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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Feb 18. 2022

[천수의 사쿠나히메] 농사가 재미있는 이유

  [천수의 사쿠나히메](이하 사쿠나히메)는 트레일러에서부터 특이한 컨셉을 보여줬습니다. 전투와 농사 2개가 핵심이라며 주인공이 적을 처치하고 모내기를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신박하긴 했지만 필자는 그 컨셉을 믿지 못했습니다. 원래 특출난 장점은 개발에 있어 방향성을 제시하고, 완성품의 색깔을 결정하기 마련입니다. 그 때문에 어느 작품이든 뚜렷한 무기를 최대한 적게 챙기고, 나머지는 이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구성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사쿠나히메]에 농사를 특이한 시스템으로 간단하게 넣고 전투를 중점으로 키우면 괜찮은 게임이 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전투의 신과 농사의 신의 자손이라는 컨셉에 맞게 주인공은 히노에 섬에서 전투와 농사를 병행했고, 의외로 둘 다 주류로 양립하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사쿠나히메]에서 여러 콘텐츠의 밸런스를 어떻게 잘 잡았는지, 그리고 농사 같은 비주류 콘텐츠에서 어떻게 재미를 끌어올렸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사쿠나히메]의 농사는 논갈기부터 진심이다


  우선 [사쿠나히메]의 전투는 약공격, 강공격으로 조합한 콤보와 무기술, 날개옷 등의 스킬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다 무기마다 속성도 있고, 충돌이나 튕기기 등의 시스템도 있어서 상황에 따라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나름 신경 쓴 부분이지만 사실 이것만으로 모든 상황을 타개하기 힘들기 때문에 깊이 있는 전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주인공이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법은 유저의 컨트롤이 아닌 스탯입니다. [사쿠나히메]의 스테이지는 낮과 밤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밤이 되어 적의 스탯이 올라갔을 때 주인공이 어느 정도 강하지 못하면 어떤 기술을 사용하든 무조건 데미지 1만 뜹니다. 주인공이 충분히 전투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있는 셈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스테이지에서 그렇기 때문에 [사쿠나히메]의 전투는 컨트롤로 오랫동안 콤보를 구사하는 게 아니라 높은 스탯으로 빠르게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자란 스탯을 올리기 위해 농사로 벼를 수확해야 합니다.


시간에 따른 난이도 상승이 심하다


  하지만 [사쿠나히메]의 농사는 매우 불편합니다. 반응이 빨리 나오는 것이 게임의 기본인데 가을이 올 때까지 노동 같은 것들만 해야 하며, 결과물이 얼마나 좋을지도 예상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천수나 분얼기 등 전문용어가 그대로 나올 정도로 자세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게임 내에서 공략을 어느 정도 알려주긴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기엔 너무 부족해서 유저가 농촌진흥청을 찾아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든 넘기고 수확 철이 오면 그간의 고생이 싹 날아갑니다. 농사의 신이기도 한 주인공은 추수한 벼의 상태에 따라 스탯이 상승합니다. 예를 들어 양이 많아지면 체력이 늘고, 맛이 좋아지면 공격력이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성장 폭도 체감이 크게 될 정도라서 벽으로 느껴졌던 스테이지도 단번에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양과 맛 말고도 경도, 찰기, 윤기, 향 등에도 좋은 평가를 받으면 주인공의 스탯이 올라가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충족하기 위해 1년 정도 농사에 집중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벼를 좋게 성장시키려면 좋은 비료를 써야 하고, 그 비료의 재료는 주인공이 직접 전투에서 얻어와야 합니다.


벼를 수확하면 어느 항목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상태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이 게임에서 전투만 계속하면 스탯의 한계를 느끼고, 농사만 계속 하면 성장폭의 줄어듭니다. 그래서 두 핵심 콘텐츠의 양립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전투와 농사는 어떤 부분이 막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전투의 경우 적당히 즐기기엔 좋지만 깊이 파헤칠만한 요소가 많지 않았습니다. 적에게 콤보를 구사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나중엔 숙련도가 높아진 무기술에 의존하는 싸움이 됩니다. 특히 보스와 싸울 때 벽이 느껴지는데, 슈퍼아머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콤보를 구사하지 못하고 치고 빠지는 전술로만 상대해야 합니다. 그러다 한 대만 맞아도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몰립니다. 그때 벼농사가 끝나면서 스탯을 올리면 충분히 할만한 정도까지 성장하게 되어 유저는 벼농사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필자는 스테이지 진행이 막히면 벼를 수확할 때까지 모든 재료를 다 써서 농사에 전부 올인하곤 했습니다. 반대로 엔딩 후 농사에 완전히 전념할 때는 전투에서 얻는 재료에 의존해야 합니다. 농사에 사용되는 비료는 낮에만 효과를 보고, 좋은 비료 재료는 밤에 싸우거나 천반궁에서 싸워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사냥으로 재료 모으기, 비료로 농사하기, 식사로 버프 얻기가 계속 순환된다


