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던 그 녀석의 충고
한 조직에서 네 팀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교육기획, 신사업, 사업기획, 콘텐츠전략 각기 다른 구성원으로 네 팀을 순차적으로 맡으면서 유일하게 두 번 나와 함께한 구성원이 있었다. 그 조직에 있을 때 나는 늘 새로운 국내외를 막론하고 늘 돈이 되는 새로운 일을 기획해야 했기 때문에 성과에 대한 압박과 그런 일을 하기에는 경험과 역량이 부족한 인력들을 데리고 가야하는 부담감에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괜찮은 인력 같아 보이는 데 협업이 안 되는 모습이었고 각자 너무 캐릭터가 강했다. 어느 날은 그들을 어느 날은 나를 탓하면서 꾸역꾸역 일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 결과는 좋을 턱이 없었다. 결국 내 자신도 번아웃(Burn out)이 되어서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 그 친구가 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두 번째 팀과 네 번째 팀에서 나와 함께 한 그 친구는 근성도 있고 똑똑한 친구였다. 다만 요령이 있지는 않았다. 우직하고 꾸준한 그리고 참을성이 많은 내가 믿는 존재였다. 그 친구가 어렵게 나에게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자신이 팀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구성원들을 위한다고 내가 혼자 열심히 했던 일들은 그들을 무능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들었고 일적으로 보았을 때 내가 그들을 육성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는 것이었다. 또 내가 내 자신의 신념과 성격 때문에 하지 못했던 정치는 결국 구성원들이 조직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게 만들었고 다른 팀 리더의 간섭과 지시에 노출되게 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나를 믿고 따라가는데 팀 리더는 나는 자신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과 방향을 가지고 팀을 끌고 가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좋은 말로 포장해서 희망고문을 하고 넘어갔을 텐데 그 친구가 나에게 전한 말들은 간단히 얘기해 ‘뼈아픈 말’이었다. 대답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었다. 속칭 실무형 팀 리더였던 나는 내 자신을 ‘일 중심’의 팀 리더로 치부하면서 일을 처리하기에 바빴을 뿐 그 일을 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으로 업무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한 번도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내가 그들의 입장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건설적이고 정확한 피드백을 하기 보다는 좋은 피드백을 하는 리더였다. 각기 다른 역량과 사고를 가진 팀 구성원들을 조합하여 우리 팀을 만들어 나가기보다는 내가 일하기 편하고 내 방식을 가르쳐 내가 생각하는 효율성을 탑재하여 성과를 내고자 하는 그냥 ‘나=우리 팀’이었다.
그 피드백을 받았을 때는 그 조직에서 팀 리더를 맡은 지 1년 반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인데 그 때까지 버텨준 그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리더로서 2막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했다.
다른 팀 리더들과 한 배에 승선했다. 웃는 포커페이스와 부정적인 단어를 걸러낸 의도적인 긍정적 커뮤니케이션을 탑재하고 다 버리지는 못했지만 이기심을 좀 다이어트한 채 초선 의원이 된 냥 조직생활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내고 배트맨의 악당 ‘투페이스’의 모습으로 또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나는 자존감과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와 팀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가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면서 다시 조직으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은 잊어버린 채 ‘욜로(YOLO) 라이프’를 시작했다. 새로 얻은 사무실에 새로 산 노트북과 자전거로 출퇴근 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실제로 만들어 나가며 돈을 벌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나는 이제 내 배를 만들어 가고 있었고 다시 승선할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카누로 시작했지만 초호화 요트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내 일에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다시 승선을 기다리고 있는 배가 있는지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