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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Mar 04. 2022

[다크소울3] 가장 중요한 건 손도, 순발력도 아니다

  게임에선 가끔 모든 장비와 스킬을 봉인한 채 미션을 클리어하라고 합니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선 쿠거 치데의 사당이나 검의 시련이 그러했습니다. 한창 강해졌다고 우쭐했을 시기에 자주 등장해서 즐거운 흐름을 끊어먹기도 하지만, 사실 그만큼 유저가 많은 것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액션 게임이 유발하는 착각은 이런 겁니다. 유저의 실력 향상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물론 플레이어의 지식과 경험은 쌓이는 게 맞습니다. 다만 캐릭터의 레벨이나 장비 등이 더욱 명확하기 때문에 유저 자신의 성장보단 캐릭터의 성장이 게임을 진행하는데 더 크게 작용하도록 게임이 설계되곤 합니다. [다크소울3](이하 닼소3)도 이러한 착각은 일으키지만, 유저의 성장이 더 크게 차지하는 게임입니다. 특이한 건 설명이 불친절하면서 플레이어의 컨트롤보다 지식을 더 자주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닼소3]에서 지식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의 DLC에 추가된 검의 시련


  [닼소3]는 공략을 보면 진행이 수월해질 정도로 정보가 중요한 게임입니다. 그걸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유저들에게 외면받지 않은 이유는 그 지식이 상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적을 만나면 방패로 공격을 막거나, 거리를 벌려 상대가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면 됩니다. 긴 무기를 들면 약한 데미지라도 안정적으로 넣을 수 있지만 벽에 부딪히기 쉽습니다. 적이 방패를 들고 있는 쪽으로 파고들면 공격이 자동으로 막힙니다. 튼튼한 장비는 그만큼 무거워서 근력이나 체력을 많이 요구합니다. 힘든 적이지만 필수적으로 잡아야할 보스가 아니라면 도망쳐도 됩니다. 그 외 많은 상식이 [닼소3]에 다 적용됩니다. 하지만 판타지 게임에 현실적인 요소를 그대로 대입하는 건 생각보다 힘듭니다. 특히 게임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현실과 게임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어서 그 작품의 시스템에 해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실제 상식이 잘 통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오답과 정답의 대가를 크게 만들었습니다. 유저가 상대의 패턴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면 몇 없는 물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큰 데미지를 받거나 죽어버립니다. 전투 시스템은 1대1에 맞춰져 있지만 실제로는 1대다수일 때가 많아서 흔한 잡몹에게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움직여서 잘 대응하면 살아남을 수 있고 공략법도 알게 됩니다. 게다가 사실 적의 패턴을 잘 피할 수 있도록 회피의 무적 시간이 0.4초 정도 됩니다. [닼소3] 외 어려운 게임에서도 이렇게 판정이 후한 경우는 꽤 적습니다. 사실상 공격 하나를 그냥 무시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이렇게 유저가 게임에서 본능적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고, 이에 대한 오답 처리를 확실하여 쓸만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적은 상대에게 경직을 잘 넣는 주제에 자기도 경직에 잘 걸린다


  [닼소3]에서 주인공이 죽으면 화톳불이라는 특정 지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만약 그때 이미 만났던 적이 안 나오거나, 혹은 새로운 적을 만나면 아무리 좋은 공략을 얻어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오히려 지식을 등한시하고 어떻게든 밀고 나가는 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화톳불에서 주인공이 쉬면 물약 수급과 체력 회복 등이 일어남과 동시에 해치웠던 적 대부분이 다시 살아납니다. 이를 처음 겪은 유저는 어렵게 죽인 적이 왜 다시 살아나냐고 하겠지만, 사실 이는 이미 쓰인 지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매복이나 함정, 몬스터별 공략법을 이미 알기 때문에 유저는 처음 했을 때보다 피해를 적게 보면서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닼소3]의 엔딩을 본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몬스터의 패턴이나 등장 위치 등이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적 체력만 조금 늘어나는 정도입니다. 그렇게 같은 곳을 얼마나 반복하든 변화를 최대한 적게 하여 지식의 가치를 오래 보존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경험을 계속 쌓아가면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대응법을 찾아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성장한 자기 자신을 깨달으며 척박하고 암울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닼소3]의 탐험을 즐기기 시작하면 죽음과 수수께끼의 땅을 동네 마실 가듯이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이런 적들은 부활하지 않는다


