 일을 해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분은 내가 그만두고 6개월이 못가서 정리해고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고 현 시점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얘기를 전 회사 동기에서 들었을 때 사람의 인생은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