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선택한 자유와 사랑
# 100만 번 산 고양이 / 사노요코
내가 선택한 자유와 사랑은
역사의 많은 현상에서 증명된 인류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비밀이다.
대한민국의 반려동물 키우는 가구수는 약 300만 가구이고 그중에 고양이만 키우는 가구는 약 70만 가구라고 한다. 그림책 속 100반 번 산 고양이의 삶의 횟수는 우리 시대 반려묘 주인의 숫자와 버금가기도 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에게 나는 반려묘에게 어떤 주인인지, 어떤 사랑을 주는 주인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림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밤거리를 헤매는 도둑고양이 일명 길고양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한때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었다.
임금님을 만나 호화로운 궁중생활을 하며 귀한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느끼는 물질의 풍요와 우리가 느끼는 물질의 풍요의 기준은 다를 것이다. 좋은 가방, 좋은 옷, 좋은 신발, 좋은 음식을 누리는 것은 사람의 기준이기 고양이에게 절대적인 행복의 기준이 아닐 것이다. 우리만 아는 좋은 것들이 고양이에게도 좋은 것은 아닐 수 있다. 좋은 물건들은 고양이를 계속 기쁘게 하지 않았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안락한 주거 환경은 사람에게나 고양이에게나 유익하지만 고양이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는 늘 전쟁을 좋아하던 임금님을 무척 싫어했다. 전쟁터에 멋진 바구니에 담아 데리고 다니다 고양이는 날아온 화살에 죽고 말았다. 임금님은 매우 슬퍼했고 고양이를 껴안고 울었다.
고양이를 얼마나 아꼈는지 전쟁을 그만두고 성으로 돌아와 고양이를 정원에 묻어주었다.
임금님은 고양이를 많이 사랑했지만 고양이에게는 자유가 없었고 전쟁은 고양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한때 고양이는 뱃사공의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바다를 싫어했지만 뱃사공은 온 세계의 바다와 항구에 고양이를 데리고 다닌다. 어느 날 고양이는 배에서 떨어지고 헤엄을 못 치는 고양이는 죽고 만다. 뱃사공은 죽은 고양이를 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운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무척 싫어한다. 그런데 그 다른 취향의 두 부류의 사람이 결혼하여 부부가 된다면 우리는 그들의 삶이 어떨지 상상하게 된다. 한 사람의 취향을 따라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되거나 그 반대로 여행을 전혀 다니지 않게 되거나 혹은 부부가 따로따로 자신의 취향대로 혼자 여행하거나 혼자 집에 있거나 하게 될 것이다. 고양이에게 주인은 내가 온전히 따라야 하는 존재이고 나의 자유의 선택권까지 맡은 주인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닌 주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일방적으로 결정된 곳으로 다니며 살다 죽게 된다. 주인에게 의미 있는 고양이었지만 고양이에게 의미 있는 주인은 아니었다.
한때 고양이는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서커스를 싫어했다.
한때 고양이는 도둑의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도둑을 아주 싫어했다.
한때 고양이는 홀로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할머니를 아주 싫어했다.
한때 고양이는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아이를 아주 싫어했다.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다.
도둑고양이였던 것이죠.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다. 백만 번의 수많은 주인들이 고양이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었지만 고양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자기애의 충분자였다. 누구의 사랑으로 완성되는 불완전한 존재가 아닌 자신의 온전한 당당함과 자신감으로 채워진 조금은 오만해 보이는 완전한 자기 사랑이었다. 자존감, 자기감, 자신감, 자존심 있는 고양이었다.
많은 매력 있는 많은 고양이들의 구애에도 고양이는 자신 삶을 더없이 사랑하고 누리는 자유를 선택한다. 세상적으로 능력 있고 매력 넘치는 외모에 엄청한 커리어를 자랑하며 명예도 많고 돈도 많은 사람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이고 사랑은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고양이가 가진 많은 매력들은 그동안 백만 번의 주인에게 사랑받기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고양이처럼 자신을 사랑할 충분한 능력과 매력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힘없는 여인들의 삶이나,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삶이나, 배운 것 없고 능력 없는 자들의 삶이나, 작고 연약한 어린아이들의 삶 등이 그럴 것이다.
고양이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자유였다. 물질은 우리의 삶에 필요충분은 아니며 물질의 풍요는 오히려 자유를 선택하게 하는 일종의 정신적 불충분이었을 것이다. 고양이는 더 많은 물질보다 더 많은 자유를 선택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지금의 내 상황이 물질의 부족함을 바라본다면 더 많은 자유를 선택할 정신적 기회를 없어질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물질의 풍요에 집중하느라 중요한 정신적 풍요를 놓치지 않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고양이는 어느 날 하얀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여느 고양이와 달리 고양이의 화려했던 백만 번의 삶에 대해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하얀 고양이에게 매력을 느끼고 옆에 함께 있고 싶어 한다. 하얀 고양이는 또 다른 나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동경하고 다른 이의 꿈을 내 꿈으로 착각하는 작은 자아를 가진 고양이가 아닌 백만 번 산 고양이처럼 자기애의 충분자였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를 매우 사랑하고 많은 새끼 고양이를 낳고 그 고양이들을 자유로운 도둑고양이로 키운다. 두 고양이는 삶을 만족하고 더없이 노년의 아름다운 부부로 살다 하얀 고양이가 먼저 죽게 된다. 고양이는 몇 날 며칠을 울다 죽었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았다. 100만 번의 죽음에서 가져보지 못한 삶이 간절해지는 값어치 있는 죽음이었다.
자유로운 자아와 자유로운 사랑, 자유로운 자녀들과 그들의 자유로운 도둑고양이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자유이다. 수많은 주인이 주지 못했던 수많은 물질이 주지 못했던 자유였다. 수많은 반려묘와 집사들은 서로 함께 하는 공간에서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며 각자의 사랑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이 많지 않지만 작은 자유의 선택 안에서도 우리는 작은 조각이라도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나의 유한한 삶에서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단 하루라도 각자가 찾아가길 바란다. 오늘 밤에도 자신의 자유와 사랑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도둑고양이에게 우리는 자유와 사랑을 배운다.
내가 선택한 자유와 사랑은
역사의 많은 현상에서 증명된 인류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비밀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6xPZ3GGxYl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