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잊지 못할 나의 연진에게 IV

by 서휘

사람 밥을 먹고 산다면 누군가 잘 참는다 해서 그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만만하고 순진하다는 이유로 무시해서도 안 된다. 결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을 수는 있어도 학교폭력은 무조건 가해자 잘못이다.


제 자식이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당한다 해도 '친구가 장난친 것'이니 참으라 할 건가. 내 가족에게 하지 못할 말과 행동은 남에게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남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몇몇 이들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


가해자는 자신이 그토록 끔찍하고 악랄하게 괴롭힌 학생의 이름조차 잊고 살겠지만 피해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안타깝다 못해 가슴 아픈 건, 피해자가 끊임없이 정녕 자신의 잘못은 없는지 되묻는 현실이다. 당시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았는가 복기하고, 잊으려 애쓰다 무너지길 수십 수백 번 반복한다.


사건 당시로부터 몇 년이나 흐른 지금도 잊을 만하면 그때의 기억이 불쑥 떠오른다. '웬일로 요즘은 생각이 안 나네' 하는 생각과 동시에 가해자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르는 현상은 다스릴 수도, 억누를 수도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 반응은 병이 아니라 흔적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으려 애쓴 흔적.


피해자가 받은 고통은 망각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기에 잊히지 않는 게 당연하다. 오늘도 살아 있다는 것, 가해자들보다 더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제 할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대단한 복수다.




불행하게도 사회 구조는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 "어릴 때는 그럴 수 있지", "다 배우면서 크는 거지". 이런 말들이 가해자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세탁해 준다. 피해자는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음에도 가해자는 현재 본인의 모습만 보면 된다고 말한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들의 입에서 '한 번쯤 실수'라는, 대응할 가치도 없는 말이 나온다.


'이미 지난 일'이라는 건 이런 짐승들의 입에서나 나올 같잖은 말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기억하고 알려야 한다. 내가 지금껏 버틴 모든 날들은 내가 내 편이 되어 준 시간이다. 가해자의 가스라이팅과 사회적 시선, 여전히 존재하는 두려움 때문에 잠시 나 자신을 의심할지라도 그 또한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울분과 수치심, 원망 같은 게 엉켜 있던 시절은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여전히 이렇게나 아프다는 건 내가 얼마나 잘 버텨왔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못 했던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지금 이런 분노가 나에게 찾아온 건 당연하다. 폭력적인 감정이라 치부하며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는, 어린 나를 보호해주지 못한 세상에 대한 저항이다.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쓸데없이 오래 붙잡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으로 괴로운 피해자들이 있다면


아니. 누가 뭐래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의 불행을 비는 게 생각만큼 비도덕적이지 않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기회와 사랑을 준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정의롭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더 정확히는 그들의 불행을 원한다기보다 '그들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기' 원하는 것이다.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사과하길 바라는 마음.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차라리 불행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 상처가 깊은 이가 그 감정의 정당성을 고민하는 태도가 얼마나 고결한가. 가해자는 이런 고민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피해자는 이런 마음을 가져도 되는지, 은연중에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그때의 기억을 해부할 시간도, 감정을 품어줄 사람도 없었다. 이 기억은 나의 일부지만 나의 전부가 되도록 두진 않는다.


이 글로서 세상에 이야기한다.


기억하는 자가 곧 살아 있는 자임을,

말하는 자가 곧 살아남은 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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