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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Dec 24. 2021

[프로스트 펑크] 1회차로도 강렬한 간접경험

  필자는 어떤 작품이든 남에게 뽐낼 수 있는 무기가 하나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진행한 게임 분석은 주로 각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중심으로 풀어낸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몬스터 헌터]에는 전투, [하데스]에는 반복 플레이가 핵심이었습니다. 매체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 자체가 가지는 무기는 몰입감입니다. 그리고 그걸 가장 잘 살리는 장르가 바로 시뮬레이션입니다. 현실성과 상식을 매우 따지기 때문에 비행기 조종 게임인 [마이크로소프트 플레이트 시뮬레이터]는 조이스틱을 따로 마련할 정도로 조작이 복잡했고, 유리를 타고 흐르는 빗물이나 대기 오염 등의 디테일도 많이 살렸습니다.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을 낯설어하는 유저에게도 권유할 수 있는 작품도 존재합니다. 그중 이번에 필자가 소개해드릴 게임은 [프로스트 펑크](이하 프펑)입니다. 이 작품의 무기는 강렬한 간접 경험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양심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가 수많은 유저 마음에 깊숙이 파고들었으며, 이를 염려하여 처음부터 플레이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하곤 합니다. 필자는 이번 글을 통해 개발자가 이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 하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마이크로소프트 플레이트 시뮬레이터] / 지도자가 되어 시민들과 추운 환경에서 살아남는 [프펑]


  [프펑]에서 유저는 시민과 함께 원인 모를 빙하기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아동에게 위험한 일을 시켜서 노동력을 얻을지, 톱밥을 섞어서 식량을 늘릴지, 매춘업을 들여서 불만을 잠재울지 등을 말입니다. -20˚ ~ -50˚가 기본인 세계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정책을 만들 때마다 양심과 효율을 저울질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눈 딱 감고 효율만 챙기면 시민의 불행이나 희망 수치가 극적으로 바뀌어 마을 밖으로 추방당합니다. 그래서 유저는 양심과 효율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시민들의 불평과 사망 소식에 괴로워합니다. 결과물이 이에 잘 보답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 엔딩이 4가지 있는데, 그중 3가지가 부정적인 문구로 마무리됩니다.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듯 말입니다.


처음 보면 꽤 당혹스럽다


  그래도 어찌어찌 진행하다 보면 자원 관리도 익숙해지고 시민 다루는 법도 어느정도 파악됩니다. [프펑]의 UI가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명확하게 잘 줘서 입문자도 숙달되기 쉬운 편입니다. 하지만 그때 유저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대략 첫 번째 시나리오 초중반 즈음인데, 모종의 사건이 일어나자 시민의 희망이 크게 감소하고 도시를 떠나려는 런던파가 생기는 것입니다. 일정 시간 내에 희망을 되살리지 못하면 유저는 도시에 쫓겨나고, 런던파는 도시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플레이어는 질서나 신앙 중 하나를 선택하여 시민의 믿음을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질서를 택하면 철권 통치로 지배하는 독재 체제로, 신앙을 선택하면 유저를 신으로 숭배받는 광신도 집단으로 도시가 변질하고 맙니다. 양심과 생존을 둘 다 챙기기 위해 역사 속에 묻어뒀던 방식까지 가져오는 것입니다. 유저에게 심적 갈등과 후회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실제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는 경우는 난이도가 너무 높거나 초보적인 실수를 연발하지 않는 이상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지금까지 플레이로 전달했던 메시지의 힘이 가장 떨어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독재나 광신도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변수도 적은 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건 유저의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고 그만큼 알맞은 시련을 주는 동적 난이도 시스템을 추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개발하기 워낙 어렵고 까다로워서 현실적으론 힘든 작업입니다. 동적 난이도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닐 정도입니다.


시민을 구하기 위해서든, 무엇을 선택하든, 결국 처형대가 생긴다


  이때부터 [프펑]에 변수가 적다는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보통 유저는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할 때 다양한 전략성을 실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하지만 [프펑]은 시나리오마다 다른 환경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문제와 해결 방식이 명확한 편입니다. 그나마 탐험대 목적지가 랜덤하게 나와서 자원을 조금씩 다르게 얻지만, 그것도 난이도를 높여야만 변수로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피난민들 시나리오에서는 시민이 너무 많아서 탐험대가 통조림 통장을 찾아서 식량 500개를 얻지 못하면 굶주림을 해결하기 힘들어집니다. 이렇듯 [프펑]에 변수가 적게나마 존재하며, 개발자가 의도적으로 변칙성과 전략성을 줄였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게임을 이렇게 만든 첫 번째 이유는 스트레스 극대화를 방지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유저에게 내적 갈등을 유발하기위해 [프펑]의 진행은 빡빡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시련을 극복하기도 급급한데 추가 변수가 무작위로 등장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정말 어려워집니다. 거기다 [프펑]의 메시지 전달력까지 생각했을 때 게임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1회차도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나마 탐험에서 변칙성이 보인다


  두 번째이자 가장 큰 이유는 간접 경험의 강렬함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양심을 찌르고 갈등을 강하게 유발하는 상황이라도 결국 무감각해지기 마련입니다. 자도 [프펑] 초반에는 아이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 게임을 반복하자 가장 능력이 좋은 기술자를 치료하기 위해 노동자와 아이를 병원에서 내쫓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두 번째 시나리오부터는 양심과 타협했고, 불만 게이지를 줄일 방법을 터득한 후 시민을 혹독하게 다뤘습니다. 아마 개발자는 이런 플레이를 의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다양한 시나리오로 각각의 시련을 주고 유저가 한번씩만 극복하기 바랐을 수도 있습니다. 실험적인 도전을 유발하는 전략성을 일부러 죽이고 다회차 플레이를 지양했던 것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개발자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느꼈던 간접 경험은 [프펑]에서만 느낄 수 있고, 전달력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주제에 힘이 떨어지는 건 인간이 가진 본능 때문이지 게임의 문제가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할수록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과 비슷한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자 위주로 회복시키기 / 노동자 중 누가 다쳤는지 잘 확인해야한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게임과 재미없는 게임이 존재합니다. 이에 대한 가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가끔 객관적인 가치로 작품이 평가받곤 합니다. [프펑]은 분명 경영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완성도가 다소 미흡한 작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포기하면서 얻은 간접 경험은 1회차만으로도 가치 있을 정도로 강렬합니다. 그래서 [프펑]은 간접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프펑]만큼 플레이를 주저하게 될 정도로 감정을 잘 전달하는 게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다만 전략성을 중요하기 여기시는 분들은 다시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나쁜 일만 있지는 않다


  게임 특유의 몰입감은 간접 경험을 강하게 전달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요소를 충족해주지만, 가끔 게임성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도 존재하곤 합니다. 바로 로망입니다. [레드 데드 리뎀션의 서부극, [포 아너]의 중세시대 등 다양하지만 이번에 가져올 작품의 로망은 메카물 자체입니다. 거대 로봇 시장은 이미 옛날부터 죽어갔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건담 정도입니다. 메카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랫동안 목말라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위해 30년간 시리즈를 이어온 게임, 다음에 다룰 작품은 [슈퍼로봇대전3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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