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되어 볼까 해

잊지 못할 나의 연진에게 III

by 서휘

당시엔 학교 안에서 일어난 폭력만 학교폭력으로 취급했으며 그마저도 귀찮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교사에게 도움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와 같은 학교를 다녔고 학교에서도 그 짓을 이어갔으니 교사들도 몰랐을 리가 없으나, 학생이 피를 철철 흘리거나 의식을 잃을 만큼 구타당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용기 내서 몇 번이고 도움을 구했지만 매번 반장에게 "겉도는 학생이니 한 번쯤 챙겨주라"고 말하는 것에 그쳤다.


게다가 반장 선거는 인기투표였기에 모범생들만 반장을 하진 않았다. 모범생이라 해도 대부분 귀찮은 일이 하나 더 생겼다는 반응을 보였다. 만에 하나 반장이 양아치라면 어쩔 수 없이 혼자 삭혀야 했다. 친한 친구가 있어도 소위 "찐따 그룹"으로 묶여 조롱당하기 일쑤였다. 이러나저러나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이 고마우면서도 사춘기 학생이 이런 현실을 친구의 존재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다.




지금도 이름도, 이목구비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요즘은 꿈에서까지 나를 괴롭게 한다.


늘 그랬듯이 그 양아치들은 늘 우르르 몰려와 체육복, 교과서, 필기도구를 '빌려'놓고는 돌려주지 않았다. 돌려달라 하면 다른 '친구'에게 빌려줬다며 자기 것처럼 다뤘고, 조금이라도 정색하는 기색을 보이면 속 좁은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그러고는 여느 때와 같이 소심한 찐따의 반항이라며 키득거렸다.


그렇게 사람을 장난감 취급하던 그들은 지금 간호학과, 유아교육과, 상담심리학과, 사범대학을 졸업해 사회에서 사람을 살리고, 기르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어학연수나 워킹 홀리데이에서 사귄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는 와중에 '티 없이 맑고 당찬 나'를 어필하는 그들은 내 속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누군가는 각종 협찬을 받는 인플루언서로, 또 다른 누군가는 얼굴을 내건 미용사로 이미지 세탁을 완벽하게 마친 채 180도 바뀐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녀의 부모님이 교육계에 종사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지 어쩌고 있는지 관심 없다만, 이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그녀를 찬양하는 댓글밖에 없는 현실이 우습다. 이런 사람도 스승이랍시고 스승의 날 선물과 감사 인사를 받는다니.


그녀에게 내릴 벌을 고를 수 있다면 당장 목을 잘라버리기보단 종신 노예형을 선고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손댈 수도 없는 불치병에 걸리든, 평생 바라던 일이 물거품이 되든. 그 어떤 방법으로든 아주 오래, 끔찍하게 고통받아야 한다. 아이를 기를 자격이나 있겠냐만, 부모가 되어 낳을 아이를 제외하고는 그녀의 가족이 그리 되어 그녀가 더 고통받는다면 그래도 좋다.


만약 그녀가 가족은 무슨 죄냐 묻거든 자식의 폭력성을 알고도 제지한 지 않은 죄, 자식이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알면서도 방조한 죄, 이런 인간을 어린이집 교사로 이끈 죄가 있다고 악에 받친 눈을 뜨고 말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가족이 내 사촌에게 손찌검했으니 먼저 선을 넘은 건 그쪽이다. 그러니 이런 나를 너무 원망하지는 말길 바란다. 정말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의롭기까지 한다면 내 작은 소망 하나쯤은 들어주지 않겠나. 또 운명이 타이밍은 어긋날지언정 정확도는 확실하다고 했다. 신과 운명, 둘 중 하나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지나친 악의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다. 정작 본인은 잊고 살 수도 있을 것이고 그녀에게 당한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지 단번에 특정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리도 독기 서린 문장을 써 내려가는 이유는 어리고 여렸던 지난날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때의 감정을 미화시키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며 매 회 문동은을 동경했다. 실제로 학창시절 "내가 이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은 그녀의 아이 곁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더 몰입해서 봤다. 최근 나는 교사를 꿈꾸던 지난 세월을 뒤로하고 더 적성에 맞는 일을 탐색하고 있다. 그런 내가 이 영상을 보고 한 명의 아이라도 이런 쓰레기에게 교육받는 일을 막기 위해 이제라도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고통 총량의 법칙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신도 참 무심하시지, '어떻게 나에게 시련을 계속 주시나' 하며 원망하다가도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얼마나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할 것이기에 이런 고난을 미리 주시는가' 하며 오늘도 마음을 다스려 본다.




그래, 나의 연진아.


너는 나를 망가뜨렸지만 나는 그 잔해 위에서 더 단단히 살아간다. 너의 기억에서는 내가 지워졌을지 몰라도 내 인생에서의 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서 나도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될 작정이다.


아니, 네가 10년간 소문을 퍼뜨렸으니 나는 너에게 10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새겨야지. 너와는 달리 진실로만 가득 채워서-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아주 선명하게.


그러니 꼭 살아 있어라.

그리고 과분할 정도로 날아올라라.


언젠가 반드시 그 날개를 꺾어 나를 모른다 할 수 없게 만들 테니.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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