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선물할게

강경수 글/그림

by 채송화
꽃을 선물할게



나는 세상에 어떤 선물을 주고 떠나는 인생이 될 것인가?



이 이야기는 어느 날 평범한 숲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침



아침에 곰이 숲을 산책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거미줄에 걸린 무당벌레가 곰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합니다.

하지만 곰은 거미가 굶을지도 모른다며 거절합니다.

그리고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그 자리를 피합니다.

곰이 살짝 손으로 스치며 거미줄을 헤집어 주기만 해도 무당벌레는 금방 자유의 몸이 되지만

곰은 작은 도움도 사양합니다. 자연의 법칙에 자신의 뜻을 넣지 않기로 합니다.


자연의 법칙에 누가 관여할 수 있을까?


자연의 법칙에 우리는 간혹 그 과정과 결과에 당혹스럽지만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 우리는 배우지 않고서도 저절로 익숙해졌습니다.

무당벌레의 작은 목숨 하나 죽고 사는 문제가 지구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나비 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무당벌레의 운명은 생태계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곰 역시 이미 자연의 법칙에서 예외가 아닌 삶을 살며 가족 또는 동지들의 죽음을 목도했을 것이다.

죽음 앞에 의연해 보이지만 죽음 또한 삶의 한 부분임을 곰은 숲의 생태에서 살아가며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의 운명 앞에 발버둥 한 번 안 치는 생명이 있을까요?



점심


곰은 아침나절에 걸었던 길을 되돌아 무당벌레가 있는 곳으로 다시 지나가게 됩니다.

무당벌레는 반가움에 소리를 내어 곰을 부르며 다시 살려줄 것을 부탁합니다.

마음에 흔들림 없는 곰에게 거짓으로 꾸며 설득하려다 금방 들통이 나고

곰은 여지없이 자신이 갈길을 하며 무당벌레가 운명을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곰은 무당벌레의 운명에 관여할 생각이 없고 무당벌레의 처지에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곰은 자신의 선택이 또 다른 운명을 바꾸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매정하게 보이는 곰의 행동에 무당벌레는 자신의 무리한 거짓말로 설득한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여깁니다.


누군가의 목숨 앞에 그저 운명이라 단서를 달며

무관심과 상처로 죽어가는 우리 주변의 많은 생명들에 우리는 그저 방관자로 남아야 할까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그저 운명이라는 틀은 자연이 주관하는 절대적인 규칙일까요?

운명에 맞서기 위해 무엇인가 노력이라는 것을 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유일한 삶의 방식일까요?

무당벌레에게는 운명을 바꿀 기회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만 탈출해 내야 하는 걸까요?

곰과 무당벌레는 아무런 관련 없는 운명이었을까요?

운명 앞에 지나치는 것과 운명 앞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무당벌레는 스스로의 죽음은 피할 수 없을 수 없지만 그 죽음이 거미를 위한 좋은 선택이라는 방향으로 생각을 점점 바꾸어 갑니다. 어차피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라면 마지막에 비참하다 여기는 쪽보다 세상에 유익한 방향으로 결론 낼 수 있는 죽음은 얼마나 될지 우리는 나의 죽음 앞이라 여겨보며 생각하게 됩니다.



저녁


저녁이 되어 곰이 다시 그 길을 되돌아 지나가게 되자 무당벌레는 다시 애원하며 살려달라고 합니다

아침과 점심에 보인 곰의 태도로 보면 전혀 살려줄 마음이 없음을 알고 있던 무당벌레지만 다시 한번 애원합니다.

세상 모두가 무당벌레의 운명에 방관할 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무당벌레 자신 스스로였습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전히 거미줄에 걸린 자신의 신세, 여전히 무당벌레를 구해줄 마음 없는 곰이었죠. 세상은 여전히 나를 위해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곰이 무당벌레를 적극 설득합니다.

거미는 곰이 싫어하는 모기를 잡아주는 좋은 동물이기 때문에 거미가 굶지 않도록 무당벌레를 놔주지 않는 것이 맞다고 말합니다.

곰은 거미와의 관계는 드러난 유익한 관계였죠. 이미 곰은 거미를 통해 유익한 혜택을 보고 있으니 아무런 관계없는 무당벌레의 입장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무당벌레는 곰에게 질문합니다.


"거미만 좋은 동물인가요? 혹시 꽃을 좋아하시나요? "


무당벌레의 질문에 곰은 꽃을 좋아하며 사람들도 꽃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거미는 못된 모기를 잡지만, 저는 꽃을 괴롭히는 진딧물을 잡아먹어요. 그러니까 저도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동물이에요."


"곰님이 꽃을 좋아하신다면 저는 한 번쯤 구해줄 의무가 있는 것이죠. 만약 저는 살려주신다면 다음 해에 수많은 꽃들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라며 무당벌레는 곰을 설득한다.


무당벌레가 처절한 죽음 앞에서도 체념하지 않는 삶의 태도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세상에 어떤 선물을 줄 수 있는 삶의 가치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그 누구도 내 삶의 온전히 규정하거나 포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적극적인 태도를 삶의 가치와 방향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 간다. 죽음 앞에서도 통하는 자신의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당당함이 드디어 곰의 마음을 움직인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한다. 세상에 나는 어떤 유익한 값어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값어치 있는 삶은 그저 개인의 목숨을 부지하는 삶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의미를 가질 때 세상도 나의 생명에 무관하지 않으며 언제나 나의 삶을 응원한다.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봄날에 곰은 꽃밭에 서서 만개한 꽃들 사이에서 무당벌레를 떠올린다.

무당벌레가 살아 있어야 할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고 독백한다.

곰은 어딘가에서 진딧물을 열심히 잡아먹고 있을 무당벌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꽃을 선물해 줘서 참 고마워. 약속을 지켜줘서 참 고마워."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그것 또한 자연이 우리에게 늘 삶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기회로 인해 단 한번 주어진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 착한 인생이 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곰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힘이 무당벌레처럼 연약한 나의 삶에 무관심해지기 전에

세상에 나의 의미를 미리 약속해야 한다. 거미줄에 걸린 무당벌레의 신세가 우리의 매일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의 인생에 방관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자신의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그 어떤 삶도 가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설득의 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보다 세상의 유익을 위한 공의의 목적이 있을 때 강력하다.

이기적인 삶의 이유보다 이타적인 삶의 이유를 더욱 많이 만들어갈 때 세상도 나의 목숨을 이타적으로 여긴다.


나(채송화)는 세상에 시와 노래를 선물 주고 떠날 것이다


채송화 작사 / 수노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Pexqmr_jE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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