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은 퇴사면담도 이메일로 신청한다.
주말 아침 모처럼 잠을 푹 자고 침대에서 눈을 뜨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일어나서 '으아~~~'라는 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펴고 라인도 잘 보이지 않는 허리를 돌린다.
토요일이라 회사 메일을 보고 싶진 않지만 노예 근성이 몸에 익어버린 뇌에서는 어제 밤새 무슨 일이 없었는지 살피라는 시그널이 계속 온다. 아이폰을 쓰다가 도저히 적응이 어려워서 예전에 쓰던 안드로이드폰으로 바꾸고 메일 앱을 깔아 놓은지 3개월 평일은 지하철에서 주말에서 집 쇼파에서 눈을 뜨면 보기 싫은 메일을 보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반갑지 않은 메일이다. 읽지 않아서 표시된 굵은 글씨는 안 그래도 아이들 문제 때문에 편치 않은 주말 아침에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팀 막내가 꿈을 가지고 3년이나 근무했지만 꿈을 찾지 못해 떠나겠다는 내용이다.
처음 팀장이 되었던 5년 전에는 심란했을텐데 중소기업-대기업-스타트업-중소기업을 거치면서 단련된 내 뇌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 같지도 않은 정리를 해낸다. '그래 꿈 이뤄야지.' 15년 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돈 벌어야 돼서 다니는 목적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 그 친구의 그런 생각과 퇴사 의지는 신선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름만 주식회사인 개인기업에서 대표이사가 모든 결정권을 쥔 현실과 타협을 하다가 하다가 안되니 퇴사한다는 말은 '꿈'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내가 드는 두 가지 생각은 '그 꿈을 꼭 이룰 때까지 배고파도 힘들어도 이겨내기를 응원해.'라는 생각도 '나도 니 꿈이 뭔지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잠잘 시간도 없는 주중에 내 시간을 빼서 면담을 해도 조직생활의 니 목표마저 이해하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라. 나는 무능하다.'라는 것이었다.
밀레니얼 세대, 자기주도적 학습을 학교 다닐 때 배운 세대에게 서태지와 신해철, 마지막 학생운동,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교차점인 X세대인 나는 팀원일 때는 그냥 오늘 욕이나 안 먹고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고 팀장이 되어서는 이제 위아래로 눈치를 봐야 하는 생전 큰 소리 한 번을 못쳐 보는 존재가 되었다.
청년실업이 수백만이 되어도 작은 회사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 이건 뭐 왕이 아니라 황제로 군림하는 사장과 그 밑에서 아니라는 말 한마디 못하는 참모들, 그리고 그도 모잘라 사람 두 명만 모여도 패거리를 나누고 정치를 하는 짓거리까지 자기주도와 자아성취, 누구나 한 장 쯤은 받는 상장을 모두 받았던 세대로서는 이 사람들의 행동은 그냥 이해 안되는 짓거리일 뿐이다.
X세대만 해도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주의의 사람이 많아서 선배들한테 고생고생해서 배운 일 후배들한테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다 계속 생존해서 조직에서 팀장이 되었고 그렇게 나만 좋은 성적을 받으며 했던 일들은 결국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고 나누어주지 못해 혼자 독박을 쓰고 나지 않는 실적을 붙들고 밤을 지센다.
'나도 그만 두고 싶다. 간절히. 그래서 이번 주도 벼락 맞을 확률보다 더 적다는 로또를 한 장 샀다. 왜? 너보다 더 절실하게 퇴사하고 싶으니까. 집값이 미쳐버렸는지 밀려있는 아파트 융자금과 하루도 빠짐없이 돈이 필요하다는 내 가족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벌어다 주고 싶은 내 마음과 점점 옷 벗고 현직에 있는 후배들에게 손 벌리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또 용기없는 나를 질책한다.'
팀원들은 말한다. '저도 팀장님만큼만 실력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좀 가르쳐 주세요.'라고. 그래 나는 그 말 때문에 오늘도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다 퇴근한 사무실에서. 그 얘기가 잘한다는 얘기가 아닌데 너 일 좋아하니까 너 혼자 열심히 하라는 얘긴데.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구분도 못하면서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또 사람을 충원해야 하겠지? 인건비 때문에 힘들다는 대표 얘기를 들으면서. 오늘 이메일을 보면서 나는 수십년 전 도덕인지 윤리인지 책에 나왔던 '역할행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그 역할행동 뭘까? 대체.
한 가지 역할만 잘하기도 어려운데 그 놈의 역할행동이라는 말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일하면 죽어.'라는 말을 모니터에 비친 나에게 하면서 후배의 이메일을 다시 읽는다.
이럴거면 팀장질도 안했어야 하는데. 오늘도 후회한다. 현실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