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팀장

4. 저성과자에 대한 피드백

by 오얼 OR

사람에 대한 피드백 어디까지 해야 되는 걸까? 한 일에 대해서 평가하고 그 일을 더 강화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기 위해서 쓰는 피드백은 말만큼 쉽지 않다. 성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니까 상관없지만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그저 그런 성과나 그 이하이고 오늘도 말을 해야 하는데 말 꺼내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본부장 호출이다. “박팀장, 지난 번 내가 소개한 사람하고 얘기한 건 있잖아. 우리 신사업을 벌리자고 했던 자격증 사업, 그거 조사 어떻게 되고 있어?”

“정리 중입니다. 마무리되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누가 맡아서 하고 있는데?”

“사업기획파트에 김누리씨가 맡아서 진행 중입니다.”

“다른 사람 없어? 왜 그 친구야. 내가 이번 건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서두르자고 했잖아. 저 쪽에서는 도와준다고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시간을 끌면 어떻게 해?”

“서두르겠습니다.”

“이번 주까지는 나한테 1차 드래프트(draft, 초안)는 줘.”

“네.”

이상주의자 이본부장, 답이 없다. S그룹에서 스카우트되어 왔다고 목에 힘주고 있지만 와서 벌렸던 SI(시스템 개발, system integration)사업, 이북(전자책, E-book), 스마트 클래스(smart class)를 비롯해 국내외 사업 중 어느 하나 신통한 것이 없다. 매일 대표이사와 대면하고 있으니 압박을 받을 것이고 조급할 것이다. 감정을 거를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나에게 그대로 사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뱉어내고 있으니, 하지만 괜찮다.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매일 아침 반복되는 전략 회의가 끝나고 담배 한 대를 피우러 가면서 지나가는 팀원에게 이야기를 툭 던진다.

“김누리씨 출근했지? 10분 있다가 챌린지 회의실에서 나 좀 보자고 해요. 지난 번 사업안 갖고 보자고 그래. 그렇게 얘기하면 알 거야.”

요즘 보기 드물게 팀원이 열 명이나 되는데 사실 쓸만한 사람? 아니 맘에 드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 둘 손으로 꼽을 정도. 그냥 보고 있으면 뭐 하는지 잘 이해가 안가는 사람도 있고 하루를 그냥 때우러 나오는 사람도 눈에 보인다. 성과는 내야 되고 같이 할 사람은 없고 그러다 보니 나름 믿는 팀원에게 일이 편향되는 것도 사실인데,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아침 내 받은 스트레스를 담배 연기에 태워서 날린다. 아침 회의가 끝나고 나왔는데도 출근 시간 전, 커피 한 잔, 한 모금의 담배 연기. 감기약 먹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구름 속을 걷는 기분이다. 다시 정신을 붙들어 매고 챌린지 룸으로 들어간다.

“좋은 아침이에요. 일찍 나왔네.” 맘에도 없는 인사를 날리고 출력물을 살핀다.

“팀장님도 일찍 나오셨네요. 지난 번 말씀하신 건은 제가 조사해 봤는데.”

“네. 그 결과 좀 퀵하게 봅시다.”

“지난 번 본부장님하고 같이 이야기 나눈 생활체육 관련 자격증 사업은 이본부장님이 소개해 주신 분은 저희한테 독점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찾아보니 벌써 미국에 있는 해당 자격증 협회가 국내 지사를 만들고 직접 운영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이야기는 3분 간 계속 되었다.

“네. 알겠어요. 그래서 누리씨가 내용 검토한 결과는 어때요? 저한테 지금 보여준 안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은 없는데.”

“제 개인적인 의견을 물으시면 저는 이 사업 안 했으면 합니다.”

“네. 저도 동일한 의견이에요. 근데 이 보고서만 보면 여기 저기서 가져와서 합친 자료들은 나열되어 있는데 검토 의견이 없네요. 사실 이것만 보고는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좀 내용의 기-승-전-결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자료 자체는 명확한 내용을 담으려고 많이 신경 쓴 것 같은데 우리가 현상만 보고 말 건 아니잖아요. 추가로 내용을 더 찾아보지는 말고 안 해야 된다고 하면 그 부분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들을 좀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네.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언제까지 가능해요? 본부장님은 이번 주에는 다시 리뷰하자고 하시는데. 최대한 시간을 끌어봐도 금요일 점심 때는 얘기해야 하니까 저한테 목요일 오후 4시 전에는 주세요. 저도 좀 보고 의견을 줄게요.”

“네. 그런데 팀장님 좀 더 정리해서 다음 주에 보고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누리씨, 이 일은 지난 주부터 진행해 온 일인데 1차안도 아직 안 나왔어요. 본부장님도 기다려 주는데 한계가 있지 않겠어요? 이번 주에는 들어가서 보고합시다. 서둘러 주세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죠. 시간 오래 걸린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지나갑시다.”

