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사유

by 서휘

이론상 서양음악사는 150년으로 나누어 중세 - 르네상스 - 바로크 - 고전 - 낭만 - 근현대 순으로 흐른다.


바로크시대 사람은 당대 음악이 '일그러진 진주'라 불릴 줄 몰랐을 것이며, 낭만시대 사람 또한 후세가 그들의 음악을 '로맨틱하다' 표현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고전시대 음악에 비해 화성이나 테크닉 면에서 화려해졌지만, 이 역시 현대인의 감각과 해석에서 비롯된 판단이다.


지금 우리가 '근현대 예술'이라 부르는 모든 예술은 어쩌면 훗날 전혀 다른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1800년대 사람에게는 교향곡에 성악을 넣은 베토벤의 음악이 모더니즘의 끝판왕이었을 터. 21세기는 더 이상 '현대'가 아닐 그들에게 우리의 예술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가겠지.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신고전주의-

오늘날의 예술은 미래에 어떤 이름을 얻을까.


시대적 착시는 생각보다 더 은밀하고 교묘하다. 우리는 우리의 기준에 맞추어 시대를 구분하고, 정의 내리고, 이름을 붙인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 중 일부는 시대적 착시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음악도 몇백 년 뒤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름 붙여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사라지더라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만 있으면 음악을 복원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국악과 몇몇 독자적 장르를 제외하면 대부분 서양음악의 틀 위에서 발전해왔다. K-pop도, 재즈도, 힙합도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고 나 또한 즐겨 듣는다. 그러나 당장 돈이 되는 대중음악의 발전에만 목매기보다 젊은 클래식 작곡가들이 더 많아지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개선되어 클래식 음악도 꾸준히 발전되었으면 한다.


부디 언젠가 2000년대 클래식을 '마지막 클래식'이라 일컫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흔히 말하는 현실감각 따위 없이 순수하게 꿈을 좇았던 학창시절, 나의 꿈은 작곡가였다. 어른이 되어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마음이 귀엽고 기특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꿈이라 아련함이 남는다.


조만간 일에 치여 잠시 잊고 살았던 작곡 노트를 다시 꺼내보려 한다. "젊은 작곡가가 많아지길 바란다"며 손 놓고 있기보다 나부터 다시 펜을 드는 것이야말로 나의 진심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테니.


나는 나의 곡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곡을 만드는 나를 사랑한다.


음악은 늘 자본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선물한다. 시간에 쫓기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잠시 멀어졌다 한들 다시금 나를 숨 쉬게 하고, 잊혀진 줄만 알았던 나의 존재 이유를 일깨운다.


오늘도 음악 덕분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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