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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Jan 07. 2022

[슈퍼 로봇 대전30] 거대 로봇의 낭만, 그리고 로망

  필자는 거대 로봇물을 좋아하지만 [슈퍼로봇대전](이하 슈로대)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그 장르가 메이저 중에 마이너, 혹은 마이너 중에 메이저라고 불리긴 해도 실질적으로 그들이 등장하는 게임 자체는 적은 편입니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것도 [슈로데]와 [사쿠라 대전], [건담] 정도이지 [타이탄 폴]과 [아머드 코어]의 신작은 오랫동안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사쿠라 대전]은 13년 동안 공백기였고, [슈로대]는 게임성이 떨어지고 변화가 적다는 말이 많아서 필자도 로봇에 대한 열망을 프라모델로 해소하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재미있게 본 「ssss그리드맨」이란 애니메이션이 [슈로대30]이란 작품에 참전했단 소식을 듣고 이 시리즈를 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부정적인 얘기를 앞서 했지만 사실 그나마 메카물의 로망을 채워줄 수 있는 작품도 [슈로대]가 거의 유일하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의 로망은 기본적으로 만날 수 없던 마징가나 건담 등이 모여 함께 적과 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만 끝났다면 이 게임 시리즈가 30년 동안 이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선 최신작인 [슈로대30]이 거대 로봇물의 로망을 어떤 방식으로 충족시켜주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슈로대30]이 전작에서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필자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입문했기 때문에 자세한 변경 사항을 말씀드리기 힘들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격추 수 순위에 따라 메뉴 화면에 등장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기체에게 싸움을 많이 붙인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슈로대]는 수많은 메카물이 모이는 게임이지만 각 거대 로봇의 등장 순서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던 사람이 [슈로대]를 시작하면, 에바를 얻을 수 있는 시나리오까지 억지로 게임을 해야 햇습니다. 하지만 이번 [슈로대30]은 아군 기체를 얻을 수 있는 서브 미션을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특정 참전작만 보고 입문한 사람이라면 환영할만한 변화지만, 개발자 입장에서는 너무 막막한 작업입니다. 어떤 캐릭터가 언제 영입될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개발할 땐 힘들어도 결과물을 보면 게임적 재미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특정 작품을 빨리 만나고 싶어 하는 유저들의 설렘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스템입니다. 실제로도 대화의 흐름이 어색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물론 이 시스템을 만드는 요령이 어느 정도 존재하긴 합니다.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건 [슈로대30] 오리지널 캐릭터고, 참전작 스토리일 경우 그 작품 인물의 분량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 외 캐릭터는 첨언이나 혼잣말하는 수준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해당 시나리오를 이끌어갈 캐릭터는 정해져있고, 그 외 대사는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나타난다


  수많은 작품이 불규칙적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의 세계관은 [슈로대30] 내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습니다. 다만 거대 로봇물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최소 국가 하나를 뒤흔드는 것들이라서 [슈로대30]의 10년은 역대 가장 암울한 시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담의 1년 전쟁, 마징가의 헬 사변, 겟타의 월면전쟁, 코드기어스의 제로 레퀴엠, 컴배틀러V의 이성인 침략, 가오가이거의 원종 대전 등등 굵직한 사건들이 전부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다른 작품의 캐릭터들은 전설이나 소문 등으로 서로를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슈로대]에 자주 등장한 건담의 아무로와 마징가의 코우지, 겟타의 료마는 서로에게 진한 전우애를 가진 상태이며, 가오가이가의 GGG의 기술로 제이데커의 데커드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슈로대]는 원작과 조금 다른 설정으로 서로와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게임 시리즈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긍정적 설정 변화 덕분에 유저는 이미 즐겼던 작품을 다르게 소비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등장한 신지의 정신 상태는 불행한 상황 속에 치이며 망가졌지만, [슈로대]에선 이를 치유해줄 캐릭터가 많이 등장합니다. 애초에 신지의 인생사는 초기 아무로와 많이 닮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불행을 극복한 어른들을 만난 신지는 [슈로대]에서 점점 발고 믿음직한 성격으로 바뀝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선 볼 수 없었던, 하지만 모두가 바라던 그의 성장을 [슈로대]에서만 불 수 있습니다.


