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ND talk no.34

성선설과 성악설, 한 배를 탄다는 것은

by 오얼 OR

정신없이 남이 시킨 일을 하다가 리더가 되면, 갑자기 스스로가 너무 잘나게 보이거나 반대로 너무 무능해 보일 때가 있다. 차상위자나 최상위자의 피드백에 갑자기 위축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모든 것은 내려놓고 ‘지가 잘났으면 지가 하지 왜 날 시켜?’라는 생각으로 배를 째고 드러눕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정치가 그러하듯이 가장 최상의 정치싸움의 경지는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 그리고 내가 의도한 바를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국지나 손자병법을 참 좋아한다. 삼국지와 손자병법이 뭐길래? 그렇게 좋아할까? 중국의 역사소설? 병법서? 그런 것들이 현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리더만 되면 다들 글로 영상으로 여기서 자신가 필요한 정치의 해답을 얻으려 한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대학에 갈 때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합격한 사람의 인터뷰 기사에서 고교 재학 시절 삼국지를 12번 읽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매일 삼국지 1권의 1편인 도원결의(桃園結義)만 읽다가 책을 덮은 나는 내가 좋은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것인 삼국지 같은 유명한 책을 한 번도 완독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처음 팀 리더를 맡은 해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려서 미리 삼국지를 안 읽었어도 어차피 읽을 건데 그 시절 보고 싶은 소설책을 많이 읽은 것이 다행스러웠다.

삼국지 참 많이 봤다. 정비석, 이문열, 장정일로 시작해서 이름도 다 기억 못하는 중국 작가들의 만화와 해설판까지 신임 팀장이었던 때 현실에서 써먹지도 못할 삼국지는 왜 그렇게 많이 읽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손자병법은 중학생 때 두 번 읽었지만 삼국지는 사놓고 세월이 지나 책이 누렇게 되고 나서야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는 있어서 여러 해석판을 읽었지만 써먹을 일은 별로 없었다. 나의 현실적용 능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

열심히 읽은 삼국지의 적용을 어려워했던 것은 지금은 좀 웃기지만 내가 지난 사람을 보는 눈 때문이었다. 어릴 때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 나는 사람은 본성이 착하다고 믿고 살았다. 그래서 남을 도와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사람도 내가 위기에 빠졌을 때 도와줄 것이고 그 사람이 지금은 악하게 굴더라도 그건 그 사람이 처한 상황 때문이라고 믿고 살았다.

지금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사람의 선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점점 더 늙은 여우가 되어가면서 내가 가지게 된 생각은 ‘그 때 그 때, 달라요’다. 다만 세월이 가면서 초반부터 남을 믿거나 좋게 보려는 성향은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중용을 지키기 위해서 겪어보기 전에는 판단하지 말자는 생각은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남과 한 배를 탄다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을 함께하는 사람으로 인해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쌓이고 어느 날은 분노게이지를 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나 짬밥 먹은 여우가 되기 전까지는 ‘화내면 지는 거야.’라는 말을 실행하지 못하고 매번 일을 열심히 하고도 지는 게임을 하는 모자란 놈이 되기도 했었다. 마애삼존불처럼 온화한 미소를 유지해야 하는데 어느 날 거울을 보면 미간에 앵그리버드 같은 무늬가 새겨진 것을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곤 했다. 그렇게 한 배를 타는 일은 감정적으로 고된 일이었다.

주변의 많은 충고들과 세월이 한 때는 약이 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가장 중요한 건 내 자신의 생각이었다. 그 시기 읽어보고 가장 와 닿던 책이 ‘미움 받을 용기’였으니 어쩌면 심리학의 메이저인 융과 대적하지 못했던 아들러의 모습이 내 가슴 속에 투영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한 배를 타는 것을 거부하며 조직에 대한 불만이 늘어갈수록 우리 팀의 구성원들은 리더에 대한 불안감이 늘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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