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시 일어설 나를 위해, 여전히 함께할 너를 위해

by 서휘

2025년 8월, 난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잘 지내는 '척' 연기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


누가 "요즘 어때?"라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좋아. 별 일 없이 잘 지내."


어떻게 별 일 없이 지내겠냐만 그래도 신고 당시보단 훨씬 낫다. 게임도 레벨 10부터 시작하면 레벨 8까지는 큰 힘 들이지 않고 깰 수 있는 것처럼, 그 정도 여유는 생겼다. '이게 말로만 듣던 폭풍전야인가' 싶을 만큼 잔잔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전 직장을 떠올리면 영원히 괴로울 줄 알았다. 누굴 만나도 뒷말이 돌까 신경 쓰였고, 모든 대화가 불편했고, 집에만 있어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쓸데없는 의심을 살까 봐, 내가 믿는 정의가 나를 배신할까 봐,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질까 봐 매일 불안했다.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무표정이면 무표정이라고, 웃으면 웃는다고 뭐라 할 것 같았다. 몸부림 치면 왜 나대냐며,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냐며 바늘 같이 따가운 시선이 날아왔다.


가수 허회경의 노래 '이렇게 살아가는 것' 가사 중 일부.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서 다 괜찮다고 되뇌다가 그렇게 잠에 드는 것.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답을 찾아 헤매다가 그렇게 눈을 감는 것."


나는 딱 가사처럼 살았다.


그저 아무렇게나 하룻밤을 무사히 넘기면 그 자체로 뿌듯한 하루를 보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 스스로에게는 하루살이 청년,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망가져 버린 청춘, 직장 사람들에게는 사릴 수 있는 일도 굳이 들춰 판을 키우는 청맹과니. 그게 내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길가에 핀 꽃 앞에 멈춰 서서 바람에 살랑이는 꽃을 여유 있게 감상한다. 바깥 풍경을 보고 계절이 변하는 걸 느낀다. 먼저 약속을 잡고, 뒷말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깔깔대며 이야기 나누고, 집 밖과 안 어디에 있어도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만 집중하게 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때마다 식사를 챙겨 먹고, 옷을 몇 벌이나 갈아입으며 외출 준비를 하고, 인스타그램에 스크랩해둔 카페에 가서 시그니처 메뉴를 맛보고 오는 삶을 다시 누려도 되는 걸까.


1년 동안이나 말도 안 되는 가스라이팅에 시달렸다지만 이 감정이 죄책감이나 자존감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정말 회복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 '시간이 해결해 주긴 개뿔'이라 생각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에 대한 약간의 민망함,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의 방해공작- 어쩌면 트루먼 쇼처럼 세상이 나를 가지고 논 것 같은 분노가 느껴진다.


이런 평안이 나에게 얼마나 허락되려나. 적어도 오늘은, 내일은, 모레는 누려도 되지 않을까. 일주일이 한 달 되고, 한 달이 1년 되고, 1년이 10년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욕심일까 지극히 평범한 소망일까.


그래서 직장 내 괴롭힘에서 겨우 벗어난 사회초년생의 근황을 기록해 두려 한다. 어두운 터널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지금 내가 누리는 일상도 한때는 불가능해 보였다는 걸 남겨두고 싶다.





올해부터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자주는 못 만나는 친한 동생과 간 디저트 카페. 이 카페는 전 직장 근처에 있는 카페다. 우리 부서 사람들은 없는지 빠르게 눈으로 스캔하고 들어가긴 했다만, 잘 즐기고 나왔으니 이 정도면 많이 괜찮아졌다는 신호겠지.



이 이야기를 쓰는 걸 목표로 브런치스토리 작가에 도전했다. 이 글 원고는 없었을 때라 먼저 발간한 매거진 '잊지 못할 나의 연진에게' 초안을 냈다.



그렇게 한 번만에 선정됐다. 훌륭하신 작가님들도 많으실 테고 그분들에 비하면 유려한 글솜씨도 없는데 통과된 게 신기했다.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겠지만 진심을 담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적어가기로 결심했다.



남들 다 가는 이케아 구경도 갔다. 꼬리 쪽에 붙어 있는 저 상표, 이케아 인형 특징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내 취향은 아니라서 조금 짧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퇴사 직후 접수했던 산재 신청서. 정신과 관련 재해는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최소 6개월은 잡아야 한다.



귀여운 오리 키링과 노트도 샀다. 버티면 다 되는 건 아니지만 하찮고 귀여운 선글라스를 쓴 오리가 저렇게 말하니 그러려니 하고 믿어보려 한다.



