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비스트 초콜릿과 600번의 바느질

노동이 꿈이 되려면

by 서이안

사회법 단원 수업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근로 기준법이나 최저임금 같은 딱딱한 개념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말랑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유튜브 알고리즘을 뒤적이다 한 영상에서 멈췄다. 요즘 아이들이 열광한다는 ‘미스터비스트’의 영상이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칠판을 닦으며 영상을 틀었다. 평소엔 엎드려 있던 녀석들도 “어? 미스터비스트다!” 하며 고개를 든다. 영상 속 유튜버는 특유의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초콜릿 브랜드 ‘피스터블(Feastables)’을 홍보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흥미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는 영상을 일시 정지하고 질문을 던졌다.


“얘들아, 근데 이 형이 왜 갑자기 초콜릿 공장을 만든 줄 아니?”

아이들은 "돈 벌려고요", "맛있는 거 만들려고요"라며 제각기 대답했다. 나는 빙긋 웃으며 칠판에 하얀 분필로 또박또박 네 글자를 적었다.

아. 동. 노. 동.


“물론 돈도 벌고 싶었겠지. 하지만 미스터비스트는 기존 초콜릿 회사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불편한 진실을 꼬집고 싶었던 거야. 우리가 먹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농장에서, 너희만 한 아이들이 학교도 못 가고 일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래서 그는 더 투명하고 윤리적인 방법으로도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단다.”


교실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진 틈을 타 사회 교과서를 펼쳤다. “우리가 아는 동화 『성냥팔이 소녀』 기억나지? 그게 단지 슬픈 동화가 아니야.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하루 12시간 넘게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노동자들의 아픔이 담긴 이야기란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 법들이 바로 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생긴 거야.”

나는 PPT 화면을 넘겨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파키스탄의 ‘시알코트’라는 도시의 풍경이다. 전 세계 축구공의 70%가 생산된다는 그곳. 요즘은 기계로 찍어내는 공도 많다지만, 여전히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서 쓰는 최고급 공이나 튼튼한 공은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육각형과 오각형 가죽 조각 32개를 이어 붙여 공 하나를 완성하려면, 양손에 바늘을 쥐고 600번이 넘는 바느질을 해야 한다.


문제는 이 수백 번의 바느질이 누구의 손끝에서 나오느냐다. 공식적인 공장에서는 아동 노동이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물량을 맞추기 위해 일감을 집으로 가져가 온 가족이 매달리는 가내 수공업 현장까지 감시의 눈길이 닿지는 않는다. 그 닫힌 문 안에서, 연필을 쥐어야 할 손이 바늘을 쥔다. 하루 종일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공을 꿰매어 손에 쥐는 돈은 고작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몇 천 원 남짓.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그 돈은 내일을 꿈꿀 기회 대신, 오늘의 배고픔을 달랠 빵이 된다.


나에게도 고된 노동의 기억이 있다. 20대 시절, 동네 보습학원에서 강사로 일할 때였다. 혈기 왕성한 남중생들을 통솔하느라 목이 쉬는 건 예사였고, 월급이 제때 들어오지 않아 원장님 눈치만 보며 속을 끓이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교사가 된 지금, 나는 분명히 안다. 그때 나의 노동과 파키스탄 아이들의 노동은 결정적으로 달랐다.

나의 노동은 미래를 위한 사다리였다. 학원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며 흘린 땀은 훗날 내가 교단에 섰을 때 아이들을 이해하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힘들게 번 돈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책값이 되었고, 나는 그 시간을 밟고 올라가 선생님이라는 꿈을 이뤘다.


반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 노동은 미래를 지워버리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빈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 하더라도, 한창 학교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세상을 배워야 할 시간에 어두운 방에 갇혀 바늘을 찔러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아이에게 노동은 꿈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가난을 대물림하는 굴레일 뿐이다. 내가 사회 시간에 노동법을 가르치고 인권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적어도 노동이 아이들의 가능성마저 갉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한 아이의 질문에 나는 칠판 한쪽에 사람이 한 팔을 치켜들고 있는 모양의 마크를 그렸다. 그리고 ‘공정무역’이라고 썼다.


“경제학에서는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아동 노동을 금지한 거래를 공정무역이라고 해. '아름다운 가게'나 '두레생협', 혹은 마트의 일부 코너에 가면 이 마크가 붙은 축구공이나 초콜릿을 살 수 있어.”


그러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쌤, 근데 우리 동네 문방구엔 그런 거 안 파는데요?”

“그리고 너무 비싸 보여요. 제 용돈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맞는 말이다. 한정된 용돈으로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들에게,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비싼 착한 소비를 강요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일지 모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선생님도 매번 공정무역 제품만 쓰지는 못해. 주변에서 찾기도 힘들고 비싸니까. 너희에게 당장 나이키 축구공을 버리고 멀리 있는 가게에 가서 공정무역 공을 사라는 게 아니야. 그건 불가능하지.”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아이들과 눈을 맞췄다.


“다만,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야. 이 매끈한 축구공이 저절로 생긴 게 아니라, 누군가의 600번이 넘는 바느질, 어쩌면 우리 또래 친구의 고단한 땀방울이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래서 공을 찰 때마다 그 누군가의 노고를 떠올리며 물건을 조금 더 소중하게 다루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공정무역의 시작이란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언제나 그렇듯 몇몇 남학생들이 “야, 축구하러 가자!”며 우당탕탕 복도로 뛰어나간다.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 한 아이가 바닥에 굴러다니던 축구공을 조심히 집어 들고 먼지를 툭툭 턴다.

그거면 됐다. 당장 세상을 바꾸진 못해도, 적어도 누군가의 땀방울을 기억하려는 그 작은 손짓 하나면 충분하다. 그것이 언젠가 그 아이들에게 학교 갈 시간을 선물해 줄 변화의 씨앗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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