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이는 말
"예술은 예술가의 삶을 반영한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말이다. 나는 이 당연함 뒤에 숨은 오랜 질문인 '예술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는지'에 더 주목하고자 했다.
음악을 분석하거나 예술사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을 삶의 한 방식으로 체화하려는 시도로서 자기 고백을 통해 내면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1800년대 사람에게는 교향곡에 성악을 넣은 베토벤의 음악이 모더니즘의 끝판왕이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그저 흥미로운 상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술에 대한 겸허함, 그리고 겪어보지 않은 것을 감히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해석이 어떻게 역사를 덧칠하는지,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예술적 기준이나 가치 역시 재해석을 거쳐 정립된 것이다.
같은 곡을 듣고도 어떤 이는 단선율이 주는 여운에 감동하고, 어떤 이는 단순한 멜로디가 지루하다 느끼며 또 다른 이는 그 단순함 속에서 음악성을 읽어낸다. 이렇게 예술은 감상하는 사람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만큼 그 해석 또한 결코 한결같을 수 없다.
'마지막 클래식'이라는 표현을 조금 더 완곡하게 풀어 쓸까 한참 고민하다 일부러 날것의 느낌을 냈다.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고 담백하게 말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고 느꼈다.
여기서 마지막은 시간적 정의에 그치지 않는 정신적 단절을 의미한다. 무언가 완전히 종결되는 현상에 대한 불안과 동시에 예술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이 글은 전반적으로 예술의 연속성과 계속성을 강조한다. 내가 다시 곡을 쓰기로 결심한 것도 그런 마음의 연장선이다.
무명 작곡가의 간절함이 예술의 끝을 조금이나마 늦추길, 결국 오게 될 순간이라면 아주 천천히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