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람에 대한 이해
회사원도 별로인 직업은 아니겠지만 회사원이라는 꿈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날 서재를 정리하다가 고등학교 때 생활기록부를 보게 되었는데 소름끼치게도 고3 때 내 진로에 대한 꿈이 '회사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알고 적은 건지 아니면 담임 선생님이 대충 써 주신 건지도 모른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수많은 한국 소설들을 읽으면서 한 발 더 나아가 지금도 끊임없이 해외 소설들을 읽어가면서 나는 여전히 이 월급쟁이 생활이 끝나면 글을 쓰고 싶다라는 구체화되지 않은 꿈을 가지고 있다. 글... 지금도 쓰고 있지만 많이 쓴다. 컨설턴트를 하면서도 많이 썼고 조직의 리더로 일하면서도 수없이 썼다. 꾸준히 글짓기는 하고 있는데 원하는 글짓기가 아니어서 그렇지 예전에 비해서 밤낮없이 쓰다 보니까 조금의 진보는 일어나고 있는 듯 하다.
그나마 같이 일하는 구성원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세번째 팀장을 맡은 2013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전에 운영팀장으로 6개월을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조그만 회사에서 할 사람이 없어서 떠맡은 일이어서 나도 내 구성원이었던 5명의 팀원들도 많이 힘이 들었다. 난 무조건 성과를 만들고 결과를 이끌어 내는데 집중했고 내가 하는 업의 특성상 여자팀원들 뿐이었던 운영팀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 6개월동안 나도 힘들었지만 그들도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이후에는 컨설팅 회사에서 세 차례 팀장 승진에 대한 제안이 있었지만 응하지 않았다. 나는 리더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근데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이 바닥에서 리더가 되지 않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가 없었다. 한 동안 혼자 돈을 벌어야 했고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팀장으로 다른 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도 역시 팀장 생활은 쉽지 않았다. 작은 펌이었기 때문에 대표와 구성원 간의 갈등에 한 중간에 서 있어야 했고 완충제가 되어야만 했다. 거기에 꼴같지 않은 옆 팀장의 견제까지. 그래도 세상은 더 많은 기회의 터전이었는지 얼마 되지 않아 더 큰 조직에 기획팀장으로 스카웃이 되었고 잘 해보고 싶은 마음에 내 돈을 들여 구성원들 성향 진단도 해 보고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케어하기 위해 밤잠도 줄이며 일했고 결국 지금의 수면장애가 생겼다.
그리고 두 번 더 팀장 자리를 거쳤고 한 단계 더 진급을 해서 지금은 애매한 위치에 앉아 있다. 근데 이 시점에서 나에게 되묻게 된다. 과연 세일즈와 기획의 스펙을 가졌던 내가 운영-기획-전략팀장을 거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는 늘었을까? 라고. Insight? 그건 잘 모르겠지만 팀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좀 공부를 했었던 관상학에 대해서 책을 더 보기 시작했다. 성격이나 성향 진단이라는 것도 해 보기도 하고 개발해 보기도 했지만 신뢰도는 사실 잘 모르겠고 차라리 면상을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지금 이 시점에서 나쁜 사람은 귀신같이 가려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좋은 사람을 잘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지.
지난 5년 간 크고 작은 조직에서 팀장을 하면서 늘어난 게 있다면 그건 직관을 중심으로 한 사람의 활용방법 정도라고 생각된다. 처음 리더가 되었을 때는 내가 모두 관여하고 함께 했던 일들이 지금은 점점 더 사람을 믿고 나누고 결과만 점검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진행사항은 더디지만 바꾸고는 있다.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노력했기 때문에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회사에 있는 몇 년동안 어이없고 황당한 일도 많이 당했지만 그게 요즘 같은 세상에는 큰 회사라고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큰 회사는 선발자원 자체가 작은 곳보다는 좋으니 구성원들의 학습력이 좀 더 나은 편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한 리더가 얼마나 사람의 인간적인 면을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일의 성과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너무 당연하게도.
7년이라는 시간동안 트렌드 서적의 외부집필자로 활동하면서 여러 트렌드를 관찰하고 글을 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유행은 많이 변할지 모르지만 그건 상품의 유행이지 우리나라만큼 사람 마인드의 쇄국이 심한 나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나이 든 꼰대보다 젊은 꼰대가 더 무섭다는 농담을 가끔 듣게 된다. 생각해 보면 이 사회의 고질화된 사회와 계층구조가 진정으로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기회를 막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k대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을 보고 기가 막힌 적이 있었는데 공부 잘하는 순으로 좋은 자리에 취직했으면 좋겠다는 글이었다. 공부도 잘한 친구인데 그런 사고를 갖고 있는 게 안타까웠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열심히 노력한 것보다는 백그라운드가 법보다는 자본이 우위를 점하는 이 사회에서 그 친구의 글도 공분은 사지만 생각해 볼 수 있는 정도라고는 느껴졌다.
팀의 구성원이 한 명, 두 명 늘어가면서 지금도 여전히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알기 위해 노력하고 한 번이라도 더 이해하는 방향으로 시각을 바꾸려고 애쓰고 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오늘도 쉽지는 않다. 조직은 더 많은 것을 리더에게 요구하지만 조직의 단순한 논리처럼 그게 '연봉이나 권력을 주었으니 그 정도는 해야지.'는 아닌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조직에서 실무를 겸하는 팀장이 사람에 대해서 우위를 점하고 힘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