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실업, 교과서에 없는 단어

새벽 3시의 가장과 마찰적 실업에 대하여

by 서이안

나는 소음에 예민하다. 단순히 시끄러운 게 싫다는 뜻이 아니다. 누군가의 곤한 잠을 깨울까 봐 온 가족이 숨을 죽여야 했던, 그 팽팽한 긴장감이 몸에 배어버린 탓이다. 새벽 3시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출근해, 다음 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되돌아오는 아버지의 격일제 택시 근무. 나의 예민함은 그 고단한 루틴이 남긴 서글픈 유산이다.


새벽 3시. 어김없이 적막을 깨는 소리가 있었다. 쿨럭쿨럭. 새벽 출근을 준비하는 아버지의 거친 기침 소리가 거실에서 화장실까지 이어진다. 컹- 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억지로 끌어올린 가래를 뱉어내는, 그 적나라하고 불쾌한 소리는 예민한 사춘기 소년의 단잠을 무참히 깨뜨렸다. 특히 시험을 앞둔 날이면 그 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잠들기 전부터 '오늘도 깨겠지'라는 불안감에 심장이 뛰었고,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음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원망을 삼켰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직접 따지지 못했다. 어린 시절 크게 혼난 기억 때문이다. 아버지가 비번인 날, 우리 집에는 보이지 않는 룰이 있었다. 저녁 7시가 넘으면 TV 볼륨을 줄이고 방문을 닫아야 했다. 월드컵 때도,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올림픽 기간에도 우리 집은 치킨을 시켜 먹으며 환호성을 지른 기억이 없다. 다음 날 새벽 출근을 앞둔 가장의 잠을 방해해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동생과 장난을 치다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어김없이 안방 문이 열렸다.

“좀 조용히 해라! 잠 좀 자자!”

피곤에 찌든 아버지의 짜증 섞인 고함. 어머니를 통해 “제발 새벽에 큰소리 좀 안 내게 해달라”라고 몇 번이나 읍소했지만, 당신의 새벽 소음은 요지부동이면서 우리의 작은 소음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일하는 영웅이 아니라, 나의 수면권을 침해하는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참 엄하고 무섭다고만 생각했다. 그 날선 예민함이 성격 탓이 아니라, 24시간을 도로 위에서 버텨내야 했던 삶의 무게 탓이었음을 깨달은 건, 나 역시 밥벌이의 고단함을 아는 직장인이 되고 나서였다. 아버지에게 집은 소음이 허락되지 않는, 다음 운행을 위한 유일한 안식처여야 했음을 그때는 몰랐다.


2025년 11월 14일. 조용했던 가족 단톡방에 뜬금없는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오늘 드디어 26년 10개월 4일 여정을 마치고 퇴직한다]

아버지였다. 평생 택시 핸들을 잡았던 아버지가 운행을 멈추는 순간이었다. 대략 계산해 봐도 지구를 수십 바퀴는 돌았을 거리다. 아들들의 덤덤한 “고생하셨어요”라는 답장에 이어 아버지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4개월정도재충전의시간을갖고새로운시작을 –멋진출발을위하여]

띄어쓰기 하나 없이 빽빽하게 붙여 쓴 문장이었다. 그 빽빽한 글자들의 틈에서 아버지가 감당해 온 지난 26년의 숨 가쁜 호흡을 느꼈다. 띄어쓰기 한 번 할 여유조차 없이 달려온 시간들이 그 문장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었다.


나는 매년 호봉이 오르는 교사지만, 아버지가 서 있던 노동의 현장은 달랐다. 택시 업계의 현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냉혹하다. 법적으로는 사납금제가 폐지되었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기준 운송 수입금’이라는 이름의 높고 단단한 벽이 존재한다. 하루 10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아도 그 기준금을 채우지 못하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실제로 법인 택시 기사들의 월평균 소득이 최저임금 언저리를 맴돈다는 통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이 구조 속에서, 아버지는 26년 10개월 4일을 버텨냈다. 호봉 없는 삶, 새벽 3시의 고독을 견디며 가족을 지탱해 온 것이다.


주말 아침, 도서관에 가려는데 아버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평소라면 주말에 푹 쉬라며 말씀을 잘 안 하시는 분인데, 대뜸 저녁을 집에서 먹을 수 있냐고 물으셨다.

“엄마랑 어제 마트 가서 소고기를 좀 사놨다. 오랜만에 같이 먹자.”

목소리가 묘하게 들떠 있었다. 그날 저녁, 퇴직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가 사 온 소고기를 굽는데, 내가 집게를 들려 하자 손사래를 치며 굳이 본인이 굽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내년 3월까지는 푹 쉴 생각이다. 운동도 하고, 등산도 가고...”

치이익- 고기 익는 소리 사이로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섞였다. 소고기를 사줄 수 있는 능력, 아직은 건재하다는 것을 아들에게 증명하고 싶은 가장의 자존심 같아 코끝이 시큰했다.


