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여느 사람들처럼 온갖 말을 다 들었다. 부모님을 제외한 가족들에게는 말도 못 꺼냈다. 세상 사람들 모두 등 돌려도 끝까지 의지할 수 있고 내 일에 나보다 더 진심인 존재가 가족이라 배웠는데 말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과하게 걱정하는 것도, 동정 받을 일이 아닌데 받을 게 뻔한 것도 싫었다. 그렇다고 내 감정과 상황을 축소하거나 멋대로 재단하는 건 더 싫었다.
부모님 중 한 분은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시며 나의 권리를 찾아 끝까지 싸우라 하셨다.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 주신다거나 하는 금전적 지원은 못 받았어도 정서적 지지로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가해자들이 나를 정말 해치진 않을까 염려하셨다.
다른 한 분은 매우 소극적이다 못해 나를 질책하셨다. "굳이 신고했어야 하냐",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그렇게 따지면 세상 모든 일이 신고거리다"라고 말씀하셨다.
타 부서 사람들과도 연이 있는지라 퇴사한 지금까지도 이런저런 소문이 들린다. 가해자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날뛰고 있고, 끝까지 본인들은 억울하다 말하고 다닌단다.
이 사건과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도 나에 대해 떠든다. 회사의 규정 개정이나 부서원 조정, 구인 같은 문제가 생기면 전부 내 탓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왜 '별 것도 아닌 일'을 크게 키워서 일자리를 없애냐는 건데, 이건 뭐 상대할 가치도 없는 망언이다.
어딜 가든 피해자를 탓하는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 있다.
성폭력 피해자가 치마를 입으면 "왜 다리를 내놓고 다니냐", 바지를 입으면 "왜 딱 붙는 바지를 입냐",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면 "왜 밤 늦게 돌아다니냐". 가정폭력 피해자가 괴로움을 호소하면 "그래도 너네 아버지가 널 굶기진 않잖니", "너네 어머니가 널 때리진 않잖니", "부모님도 너 키우느라 고생 많으시잖니".
이런 인간들에 대해 논하는 건 시간 낭비다.
'신이 인간에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는 거라면, 날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가해자들부터 타 부서 사람들, 정신과 의사, 가족까지. 상처는 예상치 못한 방향애서 쉴 새 없이 생겼다. 사람에게 실망하다 못해 인류애가 바닥을 쳤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다시 사람을 믿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사람이 찌른 칼에 다쳤지만 그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도 사람임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었으나 받아들여야 했다.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도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온기와 손길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신고 전 괴롭힘을 당할 때부터 2차 피해를 겪고 징계 결과가 공개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사랑하는 친구들은 내가 또다시 내일의 해를 보게 한 원동력이었다. 학생 때부터 같은 곳에서 일하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같은 회사에 취업한 직장동료도 큰 힘이 되었다. 전 직장에서 그 동료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었기에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 사람이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 신고를 계기로 전 직장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내 사례를 듣고 용기를 냈다는 사람도, 끝내 신고하지 않더라도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절망감에서 벗어났다는 사람도 있단다.
누군가는 돌을 던져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지만 상처 받은 이들 중 일부는 그 돌을 모아 자신만의 성벽을 쌓아간다는 말이 있다. 나에게는 이번 사건이 그런 계기가 되었다.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
괴롭힘을 신고한 날부터 누구보다 의지했던 좋은 어른이 한 분 있다. 내가 2차 피해로 한창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 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어 왔습니다. 작고 여린 목소리라도 계속 내면 어느 순간 거대한 벽도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인권이 법으로 보호받기까지 그런 목소리 하나하나가 쌓였고, 지금 당신이 용기 내어 세상에 던진 첫 목소리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사회에서 낸 목소리에 힘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타인을 해치려는 의도가 있다거나 법을 어기는 게 아니니까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보호 받아야 할 당신의 권리입니다.
살면서 책임질 것들이 많아지면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질 때도 올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시간을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힘을 모으면서 적절한 한 때를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자 용기의 한 형태니까요. 그러다 다시 힘이 생기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겠죠. 권력이든, 명예든, 환경이든요.
당신처럼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없다면 세상은 영원히 침묵 속에 갇혀 있을 겁니다. 그 침묵을 깨기 위해 당신은 한 걸음 내디뎠고 그걸로 충분히 의미 있어요.
그러니 본인의 선택을 의심하지 마세요.
지금도 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될 거예요."
내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공부를 왜 열심히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에 나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공정한 방법이기 때문이라 답했다. 학생들이 던진 질문은 사회초년생이던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왜 계속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했다.
이 분의 말을 듣고 그 해답을 찾았다.
내 분야에서 힘 있는 자리에 올라 이 사건의 가해자들 같은 존재로부터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지킨다는 건 거창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세상에 내가 저들보다 더 사람답게 잘 살아가고 있노라고 선포하는 것. 그리고 그런 나를 통해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희망을 얻게 하는 것.
그런 삶을 살기 위한 첫 걸음이 이 글이 되길 바란다.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