  반복 숙달로 지식을 쌓아 올린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그 정보의 패턴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보스를 물리친 후 새로운 길에 한 발 내디딘 유저는 그 패턴으로 앞날을 예측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괴롭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어느 정도 반복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약한 놈들은 모여있거나 매복을 자주 하고, 강한 놈은 멀리서 혼자 유저를 기다릴 때가 많습니다. 눈에 띄는 곳에 가도록 유도하고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단 보이거나 들리는 것에 다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특히 이러한 예측을 가장 필요로 하는 건 환상의 벽 입니다. [닼소3]에서 가끔 벽을 때리면 환영이 사라지면서 가려졌던 공간이 나옵니다. 거기서 지름길이나 특정 엔딩에 필요한 아이템도 있어서 잘 파악해야 하지만 공략을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찾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지금껏 봐왔던 환경 패턴이나 공간 파악 능력으로 눈치채야 합니다. 처음엔 아이템으로 유도도 하고 차이점도 확실하게 만들어놔서 알아보기 쉬운 편입니다. 하지만 점점 주변 사물과 비슷해져서, 전체적인 맵을 파악한 후 길이 있어야 하는 지점에 칼을 휘둘러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환상의 벽을 지금까지 발견할 수 있는 건 본인도 모른 채 축적된 지식이 데이터베이스가 되어 감으로 게임 내 위화감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유저가 남긴 메세지로 찾기도 한다


  지금까지 본문을 읽으신 분들은 [닼소3]가 유저에게 지식을 축적하게 하기 위해 직접 설명하지 않고 조금씩 보여주기만 한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이러한 방식은 스토리텔링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거인 궁수나 길 잃은 데몬 등 뜬금없는 요소가 등장하는데, 탐험을 이어가면서 특이한 장식물이나 보스의 이름, 아이템 설명 등을 발견할 때마다 부자연스러운 존재들에게도 고유한 스토리가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메인 시나리오의 큰 줄기는 보스를 잡아 세계를 구하는 것이지만 사실 유저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주인공이 아니라 그 외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스토리는 이미 결말 직전까지 도달한 상태면서 누군가 쪽지로 기록해둔 것도 거의 없기 때문에 유저는 그럴듯한 흔적을 찾으며 옛날에 어떠했을지 추리해야 합니다. 마치 영화의 중요한 장면을 사진 몇 장으로만 보여주고 이해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대략적인 문맥은 파악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알기는 힘들 정도로 정보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시나리오 개발자가 스토리를 기획서가 아닌 소문으로 회사에 퍼트린다고 합니다. 어쨌든 [닼소3]의 개발사인 프롬 소프트웨어에선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워낙 자주 쓰다 보니 이를 분석하는 뇌를 '프롬 뇌'라고 따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합니다. 참고로 필자는 불호입니다.


아니 그래서 얘가 왜 부활하는데


  [닼소3]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유명하지만 많은 사람이 시도하기 꺼리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죽으면서 배운다는 말은 초보자에게 와닿지 않는 말이고, 경험하고 싶지도 않은 것입니다. 배경도 어두침침하고 적도 기형적이거나 징그럽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품 속에 매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필자는 지금껏 성향에 따라 게임을 추천해왔습니다. 하지만 [닼소3]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 권하고 싶습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워낙 공략 많아져서 옛날만큼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너무 걱정되면 [카타나 제로]란 게임을 먼저 해보셔도 됩니다. 죽으면서 배워도 최대한 스트레스를 줄인 게임이라서 [닼소3]하기 전에 미리 경험하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에서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재도전이다


  한때 외국에서 [닼소]가 WRPG와 JRPG 중 무엇인지 논쟁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WRPG는 서양 RPG, JRPG는 일본 RPG입니다. [닼소]가 일본 회사에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요즘 만들어진 게임처럼 WRPG와 JRPG가 적절히 잘 섞인 작품입니다. 그래서 옛날 게임에서나 나누던 기준을 이제 와서 다시 가져오는 것도 의미 없는 짓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둘의 차이가 지금까지 일부 남아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각자 영향받은 문화권의 탓도 크며, 이를 알아가면 작품을 해석하는 시각을 더 늘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글엔 WPRG를 하나 가져와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2주 후에 다룰 작품은 바로 [다잉 라이트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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