  전투와 농사가 서로를 보완하며 조화를 이룬다고는 했지만, 사실 하나가 재미없으면 나머지 콘텐츠가 억지로 하는 일로 변하게 됩니다. [사쿠나히메]에 그런 말이 없었으니까 둘 다 따로 떼놓고 봐도 재미있다는 의미가 되지만, 사실 농사 콘텐츠는 전투가 없었다면 재미 없었을 것입니다. 정확히는 전투가 아니라 다른 콘텐츠라도 농사와 같이 있어야 했습니다. {사쿠나히메]에서 재미있기로 소문난 농사는 파고들수록 복잡합니다. 농사 과정이나 비료에 따라 벼의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콘텐츠의 깊이가 전투보다 더 깊습니다. 공략은 있지만 전문용어와 수치가 복잡해서 이해하기 힘들고, 변수가 너무 많아서 따라하기도 어렵습니다. 거기다 원하는 쌀 평가를 얻을 거란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초보자가 농사를 포기하지 않았던 건 이 모든 정보를 무시하고 진행해도 손해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올해 농사에 병충해가 심하고 모를 촘촘히 심었다고 쌀 평가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최악의 순간이 와도 수확철이 오면 주인공의 스탯은 무조건 상승합니다. 농사가 무조건 성공만 하는 콘텐츠이고, 반복 작업도 점점 간소화되는 걸 알게되면 유저에게 이것저것 실험하려는 마음이 샘솟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 플레이어는 농사의 복잡함을 조금씩 이해해 나갑니다. 그리고 쌀 평가를 좋게 받으면 농사를 잘한다는 기분이 들고, 나중엔 전투를 잘한다는 기분으로 연쇄로 일어납니다. 물론 단순히 스트레스가 적고 큰 보상을 안정적으로 주는 콘텐츠가 다 재미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서로 상호 보완하거나 지원을 받는 콘텐츠가 추가로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전투나 전략 등 다른 게임에도 흔히 있으면서 몰입하기 좋은 콘텐츠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사쿠나히메]의 농사와 비슷한 콘텐츠로 [용과 같이 시리즈]의 물장사(캬바레) 등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여  돈을 많이 벌면 주인공이 강해지거나 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이를 통해 게임을 잘하고 있다는 기분이 꾸준히 들게 됩니다. 더 높은 목표를 만들어주거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다면 농사나 물장사는 재미 없었을 것입니다. 


농서 설명이 불친절해서 필자는 무시했지만 벼는 계속 성장했다


  [사쿠나히메]는 아이들에게 벼농사를 가르쳐줄 수 있을 정도로 교육적이면서, 플레이타임이 긴 게임입니다. 천반궁이란 스테이지는 300층까지 있고, 쌀 평가 중 향은 비교적 늦게 성장하기 때문에 전투와 농사를 둘 다 오래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쿠나히메]는 오래 즐길 게임을 찾으시는 분에게, 자녀에게 게임을 시키고 싶은 분에게, 혹은 시골 풍경을 좋아하시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주인공이 자고 일어나 매미 소리를 들으며 집 앞에 있는 논을 볼 때 묘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논부터 보인다


  저번에 [데스 스트랜딩]을 통해 게임의 재미가 무엇인지 말한 적 있습니다. 어느 장르든 통한다는 듯 얘기했지만 사실 농사는 예외였습니다. 그 이유는 농사에서 결과물을 얻기까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너무 오랫동안 버텨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쿠나히메]는 그러한 부담감을 줄이는 데 성공하여 재미있는 농사 게임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가져올 작품은 이에 반대되는 게임입니다. 실제 농사처럼 스트레스를 버텨가며 해야 하는데도 큰 사랑을 받은 작품, 바로 [다크소울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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