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팀장

5. 고연차 팀원에 대한 피드백(1)

by 오얼 OR

오늘도 어김없이 소집되는 아침 티미팅(tea meeting), 9시 출근인데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7시 반에 나와서 아젠다(agenda)를 적은 보고서를 출력하는 복합기 옆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아이디 카드(ID card)를 목에 걸고 회사라는 곳에 출근하고 싶어했던 대학생 때의 생각이 참 모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큰 목표도 없고 취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그 2000년대 초반, 마음은 급했고 주변에 하나 둘씩 대기업에 취직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심 부럽기도 했고 그 때 당시에는 드물게 인턴 경험에 공모전 입상에 나름 남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는 자신감도 있었다. 구직활동을 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한 그룹사에 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대기업에서 나와 중견기업, 컨설팅 회사를 거쳐 다시 다른 그룹사에 팀장으로 나름의 스카우트를 받아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입성했을 때만 즐거웠을 뿐 컨설턴트로 나름의 자유로운 삶을 살던 나에게 대기업의 팀장이라는 자리 그리고 연봉만큼의 강압적인 문화는 생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매일 매일 반복되기도 하고 새롭게 튀어나오기도 하는 문제들, 어디서 이렇게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는지 혼자 전임자를 원망하기도 하고 적극적을 움직여 주지 않는 팀원들을 탓하기도 했지만 몇 개월이 지나다 보니 그런 것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 자신을 다잡는데 힘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담배 한 대와 커피 한 잔 그리고 다시 대표이사실 테이블에 각 본부의 본부장, 회사의 전략과 기획을 담당하는 나와 영업팀장들이 모였다.

대표이사가 먼저 입을 연다.

“백팀, 요즘 그룹영업 실적 왜 이래? 지난 달 대비해도 벌써 5억 가까이 빠지고 작년보다는 8억 가까이 빠졌잖아? 이래 가지고 목표까지 갈 수 있겠어? 뭐 대책을 세우고 있는거야?”

“아 네, 지주사는 괜찮은데 계열사들이 전반적으로 실적이 안 좋아서 교육하고 콘텐츠 개발 수주가 많이 줄었습니다.”

“뭐 현황은 그렇고 어떻게 할 계획이야?”

“대책 세워서 따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근데 사업기획팀 쪽에 그룹전략이 좀 미비한 점도 있고 해서 사업기획팀 박팀장하고도 협의하겠습니다.”

‘왜 나는 물고 늘어져.’ 눈치를 줬는데 물귀신처럼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백팀장, 대학 4년 선배인데 참 답이 없는 사람이다. 정말 객관적으로 얘기하면 세월을 잘 만나서 팀장자리까지 올라갔지. 잘렸어도 벌써 잘려 나갔어야 하는 사람인데 영업본부장이 데려온 S그룹 출신이고 사내정치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특성들을 가지고 여기까지 살아남았다. 개인적으로는 친하게 지내지만 남에 대한 뒷담화도 심하고 일 처리도 아둔하고 해서 일로는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박팀장, 그룹전략 쪽 담당자가 누구지?”

“네. 신차장입니다.”

“그 친구 지주사에서 넘어온 지 얼마 안됐지?”

“네. 석 달 됐습니다.”

“그렇군. 원래 영업기획 쪽 일하던 사람이니 뭐 지주사에도 있었고 나름 감각이 있을 텐데. 박팀장보다 더 나이가 위라서 불편하겠지만 잘 좀 손발을 맞춰봐.”

“네. 백팀장과 신차장과 협의해서 복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러고도 한참 회의는 계속 되었다. 8시 50분, 여러 가지 숙제를 받아 회의실에서 나왔다. 머리가 복잡하다. 자리로 가서 다이어리를 던져 놓고 담배갑에서 담배를 한 대 뽑는다. 너털너털 걸어가며, 앉아 있던 이대리에게 취조하듯 묻는다.

“신차장 아직 안 나왔어?”

“네. 좀 전에 연락 왔는데 오전에 계열사에 미팅 잡혀서 직출한다고 팀장님 나오시면 말씀 드려 달라고 하던데요.”

“그럼 나한테 메시지라도 보내지. 왜 그걸 이대리를 시켜?”

“팀장님 아침 회의 들어가셔서 그런 거 같은데요.”

“알았어.”

이대리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백팀장이 얘기 좀 하자고 손짓을 한다.

1층 흡연실, 영업1팀 백팀장 그리고 나, 좀 거리를 두고 영업2팀 홍팀장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내가 먼저 백팀장에게 입을 연다.

“선배, 뭐 돈 나올 구석 없어요? 대표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며칠 있다가 대책 있냐고 또 물어볼 텐데 어쩔라고 계속 대안도 없으면서 시간만 미뤄요.”

백팀장이 누가 들을까 조심스러운지 손짓을 하며 목소리를 낮추라고 한다.

“이번 주만 어떻게 넘기자. 지주사에서 그룹 전체 교육으로 프로그램을 하나 런칭하려고 한데 그거 우리랑 같이 한다고 하는데 한 석 달 후부터 그룹 전체에 돌린다니까 다음 달부터는 기획하고 개발 들어갈 거야. 그러면 매출 좀 나올 테니 그 때까지만 시간을 벌자.”

“우리가 무슨 하루살이에요. 맨날 대책 없이. 연초에 계획은 왜 잡았어요? 그거 지주사 담당들이랑 얘기된 거 아니었어요?”

“너도 알잖아. 요즘 비용절감 때문에 다 난리야. 회장님이 나서서 사내방송까지 나와서 난리인데 누가 그렇게 돈을 쓰겠어. 신차장 핑계 대고 이번 주만 넘겨주라. 어차피 그 양반 진급도 못하고 계열사로 떨려나 있는 거잖아. 그리고 니가 좀 핸들링할 수 있고, 내가 그 양반하고 어제 술자리에 있었는데 니가 사람도 좋고 머리도 빠르다고 칭찬하던데. 대표도 지주사에 쓸데 없는 소리하고 다닐까 봐 신차장 그냥 조용히 데리고 있어하고 싶어하는 눈치던데. 내가 지주사에 알아보니까 그 양반 그룹 영업기획 담당 표상무 신복이었는데 표라인 날라가면서 우리 회사로 온 거래. 니가 좀 이용해 봐.”

백팀장 저 인간은 눈에 일은 안 보이고 매사가 저런 식이다. 정말 학교 선배만 아니면 대판했을 텐데 거지 같은 학연, 지연을 얽힌 한국 사회, 나도 결국은 큰 소리 못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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