“네. 팀장님 잠시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러시죠. 업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무슨 일 있어요?”

“팀장님, 학부에서 제 전공이 뭔지 아세요?”

“갑자기 전공은. 무슨 하고 싶은 얘기 있어요?”

“저는 미디어 쪽 전공을 했는데요. 팀장님 저희 팀 맡으시기 전에 신사업팀에서 홍보 쪽 담당하려고 입사했고요. 요즘 하는 일들은 제가 이 회사에서 하려고 했던 일이랑 거리가 있는 것 같아서요. 제 나름대로 기획안을 내려고 자료를 찾고 내용을 작성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거기에 비해서 인정도 못 받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팀장님은 이 분야에 전문가시니까 몇 분 보시고 저에게 수정, 보완할 내용을 툭툭 던지시지만 저는 이거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저한테 좀 더 디테일하고 이해가 쉽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속에서는 점점 화가 끓어오르지만 억눌러 참는다. “네. 그러죠. 근데 수정안은 목요일에 봅시다. 저도 일이 너무 지연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리씨가 뭘 전공했는지는 제가 외우고 있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현재 주어진 일이 잘 안되고 있는 부분은 저도 누리씨도 공감할 겁니다. 어려움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팀이 새로운 사업을 계속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저도 생소한 부분이 많고 다른 일을 맡은 팀원들도 누리씨랑 같이 찾아가며 공부해 가면 새로운 안을 만들어 내고 있어요. 좀 더 고생해 주세요.”

“네. 가보겠습니다.”

잠시 숨 좀 돌릴 겸 혼자 창 밖을 바라본다. ‘김누리도 전공 찾아대는 데, 내 전공은 뭐지?’

김누리, 전형적인 C-player(저성과자)다. 하고 싶은 일은 뭔지 모르겠지만 아직 내가 찾아주지 못한 건 확실하다. 무슨 일을 맡겨도 공상과학 영화로 만들어서 가져온다. 앓느니 죽고 싶지만 나도 바빠서 앓아 눕기 일보직전인 보고서를 받아보고 있다. 피드백, 솔직히 할 말이 없다. 하는 일마다 이건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도 모르겠고 보고서의 시작과 끝도 없고 설명을 듣다 보면 안 되는 이유를 발굴하기 위해서 회사 다니는 사람 같다. 어르기도 해보고 달래보기도 하고 이야기도 들어줬다. 물론 그 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듣는 모습이 경청에 해당된다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열심히 들었다. 무슨 일을 하자고 해도 시원한 답이 없다. 입사한 지 3년이 넘어 이제 내년이면 대리가 되야 할 시기인데 뭐 하나 뾰쪽하게 하는 일도 없고 안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는 일도 없다. 지난 연말 성과평가 때 내가 제일 먼저 주저하지 않고 C를 준 인물이다.

알기는 아는지 내년 진급을 대비해서 요즘 나한테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필을 하고 있다. 전공 타령도 그 중 한 가지인 것 같은데 사업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팀 입장에서 홍보까지 갈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서 런칭시키는 게 우리 팀이 주로 하는 일인데 팀원들 면면을 보면 거기에 딱 맞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 자신에게 물어봐도 이런 일을 하려면 어떤 전공을 해야 딱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지난 해 성과면담에서 저 친구는 나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팀장님은 사업기획 파트 쪽보다는 교육기획 쪽에 더 신경을 써 주시는 것 같아요. 작년에 교육기획 쪽 김과장님은 고과 잘 받아서 바로 진급했잖아요. 팀장님이 많이 신경 써 주신 것 같은데.”

그래 김과장, 내가 진급에 많이 신경을 쓴 건 사실이다. 나한테는 그만한 일꾼도 없었다. 파트장으로서 역할도 충실히 해 줬고 내가 사람 때문에 골치 아플 때 교통정리도 나서서 깔끔히 해줬다. 여자 팀원 일색인 우리 팀에 남자 팀장인 내가 관리하기 어려운 감성적인 관계적인 커뮤니케이션도 맡아서 내 곁에서 늘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기혼자에 어린 아이가 있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이고 지방이고 가리지 않고 일이 있는 곳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 끝을 보는 성격 때문에 언제나 일의 결과를 들고 나에게 찾아왔다. 연말에 대표이사 면담 때 우리 본부에 있는 과장 T.O(Table of Organization, 인력 편성) 얘기가 나왔을 때 주저 없이 김과장을 추천했다. 물론 내가 그런다고 해서 본부장이나 대표님 결정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참고자료 일 뿐이지.

하여튼 그 친구가 그런 얘기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진급은 신경 쓰였는지 그런 얘기로 포문을 열었다. 10명 팀원들에게 늘 이해와 협업을 강조했던 내 입장에서는 누리씨의 말이 많이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에 대한 성과라는 팩트(fact, 객관적인 사실)를 가리고 팀 내 분위기나 힘의 구도를 이용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썩 유쾌하지 않았다.

