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걷고 떡볶이는 뛴다

숫자에 쫓기는 교사와 떡볶이 경제학

by 서이안

"쌤! 매점에 육개장 사발면 1,000원에서 1,100원으로 오른 거 아세요? 와,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내 소중한 100원..."

쉬는 시간, 복도에서 만난 아이들이 울상을 지으며 하소연했다. 고작 100원이라며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용돈을 받아쓰는 중학생들에게 10%의 인상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 테다. 나라를 잃은 듯 억울해하는 표정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너희들이 육개장 100원에 분노할 때, 선생님은 떡볶이 배달비 3,000원에 손을 떤다는 걸 알까. 우리는 서로 다른 크기의 돈을 쥐고, 같은 무게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여름 방과후 학교가 끝난 오후, 텅 빈 교실에 10명의 아이들이 남았다. 찜통더위 속에서도 방과 후 사회 수업을 성실히 수료한 기특하고 고마운 제자들이다. 아이들과의 뒤풀이를 위해 배달 앱을 켰다.

"쌤은 떡볶이 쏠 때가 제일 멋있어요!"

아이들의 환호성에 어깨가 으쓱해지지만, 화면 속 가격표를 보는 내 동공은 지진이 난 듯 흔들린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엔 5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종이컵 넘치게 떡볶이를 담아주셨는데. 이제는 떡볶이에 치즈 좀 얹고, 튀김 몇 개 담고, 배달비까지 더하니 세트 하나에 2~3만 원이 우습게 넘어간다. 10명의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려니 10만 원 가까이 결제해야 한다. 내 하루치 일당이 고스란히 떡볶이 국물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결제 버튼 위에서 엄지손가락이 잠시 머뭇거린다. 떡볶이 가격은 토끼처럼 껑충 뛰어가는데, 내 월급은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기분이다.


문득 십수 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봄날이 떠올랐다. 아직 겨울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담임이셨던 국어 선생님은 남자 녀석들 40명을 운동장에 몰아넣고 축구 시합을 시키셨다.

"남자는 공부 못해도 돼. 근데 운동 못하는 건 못 참는다." 라며 농담 반 진담 반 말하시던 분이었다. 축구를 싫어했던 나는 민폐가 될까 벤치에서 몸을 사렸지만, 시합이 끝난 뒤 조회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둘러앉아 먹던 짜장면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땀 흘린 친구들의 붉게 상기된 얼굴,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우리를 보며 "많이들 먹어라" 하시던 선생님의 옅은 미소.

철없는 우리는 "와, 선생님 최고!"라며 입가에 춘장을 묻히고 먹기 바빴지, 그 짜장면 그릇 수만큼 선생님의 지갑이 얼마나 홀쭉해졌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교사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인다. 월급을 쪼개어 반 전체에게 짜장면을 돌리셨던 그분의 지갑은 가벼워졌을지언정, 제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의 무게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내가 그 무거운 사랑을 베풀 차례가 온 것이다.


사회 교사인 나는 수업 시간에 ‘인플레이션’을 가르친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해. 육개장 가격이 오른 것도, 떡볶이 값이 비싸진 것도 사장님이 욕심쟁이라서가 아니야. 밀가루 값도 오르고, 고추장 값도 오르고, 알바생 형, 누나들 월급도 올려줘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오르는 거란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여기서 아이들이 모르는, 중학교 교과서가 굳이 말해주지 않는 뼈아픈 개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실질 임금’이다. 물가는 5% 올랐는데 내 월급이 3%만 올랐다면, 통장에 찍힌 액수는 늘었어도 실제 구매력은 떨어진 셈이다. 열심히 일하고도 사실상 월급이 삭감되는 마법을 경험한다. 이 답답함을 설명하기에 경제학 용어보다 더 적절한 문학적 비유가 있다. 바로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유래한 ‘붉은 여왕의 효과(Red Queen Effect)’다.


붉은 여왕이 사는 세상은 조금 기이하다. 가만히 있어도 배경이 먼저 앞서나간다. 따라서 주인공 앨리스가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주변 나무와 풍경이 똑같은 속도로 함께 움직인다. 마치 거대한 러닝머신 위에 있는 것처럼, 주변 환경이 끊임없이 뒤로 밀려나는 곳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앨리스에게 붉은 여왕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뛰어야 해.”


이곳은 붉은 여왕의 나라와 닮았다. 물가라는 배경이 러닝머신처럼 뒤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떡볶이 하나 마음 편히 배달시켜 먹으려면, 얼마나 더 빨리 달려야 하는 걸까.


물론 나도 안다. 불평만 하고 있기보다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의 속도를 이해하고 올라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사회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금융 문맹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고, 투자의 중요성과 시장 경제의 원리를 가르친다. 하지만 교실 풍경이 주식과 코인 이야기로만 채워질 때는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쌤, 저 이번에 산 주식 올랐어요."

"월급 받아서 언제 부자 돼요?"

경제에 관심 좀 있다는 녀석들의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이미 "월급쟁이 노예로 살지 마세요", "비트코인으로 쉽게 부자 되기" 같은 영상들이 침투해 있다. 금융 지식이 필요한 건 맞지만, 때로는 수단이 목적을 삼켜버린 느낌이다. 클릭 몇 번으로 수익을 냈다는 세상의 소음 앞에서, 목이 쉬도록 떠들고 다리가 붓도록 서서 일하는 나의 노동 소득은 어쩐지 초라해 보인다. 아이들이 직업을 자아실현의 과정이 아닌 단순한 소득 수단으로만 바라볼 때, 땀 흘리는 삶의 보람이 그저 가성비 떨어지는 행위로 취급받을 때, 떡볶이 값이 올랐을 때보다 더 큰 쓸쓸함을 느낀다.


이런 생각에 잠길 즈음, 주문한 떡볶이가 도착했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이 젓가락을 들고 전투적으로 덤벼든다. 빨간 양념을 입가에 묻히고 오물거리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니, 방금 전까지 했던 돈 걱정과 씁쓸함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가만히 서 있으면 뒤처질 것 같아 앞만 보고 달리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화폐 가치는 떨어져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축구를 싫어했던 나에게 봄날의 햇살 같은 기억을 남겨준 15년 전 국어 선생님의 짜장면처럼, 우리가 함께 먹는 이 비싼 떡볶이도 아이들의 기억 속에 따뜻한 온기로 남기를 바란다.


월급은 여전히 걷고 있고, 물가는 앞으로도 뛸 것이다. 우리는 뒤로 밀려나는 배경을 거스르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화폐 가치는 떨어져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마음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얘들아, 많이 먹어라. 부족하면 더 시켜줄게."


매운 떡볶이 국물 때문인지, 코끝이 찡하다. 이것은 나의 지갑을 털어 샀지만, 어떤 인플레이션도 감히 깎아내릴 수 없는, 내 마음속 가장 안전한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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