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숨긴 판도라의 상자

잊지 못할 나의 연진에게 I

by 서휘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가 누군가의 가장 오래된 상처일 수 있으리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나에게도 박연진, 이사라, 전재준, 최혜정, 손명오가 있다. 하루빨리 부고 소식을 듣고 싶다가도,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건 그들의 죄에 비해 너무 가벼운 벌이라는 생각이 든다. 뜨겁고 뾰족한 음식을 아주 천천히 씹고 또 씹다가 결국 목에 걸려 공기가 새어 나가는, 그런 고통을 평생 겪어야 마땅한 이들이다.




*당부의 말씀


이 글은 누군가를 저격하거나 공격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저를 위한 글이며, 그때의 감정을 왜곡하지 않고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그녀'가 누구인지보다 그 시절 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중점으로 잡았습니다. 아울러 특정 인물이 아닌 수많은 '연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따돌림은 결코 1 대 1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녀'는 단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글이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너무 감정적이다', '다 지나간 일인데', '가해자도 반성했겠지' 같은 말이 너무 쉽게 따라옵니다. 이 글은 그렇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 보내는 선언문이자 어른이 된 제가 학생이었던 저에게 바치는 회고록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글임을 고려해 최대한 다듬었으나, 감정이나 상황을 지나치게 축소하는 일을 막으려다 보니 다소 거칠다 느끼실 만한 표현이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는 점과 이 글에 담긴 마음을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며칠 전, 무심히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 한 영상을 접했다. 영상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열정적으로 놀아주는 어린이집 교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었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체형, 몸짓, 말투, 목소리는 왠지 불쾌할 정도로 익숙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닐 거라며 설마설마했다. 그토록 악랄하게 한 사람의 학창 시절을 망가뜨린 이가 어린이집 교사가 되어 있을 리는 없다고 몇 번이나 부정했다. 아, '되어 있을 리는 없다'라기보다 '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0.1초 남짓한 찰나 모자이크가 잠시 풀리며 그녀의 얼굴이 살짝 드러났을 때, 나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영상의 댓글은 모두 훈훈했다. "아이들이 선생님 덕분에 많이 웃는다", "이런 선생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시는 선생님들께 늘 감사드린다" 등.


나 역시 영상 초반에는 '참 따뜻하고 귀한 교사다', '훗날 내가 아이를 가진다면 우리 아이도 저런 선생님께 맡기고 싶다'라며 댓글에 동감했다. 제 자식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온몸으로 아이들을 놀아주기가 어디 쉬운가.


그러나 그 주인공이 그녀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저 닮은 사람이길 그렇게 바랐건만, 늑대가 모피코트를 입고 어린양 앞에 서있듯 그녀는 이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인 척했다. 곰팡이와 찌든 때로 가득한 과거를 살짝 걷어내고 그 위에 밝은 색 페인트를 덧칠했다. 따돌림을 조장한 입으로 동화를 읽고, 어깨를 툭툭 치던 손으로 크레파스를 쥐고, 위아래로 훑어보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하긴,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게 더 소름 돋을 일이다. 한 아이의 인간다운 삶을 파괴한 사람이 또 다른 아이를 인격체로 만든다니, 이리도 말끔하게 변할 수 있다니. 그러니 그녀는 오늘도 아이들을 품은 채 활짝 웃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내가 잊고자 애써왔던 모습 그대로 자라 나를 괴롭게 했다.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하이틴 주인공 부럽지 않은 피부. 사람을 홀리는 눈매, 오뚝하고 작은 코, 도톰한 입술.


지금 보면 한없이 가벼운 인상이지만 어른들은 그녀가 내 또래 중 가장 예쁘다 했으니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아는 남자 선배가 많다고 자랑하던 그녀는 내가 봐도 예쁘다 못해 빛이 났고, 나는 그녀를 우러러보는 시선 속에서 점점 작아졌다.


그녀는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특별한 존재감이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주일, 유치원생이던 나의 사촌 동생이 공정하지 않은 게임 때문에 조금 떼를 썼다. 고작 그 이유로 그녀의 오빠는 온 힘을 실어 사촌 동생의 뺨을 때렸다.


그 둘은 뻔뻔하게도 자기들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얼른 울고 있는 사촌 동생을 달래라고 명령했다. 당시 나는 한두 살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벌벌 떨며 지켜보다 어른에게 이르는 것이 전부였다.


사촌이 뺨을 맞은 곳은 어릴 적 다니던 교회의 초등부 찬양팀 무대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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