아무로를 너무 잘 아는 두 사람


  어느 작품의 새로운 모습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기억 속에 빛나던 것을 그대로 즐기는 것도 로망 중 하나입니다. 특히 적을 물리치는 필살기는 설사 추억 보정이더라도 어린 시절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슈로대는 거대 로봇의 기술을 공격 연출로 폴어갑니다. 잠깐이라도 나왔던 기술을 방영 당시 애니메이션처럼 똑같이 재연하거나 새로운 연출로 다시 구성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공격 연출은 한두 번 보기만 하고 이후엔 스킵할 때가 많습니다. 전 시리즈의 것을 그대로 재활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출은 [슈로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히 「패계왕 가오가이거 대 베터맨」처럼 영상화되지 않은 작품의 필살기 연출, 혹은 [슈로대30]에서 완성된 버전으로 등장한 로봇인 월홍영수 등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게임을 하는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각 기술의 연출 퀄리티가 안정적이지 못한 건 현실적인 여건 때문이었겠지만 좀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특히 진 겟타 드래곤 겟타빔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겟타 싫어하나?


  [슈로대]는 캐릭터를 체스 말처럼 움직이는 턴제 SRPG 게임입니다. 지형, 공격 방식, 기력, 강화 시스템 등 복잡한 부분이 많지만 게임 내에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잘 없습니다. 그렇다고 레벨디자인이 훌륭해서 유저가 자연스럽게 터득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거 대충 클릭만 해도 진행이 될 만큼 쉽습니다. 필자의 경험 위주이긴 하지만, 게임 내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는 순간도 시련을 극복할 무언가를 찾을 때가 아니라 기존 조작이 익숙해지거나 더 편하게 진행하려면 뭘 해야 하나 찾을 때였습니다. 이 정도로 난이도가 쉬워지는 이유는 [슈로대]의 전투가 회피율과 명중률 등 확률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개발자가 기재한 50%가 유저에게 50%로 작용하지 못할 정도로 게임 내 확률은 불안정해서 공격의 성공 여부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작업입니다. 잘못하면 게임이 유저에게 장난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 개발자는 그들이 기체 업그레이드나 스킬을 통해 스스로 확률을 조절하게끔 하여 난이도를 낮춰버린 것 같습니다. 게다가 [슈로대30]에 오토 시스템이 추가되어 기체나 캐릭터를 강화하기도 용이해졌습니다. 그래서 게임성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각자가 좋아하는 주인공들이 멋있게 활약하거나 재미있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필자도 그리드맨이 잡몹에게 당하는 걸 보고싶지 않아서 개발진의 선택에 공감은 갑니다.


좋아하는 기체가 아니라면 관심 없다


  [슈로대30]은 누구에게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건담을 제외한 거대 로봇은 거의 다 죽어가는 추세이며, SRPG도 최신 IP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장르고, 애초에 게임성 자체가 훌륭한 시리즈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게임 시리즈가 30년 동안 이어졌다는 건 그만한 매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옛날에 좋아했던 거대 로봇 작품을 다시 즐기며 로망을 채워줄 수 있는 건 [슈로대]가 거의 유일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게임 시리즈에 추억의 작품이 참전했을 때 입문해보시길 추천합니다. 필자는 다이나제논이나 빅토리 구슬동자, 파워레인저 정글포스 등이 참전하면 다시 해볼 겁니다. 참고로 PC 버전보단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해보시길 바랍니다. PC로 게임을 즐기던 필자는 최종 보스를 거의 다 이긴 상태에서 버그에 걸려 엔딩을 못 봤습니다.


나오면 하겠지만 리뷰까지는...


  [슈로대30]은 난이도가 너무 쉬워서 가르침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게임이 어려울수록 섬세한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뜻이 됩니다. 글로 화면 전체를 빽빽하게 채우면 재미가 없고, 너무 숨기면 유저가 적응하기 힘들어합니다. 꼭 알려줘야 할 정보를 선별해도 이를 어떻게 전달하는지도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이번엔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게임을 통해 유저를 어떻게 학습시키는지, 레벨 디자인을 어떻게 했길래 유저가 끝까지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음에 다룰 작품은 출시 전 어느 기자를 30분 동안 진땀 빼게 한 게임입니다. 1930년대 만화 같은 그래픽을 가진 보스 러쉬 게임, 바로 [컵헤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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