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ND talk no.44

비판과 전문가

by 오얼 OR

누구나 남이 해 놓은 일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흠을 잡아 내야 되는 입장이라면 아니면 흠을 잡기로 마음 먹었다면 그건 더 쉬울 것이다. 애초에 일을 왜 그렇게 했는지 어떤 취지로 시작했는지는 금새 잃어버리게 된다. 조직의 일이라는 게 그렇다. 수많은 일들이 공허한 멜로디로 울려 퍼지는 경우가 많다. 절묘하게도 특히 내가 맡은 일이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겠지만 그건 일의 문제이자 사람의 문제이다.

어느 조직이든 정치적인 색깔로 이야기하면 보수, 중도, 진보가 섞여 있다. 다만 현 시점에서 우리의 주머니 사정을 보면 진보인 상사를 만나는 건 가뭄에 콩나듯이 드문 일이다. 상사의 입에서는 뭔 장사를 시작하든 '보수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미사여구처럼 덧붙는다. 내가 보고한 기획서를 보고 그 단어가 시작된다면 난 오늘 집에 다 간거다. 다시에 다시, 다시에 다시를 거듭해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보수를 만들어서 제출하려면. Critical issue(중대한 사안)은 이슈를 빼고 Critical(비판적인)만 남고 이는 비난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은 왜 서로를 칭찬까지는 못 가더라도 그냥 넘어가 주지 못할까? 너무 오래 이 생각을 해 왔다. 마치 아무 비밀이 아닌데 조직의 비밀인 것처럼 혼자 생각해 본 이 결과는 아주 단순했다. '나도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으니까. 근데 일단 니 말은 안 맞는 거 같아.'

규모가 큰 기업에서 일하면서 다른 계열사에 있는 분과 협업을 위해 프로필을 검색하다가 '담당 직무'란에 써져 있는 자신의 일을 보고 '뜨억'한 적이 있다. 정말 아주 세밀하게 자신이 하루에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을만큼 빼곡히 업무를 적어 놓았는데 직접 만나보니 세 마디에 한 마디는 자기가 전문가라는 것이었다. 한 시간여를 듣고 있다가 핵심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얘기가 싫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나니 그 분이 기세를 바꾸어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며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Critical issue에서 issue 빼내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 듣고 그리고 진짜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설명했다. 그러고 나니 그 분이 자신의 전문가 칭송을 끝내고 이제는 오히려 내가 전문가이니 그 일의 PM(프로젝트 매니저)이 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 그런 일을 당할 때는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도 없었다. '이게 뭐하자는 걸까?'

하지만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내가 잘해서 나보고 하라는 거 아니다. 그 얄팍한 전문가는 자기 밑바닥이 보이는 게 싫어서 역으로 나를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찝찝하지만 같이 웃어야 한다. 왜 냐면 그래야 나도 그 일을 안 맡을 수 있으니까. 서로 아름답게 마주보며 웃어야 한다. '저도 그렇게 깊이 알지는 못해서, 저보다 훨씬 전무가이신데요.'라고 하면서 말이다.

둘째, 자기 입으로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한 가지 일을 깊이있게 알고 Insight(인사이트)까지 가진 사람은 그냥 단순히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도 없진 않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에게 좀 알려지고 조직 내에서 인정도 받고 스스로 자기 자만에 빠지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은 쳇바퀴를 열심히 돌려서 다람쥐통의 일은 빠삭히 잘 알겠지만 주변의 비슷한 사례도 대처하지 못할 만큼 폭이 좁은 경우가 많다. 그러고 나면 깊고 넓어보이는 상대방에게 다시 전문가 칭호를 달아준다.

언젠가부터 '전문가'라는 말이 통용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학위가 있다고 회사에 오래 다녔다고 한 업무를 오래 맡아 한 자리에 긴 시간 있었다고 해서 자신을 전문가라고 소개해도 될지는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오늘도 필드로 나가면 또 전문가 타령을 들어야 될 것 같은데 동이 터오는 아침이 되니 새로 들을 타령의 작사가가 누구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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