길거리 꽃집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위한 꽃도 샀다. 버건디빛 꽃 이름은 초코 코스모스. 초코 향이 나는 꽃이다.


중간에 있는 메인 꽃은 '실거베라'인데, 거베라 품종 중 꽃잎이 실처럼 가느다랗게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몇몇 사람들은 검은 심이 눈동자 같이 생겼다며 무서워하기도 한단다.



조그만 피규어를 추가해서 미니 화분도 하나 장만했다. 화분에 있는 무늬는 물티슈 마른 자국이 아니라 원래 있는 무늬다.



이사한 집 집들이에 친한 동생을 초대했다. 요리 실력이 출중하지 않아 오뎅탕만 직접 만들고 메인 요리는 초밥으로 대접했다. 동생은 맛있다고 말해줬지만 메인 요리까지 직접 만들어 내놓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워 요리 실력을 조금 더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좋아하는 꽃도 마음껏 만지고 있다.


학생 때부터 꽃을 좋아했다. 직업 특성상 꽃을 주고받을 일이 많아 꽃 작품에 대한 안목도 알게 모르게 키웠다. 다른 사람의 특별한 순간에 내가 정성 들여 만든 작품이 함께한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얼마나 좋아할지, 어떤 색감이 잘 어울릴지 고민하면서 예약하고 직접 픽업하는 그 과정도 소중하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받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들면 어느새 멋진 꽃다발이 완성되어 있다.



형형색색 예쁜 꽃들로 힐링하는 요즘.



얼마 전에는 대전 여행 갔다 온 언니가 나에게 성심당 빵을 선물해 주기 위해 밤 10시에(!) 나를 보러 왔다. 우리 집 근처까지 택시비만 해도 어마어마한 거리였는데... 세 번만에 뽑았다며 루피 키링도 선물해줬다.


내가 뭐라고 싶다가도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게 감사하다. 언제나 언니는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줘'라며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준다.





번외로 이 사진은 사건 진행 당시 연차를 모두 쓰고 혼자 다녀온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이다. 머리를 식히러 간 곳에서 한 것 중 가장 매진했던 건 대표에게 보낼 메일 내용을 정리하는 거였다. 요양하러 갔다가 내가 얼마나 아픈지 설득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블로그 내용 중 일부.


그 힘든 와중에도 기록 남기기에 열중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하루에 단 몇 번 일어나는 '행복한 일' 덕분이었다.


처음 쓴 것 치고 꽤 잘 어울렸던 비니, 첫 방문에 만족했던 속눈썹 샵, 평소보다 조금 길게 방치했음에도 색이 예쁘게 빠져 뿌듯했던 눈썹탈색, 아트만 하다 처음 받아 본 기본 관리에 돈 아깝지 않았던 네일, 왠지 그날따라 좋아 보였던 피부.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하나씩은 생기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평소라면 별 거 아니라며 넘길 만한 일들이 모여 새로운 하루하루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때 사진들을 보면 힘든 기억보단 맛있는 멸치국수와 보쌈, 완벽했던 이날의 코디, 쾌적했던 호텔 컨디션이 먼저 떠오른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미리 알았더라면 그동안 조금 덜 괴로웠으려나.




"나에게 올 새로운 인연들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며, 잠시 작별할 인연들로 너무 슬퍼하진 않길 바라며, 그리고 여전히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이십 대 중반의 무게를 받아들여야지. 더 사랑하고, 사랑받고, 배려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입사 직전 겨울, 내가 쓴 글이었다. 이십 대 중반이 된 지는 좀 됐어도 한껏 경건하고 의젓한 자세로 새해를 맞이하길 바랐던 나의 다짐이자 선언문이었다.


학생 때와 달리 생각보다 새로운 인연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작별 수준이 아니라 아주 이별하는 인연들도 많았고, 몇 번을 반복해도 아쉽고 슬픈 마음은 익숙해질 기미조차 없었다. 아, 덕분에 '여전히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눈에 띄게 커져갔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 마음 새 뜻으로 임하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 나를 버티게 한 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꽃 한 송이, 빵 한 봉지, 안부 인사 한 번이었다.


회복하는 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너져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불안하고 우울할 때가 많지만 웃고, 밖에 나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달리 말하면 이 자체만으로 희망이라 할 수 있다. 그놈의 완치나 극복 없이도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훗날 이 글을 다시 볼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나마 2025년 나의 안부를 전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이름까지 미리 지어둔 미래의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볼 작정이다.


혹시 이 순간 숨이 가쁜 사람이 있다면, 혹은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면


죽지 말자.


누구의 뜻대로도 그렇게 끝내지 말자.


버티다 보면 정말로-

살아있길 잘했다고 말할 날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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