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걸을 수 없는 신발
가만히 현관이 놓인 신발들이 내 선택을 기다리며
어디로 갈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스스로 정하지 않고 공상을 허사라 여기며
그저 가만히 놓여 있다
잠시의 상상도 없는 텅 빈 내 심장이
누군가의 심장을 대신해
함께 걸어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하루 종일 나를 신고 다니는 신발의 주인에게
운명을 내맡기며 그저 함께 하는 길이
곧 내 길이 된다
그저 따라간 그 길 위에서
나의 하루를 만들고
나의 인연을 만들고
나의 삶을 만들어가며
그저 만들어지는 인생에서 후회를 만들지 않는다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신발의 운명 앞에
주인에게 내맡긴 인생이 서럽다 푸념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의 꿈을 도우며 살아 가는 삶이,
본디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 여기기 때문이리라
걸으며 기억되는 삶
닳아서 없어지는 삶
낡아서 버려지는 삶
모든 삶이 의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