“저는 누리씨가 연초에 그리고 상반기 지나서 중간 점검할 때 저하고 이야기 나눈 목표에 대해서 서로 객관적으로 바라봤으면 해요. 새로운 아이템을 상하반기 4건 이상 발굴하고 2건 런칭하기로 합의를 했는데 최소한 본부장님 동의를 받을만한 아이템도 찾지 못했고 런칭은 고사하고 한 해가 또 이렇게 지났잖아요? 신사업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는 점 저나 누리씨 둘 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일 겁니다.”

“팀장님 저도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저희 회사가 그룹에서 투자 받는 재원도 한계가 있고 제가 더 큰 매출을 낼만한 사업 아이템을 찾고 런칭시킨다고 해도 그게 현실적으로 실행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저도 여러 기획안을 드렸는데 좀 억울합니다. 제가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잖아요.”

“저도 누리씨가 아무 것도 안 했다는 건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1년 동안 업무 진행한 성과를 보면 누리씨 입장에서도 이렇다 할 어필 포인트가 없는 건 사실이잖아요. 말씀하신 현실적인 상황도 저도 간과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도 책임이 있겠지만 투자를 이끌어 낼 좋은 안을 내지 못한 것은 현실입니다.”

“왜 저만 그렇게 미워하세요? 제가 기획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도와주시지도 않고 저도 팀장님하고 같이 계속 일하는 게 제 개인으로 보면 비전이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네? 제가 왜 누리씨를 미워하겠어요. 서로 성과가 좋지 못하다 보니 감정으로 치우치는 것 같은데 우리 팀이 맡고 있는 신사업 기획 일이 올 한 해 좋은 흐름으로 가지는 못하고 있어서 저도 고심 중입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누리씨한테 나쁜 감정 없어요. 저도 저랑 함께 일하는 팀원들 개개인의 성과가 좋고 승진도 빠르기를 원하지 제가 왜 누리씨 앞길을 막겠어요. 무슨 권리로.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내년에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방안을 좀 생각해 봅시다.”

예상했던 마지막 결과가 왔다. 개인적인 미움과 분노, 일을 객관적으로 볼 생각도 왜 성과가 안 나는지 알 생각도 별로 없다. 다만 지금 받을 고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발끈한다. 결국 편애한다고 생각한다. 별 일도 없어 보이는 김과장은 팀장이 진급을 밀어주고 밤새 열심히 한 자기는 객관적인 사실을 들이대니 기분 좋을 일은 없겠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탁월하게 포인트를 못 맞추는 팀원이다. 동료의식이 부족한 건 나와는 다른 세대의 사람이니 받아들이겠지만 일에 대한 협업이 안 된다. 혼자는 무엇도 하기 힘든 조직 사회에서 혼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을 억지로 밀고 나가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힘껏 분 풍선을 놓아버리듯 일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 넘긴다. 같이 협의하고 들어가서 추진하는 일이라면 내가 더 많이 도울 수 있을 텐데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기도 하고 근거 없는 주장으로 회의 자리에서 망신살이 뻗친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결국 그 친구가 분 풍선은 묶어서 튕겨 볼 기회도 없이 내가 묶어 주기도 전에 추진력을 내며 날아가 버린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찾을 수도 없는 곳으로.

대다수의 저성과자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은 안다고 하지만 팀장 입장에서 보면 힘을 쓰지 않을 곳에 헛된 힘을 주고 있거나 현실성 없는 일에 시간을 끈다. 결과가 좋으면 이상하다.

수용력도 높지 않다. 사람들은 리더의 경청을 중시하지만 현재 주니어 레벨에서 일하는 친구들 역시 젊은 꼰대가 많다. 그냥 듣고 싶지 않다. 나도 잘났고 너도 언제까지 나랑 한 팀에 있을지 모르니까. 결국 일을 못하는 사람과는 관계도 편히 맺어지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팀장만 꼰대고 꼰대인 팀장이 강압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어서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과 탄력적인 조직구조를 갖추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팀에 내가 보는 입장에서 팀에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 하려면 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몫을 해야 한다. 일이 양이든 전문성이든 자기 포지션에 맞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야 아무리 강한 주장이라도 말을 하는 팀원도 듣고 있어야 하는 팀장도 서로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다. 일을 중심으로 보면 일의 지배력이 다른 상황에서는 결국 열쇠를 쥔 사람이 우위를 가질 뿐이다. 그게 예전 조직에서는 힘의 구도, 권력, 정치였겠지만 세대가 넘어가면서 아주 서서히 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김누리는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관리와 육성 두 가지를 다해야 하는데 나의 여력도 문제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녀의 수용력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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