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더의 조건_처음에는 그냥 세대 차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이 흘러가는 시류(時流)를 바꾸는 일은 천동설과 지동설의 싸움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옳은 일일지라도 부정한 환경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고 누가 봐도 부정한 일도 부정한 환경에서는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
매일 외치는 ‘혁신’은 혁신이 아닐 수 있으며, 인생의 목표가 있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닥친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이 현재 상황이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는 정의내리기가 어려운 과제이다. 하지만 조직에서의 혁신은 남보다 빨리 변화를 감지하고 변해가는 세상을 빠르게 따라잡는 일이지 무조건 남과 다른 차별성을 추구하거나 ‘유니크(Unique)’라 대변되는 독특함을 찾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조직 내의 줄임말과 신조어를 자신들만의 용어로 규정짓고 동의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는 것도 우매한 행동 중 하나일 수 있다. 한동안 교육에서는 핵심가치를 구성원들에게 주입시키는 일에 있어 ‘웨이(Way)’가 유행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잘 찾아보기 어려운 말이 되었지만 S사의 Way로 촉발된 유행은 무엇인지 정확한 개념도 알지 못한 채 독특한 조직문화와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인재상에 자리 잡았다. 그게 그렇게 좋은 거면 한참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10년도 안됐는데 지금은 왜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수많은 스타트업들도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계속 자기들만의 ‘Way’를 찾고 있다. Way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아무 것도 지켜지지 않은 채 유행처럼 겉모습을 따라가다 소멸되어 버리는 게 차별화와 독특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정의 내려지지 않은 ‘Way’의 문제점은 조직 곳곳에서 나타났다. 일단 방식과 방법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구성원들 간의 합의가 일어나지 않자 유권해석이 분분하게 되었다. 대표이사와 리더, 리더와 구성원 계층이 내려갈수록 왜곡의 정도와 빈도는 심해졌다. 마치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하는 것처럼 대표는 사과이야기를 했는데 구성원까지 전달되고 나니 당근쥬스가 되어 있는 형태라고 말하면 와 닿을까? 전달하는 리더의 말과 방식이 상이했기 때문에 결국 실무를 보는 구성원은 전달사항을 이해하지 못했고 추측성 보고서가 계속 생산되었다. 누구의 잘못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정확히 느낄 수 있는 것은 구성원을 제외한 리더라 불리는 모든 사람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결국 무엇을 하는지 목적 없이 야근을 하고 계속되는 빨간펜 선생님의 피드백에 지치고 주말근무까지 불사하면서 한 일은 결과를 보지 못한 채 그냥 일로 끝나는 경우가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 처음에는 청바지와 후드티로 대변되는 기존 조직과 다른 구성원들의 모습이 문제인 줄 알았다. 서로 같지만 다른 언어를 쓰는 세대 간의 격차와 처음 스타트업에 입성해 기초적인 업무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 누군가 비즈니스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은 점 등이 젊은 대표이사와 나 그리고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자리 잡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조직에 만연해 있는 ‘상관없다. 나만 아니면 된다.’식의 문화였다. 또 조직이 커지면서 외부 대기업에서 스카웃을 받아 온 리더들이 자신의 직장생활 경험에서 우러나온 각자의 문화를 한 조직 구성원에게 들이밀고 강요하는 것도 문제였다. 조직의 리더가 H그룹에서 왔으면 H그룹 식으로 일을 하고 S그룹에서 왔으면 S그룹 식으로 일을 해야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거기에 우리가 전문 용어로 쓰는 Job rotation(직무전환)도 빈번해 도무지 구성원들은 일의 갈피를 잡지 못했고 안 그래도 일의 프로세스가 잘 잡혀 있지 않은 데 혼란은 점차 가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