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팀장

6. 고연차 팀원에 대한 피드백(2)

by 오얼 OR

열 한 시가 다 된 시간, 신차장이 아주 밝은 미소를 지으며 팀원들과 복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가방을 놓고 다가오더니 오늘 미팅하고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다며 시간이 되냐고 묻는다.

다시 챌린지 회의실, 신차장과 나 종이컵 두 개를 사이에 두고 둘이 앉았다.

“팀장님, 아침에 K카드에 갔었는데요. 이번에 새로 시스템 개발을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예산이 한 10억 정도 되는 것 같던데 이번에 저희가 수주하면 영업1팀도 저희도 괜찮지 않을까요?”

“네, 뭐 그거야 그렇죠. 근데 그 프로젝트 언제쯤 발주 낼 예정이라던가요?”

“상반기 중에는 발주 낼 거라 그러던데요?”

“몇 월이라고 말은 없던가요? 지금 3월인데 언제쯤이 될지 예상은 하고 가야 할 거 같아서요.”

“그건. 제가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네. 그러셔야 될 것 같아요. 매달 이렇게 쪼이는데 상반기 중이라고 보고 드리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쪽 팀장님하고 미팅하셨나봐요?”

“아뇨. 거기 팀장님은 좀 바쁘셔서 제가 지주사 같이 있을 때 후배인 천과장하고 미팅했습니다.”

천과장? 내가 그 사람 모르면 모르겠는데 정말 어리버리한 선배 적당히 얘기해서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차장이 사람 좋고 일은 잘 모르고 하니까 그냥 지네 회사 편할 때 사용해 먹으려고 정보를 안 주는 것도 아니지만 제대로 된 정확한 정보를 주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 일은 그 일이고 대표님하고 아침 회의에서 그룹전략 얘기가 나왔어요. 영업1팀에서는 저희 쪽에서 전략은 세워줘야 자기네들이 실행은 한다는 입장이고, 지주사에서 내려오셨고 저희 사업 내용도 잘 아실 텐데 제가 왈가왈부하기가 좀 뭐해서 오신지 3개월 정도 지난 지금까지는 별 말씀 안 드렸어요. 근데 이제 대표님 의지도 있으시고 그룹 쪽 전략을 좀 고민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래야죠.”

“저보다 우리 그룹 사정도 많이 아시고 외부에서 온 저보다는 더 오래 계셨고, 근데 제가 보는 입장에서는 물론 환경적으로 어렵고 그룹 계열사라는 특성도 있지만 지금 실무를 보고 계신 부분이 너무 디테일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주사야 외주를 주건 계열사와 일을 나누던 뭔가 방법을 쓸 수 있지만 저희는 실행=매출인 조직이잖아요. 후배들 보는 눈도 있으니 그 점도 좀 생각해 주시면 제가 리더인 입장에서 감사할 것 같습니다.”

“네. 근데 너무 리소스(자원)가 없어요. 팀장님이 더 많이 느끼시겠지만 저희 팀 인원이 겉으로만 많아 보이지 하는 일이 다양하잖아요. 같이 데리고 일할 후배도 마땅치 않고 저 혼자 다 하기도 버겁고 뭐 그렇습니다. 대표님 의지가 그러시다니 전략을 고민해 보기는 하겠지만 제가 팀장님처럼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보여드리겠다고 확답을 하기도 쉽지 않네요.”

“네. 알겠습니다. 차장님도 나름 입장이 있으실 테니 감안은 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스스로 하셔야 합니다. 이건 제가 정말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제가 저보다 선배시니까 존중하는 것도 좀 더 일을 잘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려고 하는 것도 드려야 하는 정보는 왜곡하지 않는 것도 서로 존중하면서 일하자는 의미라고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같은 경우도 아침 직출도 갑자기 미팅이 잡히지는 않았을 텐데 제 입장에서는 이대리 통해서 전달 주신 것도 이해는 가지만 제가 존중해 드리고자 하는 만큼은 아닌 것 같아서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그 점은 죄송합니다.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그런데 저도 후배들 보는 눈도 있고 때로는 팀장님이 너무 강압적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좀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짬밥을 먹을 만큼 먹었는데 그냥 팀원들 대하듯이 대하시는 건 좀 그렇네요.”

정말 욕할 뻔 했다. 내가 그렇게 수 많은 밤을 세우던 지난 3개월 내내 일이라고는 뭐 하는 지도 모르겠는데 월급은 대리들 두 명 월급 받아가고, 뭐 월급이야 오래 다녀서 받는 거니까 내가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만큼 가치 있게 일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건 나보다도 자기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그 분이 얘기한대로 그 짬밥에 보직도 못 받고 본인 동기들은 대부분은 팀장일 텐데, 자기 자신의 답답함이 제일 크겠지만 그걸 극복하려는 의지도 미미해 보이고 그런 의지가 낮다는 것은 그 분의 행동으로 표출된다. 자신이 보기 민망해 하는 후배들이 자기가 수습 안하고 대충 벌려 놓고 한 일들에 대한 뒤치닥꺼리로 더 바빠진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 못한 모양이다.