식사 도중 내년 2월 대만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그래, 젊을 때 많이 다녀라. 너는 교사니까,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도 많지 않겠냐.”

그러면서 덧붙인 한 마디가 폐부를 찔렀다. “혹시 돈 부족하면 편하게 말하고.”

평생 해외여행은커녕 제주도 비행기 한번 못 타본 분이, 방학이면 교사로서 견문을 넓혀오라며 등을 떠밀어 해외로 보냈던 아들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식사 후, 주머니에서 준비해 둔 얇은 봉투 하나를 쭈뼛거리며 꺼냈다.

“아빠, 이거 26만 원이에요. 26년 일했으니까 1년에 만 원씩 쳐서 넣었어요.”

아직은 빠듯한 저연차 교사의 월급에서 쪼개고 쪼개어 만든 돈이었다. 26년의 그 거대한 세월을 고작 만 원짜리 스물여섯 장으로 퉁치는 것 같아 내심 민망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봉투를 받아 들고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고맙다. 잘 쓸게.”

금액을 확인하지도 않고 그저 아들이 준 봉투를 소중히 쥐는 그 모습을 더는 마주하고 있기가 힘들었다. 괜히 코끝이 찡해지고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와, 도망치듯 방으로 얼른 들어가 버렸다.


그날 아침 어머니에게 들었다. 아버지가 퇴직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은행에 꼬박꼬박 모으고 계시다고. 당신의 노후보다 자식의 비상을 위해, 아버지는 스스로의 날개를 접고 평생을 좁은 운전석에 갇혀 계셨던 것이다. “교사는 세상을 많이 봐야 한다”며 나를 여행지로 보내주셨던 그 마음 뒤에, 당신의 헌신이 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내가 여행지에서 읽은 책과 경험한 넓은 세상은, 아버지가 기꺼이 포기한 수많은 기회비용 위에 세워진 탑이었다.


중학교 사회 중에서도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파트가 바로 ‘물가와 실업’ 단원이다. 보통 1학기 2회 고사가 끝난 뒤, 여름방학을 코앞에 둔 시점에 이 단원을 배운다. 무더운 7월의 교실,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

“쌤, 실업률 계산식 너무 복잡해요. 이거 2학기 시험에 나와요?”

“경제는 너무 수학 같아요. 머리 아파요.”


아이들의 투덜거림 속에 칠판에 적힌 공식들은 힘없이 바스러진다. 사회 교과서는 ‘마찰적 실업(Frictional Unemployment)’을 이렇게 정의한다.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현재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 자발적 실업이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실업과 달리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 수업 시간에 별생각 없이 가르쳤던 이 문장이 오늘따라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린다. 아버지는 재취업을 전제로 잠시 운전대를 놓으셨다. 교과서의 분류대로라면 이는 마찰적 실업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교과서의 말처럼 심각하지 않은 문제일까?


아버지에게 이 4개월은 더 좋은 직장을 고르기 위해 쇼핑하듯 탐색하는 시간이 아니다. 26년간 닳고 닳아버린 타이어를 잠시 식히고, 새벽 3시마다 도로 위로 나가기 위해 부서진 몸을 추스르는 처절한 생존의 시간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가장에게, ‘심각하지 않은 실업’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교과서의 잉크는 현실의 땀방울을 설명하기엔 너무나 건조하고 가볍다.


내년 여름, 다시 교단에 서서 이 단원을 가르칠 때, 칠판에 적힌 공식만을 이야기하진 않을 것이다. 실업은 단순히 ‘취업자 수에서 빠지는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아버지가 26년 만에 처음으로 알람 소리 없이 잠들 수 있는 시간이고, 가족을 위해 굽는 소고기 냄새이며, 다 큰 아들에게 “돈 필요하면 말해”라고 큰소리칠 수 있게 만드는 마지막 자존심이다.


아버지는 내년 3월, 약속대로 다시 시동을 거실 것이다. 비록 세상은 아버지를 ‘임시직 노동자’나 ‘고령 재취업자’라는 차가운 통계 수치로 분류하겠지만, 나에게 아버지는 교과서의 어떤 경제 용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가장 뜨겁고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이다.


그러니 부디, 아버지의 띄어쓰기 없는 삶에 비로소 찾아온 이 짧은 쉼표가, 교과서의 말처럼 정말로 ‘심각하지 않은’, 평온하고 따뜻한 시간이기를 바랄 뿐이다.


새벽 3시. 나의 단잠을 깨우던 그 치열한 기침 소리가 멈췄다. 이 낯선 고요가 26년을 달려온 아버지의 엔진을 식히는 자장가가 되어주기를. 그 소음에 빚져 자라난 내가, 침묵 속에서 비로소 깊은 감사를 올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다시 봄이 오고 엔진 소리가 시작되기 전까지, 아버지의 방에 깊고 평화로운 어둠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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