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ND talk no.43

불편한 현실, 직면에 대하여...

by 오얼 OR

대기업과 중소기업, 컨설팅 회사를 넘나들면서 내가 몸으로 깨달은 게 있다면 우리나라 기업 내부의 구조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시스템이라는 미명 하에 정말 정규직인 대다수에게는 실질적인 일보다 명목적인 일에 더 신경을 쓰게 만든다. 대기업에 오래 있다가 나와서 할 수 있는 건 솔직히 뭐가 있는 사람은 다행이다. 대다수는 그냥 간판 장사를 한다. 나는 S출신이네, 나는 L출신이네 하면서 과거에는 그 간판 장사가 한참 통했는데 지금은 기업들이 젊어지고 스타트업의 창업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그 간판 장사가 점점 사양길로 가고 있다는 게 큰 문제지만 아직도 그러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실제 해야되는 일들은 중소기업에 거의 다 아웃소싱을 줬기 때문에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실제 그게 뭔지 내용을 아는 건 눈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 임원으로 와서 할 수 있는 일은 일의 명분을 찾고 누가할 지 정하고 왜 효율 안 나는데 아웃소싱 안 주냐고 묻고 대표한테 잘 보이려고 정치하는 그런 것들이 전부다. 그러다 1~2년 되면 짤리거나 자기 발로 집에 가거나 그러다가 또 나가서 자기 법인을 내놓고 나는 어디 출신인 성과전문가네, 나는 기획전문가네 그 놈의 전문가 타령하면서 세월을 보낸다. 사실 까놓고 보면 일 잘하고 정치력도 좋으면 대기업에 있지 왜 나왔겠냐? 라는 상식만 있어도 그런 사람들 쓰면 안되는데 작은 회사들의 사장은 늘 대기업 제품 사다 쓰는 게 희망사항이기 때문에 사람마저도 대기업에서 데려다 쓰려고 한다. 하긴 내가 본 경우만 봐도 1,000억 매출하던 회장도 대기업 과장하고 호형호제하면서 노는 판국인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뭐가 달라졌겠나? 그러니 뭐 매년 쫓겨나고 또 딴 데 가서 간판 장사하고 쫓겨나고 하면서 스스로가 완전히 쓸모 없어질 때까지 구르고 구른다. 주변 환경을 욕하면서 말이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다만 너무 대다수가 그러니까 문제지.

중소기업 뭐 말해 무엇하겠나. 대학생들이 다 안가려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는 성장이라도 있었으니 중소기업에서 일배워서 독립하는 사람도 있고 실무를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회사 찾기도 어렵다. 그냥 일에 대한 숙련도 낮은 사람끼리 모여서 계속 배움을 갈구하면서 사는 분위기가 대다수다. 일은 힘들고 오래 걸린다. 왜? 한 번에 일이 되면 그럴 일도 없는데 숙련도가 낮으니 하고 또하고 하고 또하고 찾아보고 또하고 배워서 또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차피 완성품은 하나인데, 한 번에 하나만들 수도 있는 일을 고치고 또 고쳐서 한 열 번에 걸쳐서 하니 젊은 친구들이 보는 비효율이 바로 그런 것일 거다. 근데 이런 중소기업도 임원은 대기업에서 왔거나 패밀리거나 해서 욕하고 갈굴 근거를 찾는 게 일이고 중간관리자인 팀장은 뭐 그냥 동네형인 경우가 대다수다. 능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몸으로 배웠다. 이론이 좀 겸비되면 좋으련만 공부는 안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와 함께 있는 팀원들은 밝은 미래를 향해서 계속 바깥에 좋은 멘토를 찾아 헤매이는 불쌍한 구조도가 계속 그려진다. 거기에 쓸데없는 구멍가게 행사들은 어떻게든 경력 쌓겠다고 버티는 청춘들에게 가끔씩 쇠파이프로 때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한다. 내가 이럴려고 대학 나왔나. 사실 대학 나와서 그보다 못하게 사는 사람도 많은데 나도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올 사람 없어서 폐교하는 학교도 많은데 대학나온게 자랑도 아닌데 이상한 보상심리를 갖는다.

이렇게 17년 전에 노동경제학 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퍼펙트하게 양분화되어 있다. 근데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잘하는 사람은 대기업에서 은퇴한다. 근데 대기업에서 어설픈 사람들은 먹고 살아야 되니까 중소기업에 오게 되고 결국 간판 장사를 하게 된다. 그 이후 더 골때리는 건 자기 형편 생각도 안하고 새마을 운동을 하는 것이다. 낙후된 중소기업 사람들을 구원할 구세주가 자기인 것처럼 계몽운동을 펼친다. 이런 사람 정말 여럿 봤는데 끝이 좋은 사람은 못 봤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정말 일을 하자고 덤비면 꽁무니를 뺀다. 차고 넘치는 게 시간이고 할 일 없는 거 뻔히 아는 데 스케쥴표 찾아대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시간을 보낸다. 그냥 잘 모르겠다. 직접 해 본 적 없다. 못 하겠다. 하면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죽어도 똥폼을 잡고 죽고 싶은지 자기가 바빠서 그렇단다. 거기에 중소기업 사람들은 알 수도 없는 심오함이 있단다.

대기업에서 살아온 몇 년의 시간 동안 나는 그런 세상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해가 지나면 팀 분위기에 묻혀서 인센티브 받아서 여행가고 차 바꾸고 매일 매일 역할론을 놓고 동료 팀장들과 좋은 말로 회의 전쟁을 진행하고 그러다 연차차면 진급하고 뭐 그런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중소기업에서는 제왕주의적 리더십도 리더십이라면 갖고 있는 사장이 비효율적이어도 자기 방식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매일 해대고 그 주변에는 왜 이리 똥파리들이 많은지 알량한 사업에 콩고물이라도 좀 얻어먹겠다고 덤비는 사기꾼들로 한가득이다.

왜 다들 그렇게 살까? 생각해 보니 '자기 자신이 없어서'라는 아주 없어보이지만 철학적인 결론이 나왔다. 스스로 뭘 할지 뭘 잘하고 뭘 좋아하고 앞으로 자기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에 대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거 이를 악물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매달리다 보니 결국 자신의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세월 지나면 무능한 채로 간판 장사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곧 죽어도 자기 못한다는 생각은 안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그나마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 마저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못하는 것도 자기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나마 그것도 없이 자만 속에서 살아간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좀 고쳐주거나 얘기를 해 주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좀 마인드가 바뀌었다. 그냥 두자. 안 고쳐진다. 계속 그냥 도전과제를 주자. 자존심이 있어서 못한다고는 못할테고 혼자 스트레스 받고 속을 썩겠지만 내 속은 아니니 괜찮다. 근데 가만 있으니까 가마니인 줄 알고 자꾸 이런 사람들이 건들어서 귀찮기도 한다.

'나는 미륵이다'라고 생각하는 중소기업 사장과 '느네들 수준에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대기업 출신의 임직원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들을 직면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있다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에 과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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