“차장님, 제가 그냥 오픈해서 이야기할게요. 저도 차장이고 신차장님도 차장입니다. 직급상으로는 동일해요. 연차상으로는 저보다 위시죠. 근데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일과 포지션, 신차장님이 맡고 계신 일과 포지션은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신차장님한테 제가 팀장이라고 해서 하대하고 지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만큼 팀을 위해서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후배들 모르는 것도 좀 알려주시고 관계도 좀 챙겨주십시오. 일에 대한 성과도 좀 챙기시고요. 그런 모든 프로세스 저보다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도 입장이 참 어렵습니다. 객관적으로 저랑 일에 대해서 같은 방향을 보시죠. 저랑 몇 년 같이 더 일하실지도 모르겠고 다음 인사 때 다른 곳으로 가실 수도 보직을 맡으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려면 저도 차장님도 잘 알듯이 일에 대한 성과가 있어야 됩니다. 제가 다른 팀원들처럼 규율로 통제하고 일로 검사 받고 그렇게 관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3개월을 생각해 보시면 서로 느끼는 정도야 다르겠지만 제 입장도 고려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저도 팀장님이 노력하시는 건 아는데 일도 사람도 쉽지가 않네요. 팀장하다가 보직해임 됐을 때 정말 그만 뒀어야 되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고 다시 팀장 자리 얻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들고 머리가 복잡합니다. 일도 잘 안되고.”

“저도 입장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저희가 사내 정치를 해서 관계로 뭔가 극복해 나가는 것도 아주 그 밑바닥에는 일에 뭔가 되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점만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후배들 더 어렵죠. 저도 팀원들 대하기 참 어렵습니다. 오히려 차장님하고는 이렇게 툭 터놓고 이야기라도 나누려고 시작해 보지만 어린 팀원들하고는 생각도 많이 다르고 저를 어려워하는 것도 있어서 쉽지 않네요. 저도 내년이 어쩔지 모르는데 무슨 생각은 없겠습니까? 잘 좀 도와주세요. 저도 좀 큰 프로젝트 운영해 가시면서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뭐 있을까요? 좋은 기회 밖에는.”

“네. 팀장님. 저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네. 이번 그룹 전략도 저랑 점진적으로 의논해 가면서 조율하시죠. 저도 같이 고민해 드리겠습니다.”

신차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내 감정은 미친 년 널뛰듯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국말이 제일 어렵다고 하던데 나보다 연배도 두 살이나 위에 외벌이에 한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인 줄 뻔히 아는데 외국의 해고 문화처럼 ‘당신은 C야, 이러다가는 정리해고 대상이 될 거야.’ 라는 말을 할 권한도 없지만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는데, 보직해임이 별 것도 아니고 정치 싸움에서 밀리는 한 순간, 팀이 실적이 나지 않는 두 번째 해에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아니 더 극한 경우로 옷을 벗어야 될 수도 있다. 팀장이 되고 나서 제일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언제든 나는 그만 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매일 주지시킨다는 점과 그러기 전에 더 강력한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일 것이다. 고연차 팀원과의 피드백 미팅은 언제나 유쾌하지 않다. 그도 나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미생이겠지만 나는 알량한 팀장 보직을 가지고 있고 그는 가지고 있던 걸 조직에게 빼앗긴 기마병에서 보병으로 말에서 내린 장수의 기분일 것이다.

나는 그런 그를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 조직은 나에게 다른 것을 요구할 지라도 당신과 내가 이 조직에서 나가야 되는 어느 날까지 서로 짐을 싸면서 눈물을 보이지 않고 그냥 소주 한 잔에 털어버릴 수 있게 그럴 수 있도록 서로를 존중하고 싶다. 다만 일은 했으면 좋겠다. 내가 사회생활에 출발점에 섰던 그 시기처럼 일보다 관계가 앞에 있기에는 조직 사회의 우선 순위를 관계에서 일의 성과로 변화하고 있다.

아직도 허허실실 웃고 잘 부탁한다는 말로 일이 극복될 거라고 생각하는 신차장의 생각은 쉽게 변화하지 않겠지만 어쩌다 그의 그런 관계가 성과로 이어지더라도 그건 그 한 건에 불과할 거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가 생각하는 관계를 그가 가진 강점으로 잘 활용하도록 도와야 하는데 그런 과정도 나에게는 신입사원을 교육하는 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곱절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원래 흰 캔버스에 내가 처음부터 그리기 시작한 그림보다 남이 그려놓은 유화에 덧칠하는 게 더 많은 기술을 요하는 일이니까. 그게 더 고수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신차장과 매주 한 번은 차라도 한 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할 줄 알고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방치해 두는 건 해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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