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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범 Feb 05. 2021

아니 그러니까

아니 그러니까아

술자리에 짜증 섞인 탄식이 깔린다. 동시에 한 남성이 화려한 손짓과 함께 열변을 토한다. 그의 열변은 수분기가 가득해서 테이블에 깔린 안주에 서리처럼 쌓인다. 맞은 편의 일행들은 그의 열변 때문인지, 그가 내린 안주 가득한 침 세례 때문인지 미간이 조금씩 뒤틀려 가고 있다. 평일 초저녁에 고요하고 느긋한 혼술을 찾아온 나로서는 영 반갑지 않은 이웃이다. 자칫 내 미간까지 찌푸릴 뻔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괜히 재밌던 탓에 소주잔을 들다 말고 엿듣고 있었다. 행복은 선착순이 맞다니까. 성적표의 숫자가 낮은 순서대로, 수능 배치표의 윗 순서대로, 먼저 돈 벌고, 먼저 성공한 놈들이 행복한 거야. 결국엔 다 돈이네요? 너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해? 그거 다 날조야. 가짜 뉴스라고. 너 돈 많아? 행복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은 놈들은 그런 말 안 해. 돈 없는 사람들의 자위와 망상일 뿐이야. 그러면 돈이 곧 행복인가요? 돈보다도 행운이지. 부잣집에서 태어난 천운, 그게 실패하더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할 수 있는 환경과 능력을 타고날 행운. 그것도 실패하면 복권 당첨이나 주식 대박의 운. 행복하다는 사실이 복 받은 게 아니라, 복을 받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거야. 그의 말에 덕지덕지 묻은 염세에 군내가 나서 소주로 입을 헹궜다. 그의 논리는 재미있었지만, 슬슬 밑천이 드러나 더 들을 것도 없겠다 싶어 자리를 뜨려는 순간 이 말을 생각하고 있던 건지 원래 우는 상인지 모르겠지만, 내내 울상짓던 그의 일행이 입을 뗐다. 형 근데요. 제가 중학교 때 일인데요. 학교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거든요. 네 잎 클로버 찾으려고요. 한참을 뒤적거렸는데 그때, 교감 선생님이 지나가셨어요. 그러면서 말하셨거든요. 그... 행운을 찾으려고 너무 많은 행복을 놓치고 있다고요. 어... 그러니까.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인 건 아시죠? 세 잎 클로버의 상징은 뭔지 아세요?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의 상징이래요. 그니까 제가 네 잎 클로버만 찾겠다고 세 잎 클로버를 뒤적거린 거는 수많은 행운 찾겠다고 수많은 행복 속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한 꼴이라는 거죠. 한 방 먹었다 싶은 생각에 혼자 히죽이며 곁눈질로 그의 달아오른 낯을 훔쳐본다. 말을 많이 해서 술이 제법 깼을 법도 한데, 아직 혼자 벌건 그의 낯을. 그도 열기를 느꼈는지, 별말 없이 소주잔을 들이킨다. 이제부턴 그가 술 취해서 벌건지, 창피해서 벌건지 아무도 모르겠지. 확실히 그는 달변가이지만, 궤변론자이기도 했다. 그의 말에서 나는 단맛이 내 소주잔을 멈추게도 했지만, 그 기이함에 소주를 들이켰으니 말이다. 그의 말에 형상이 있다면, 그래서 그걸 따라 그려본다면 아마 그 기형도는 네 잎 클로버를 띄고 있겠지. 그 일행은 결단코 달변가라 할 수 없었지만, 그 모양은 오히려 탄탄해 보였다. 세 잎 클로버였을까. 마지막 잔을 마시고, 남겨놓은 계란말이 한 점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계산하고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클로버 이야기는 인상 깊게 남았다. 꺼억. 트림과 함께 클로버도 벌건 얼굴들도 날려버렸다. 집으로 가며 담배를 피웠고 클로버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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