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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Mar 18. 2022

[다잉 라이트2] WRPG의 잔재


  RPG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오면서 다양한 하위장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TRPG(테이블)와 CRPG(컴퓨터), 구성에 따라 달라지는 MMORPG(필드 위주)와 MORPG(던전 위주), 문화권에 따라 달라지는 WRPG(서양)와 JRPG(일본) 등이 있습니다. 그중 WRPG와 JRPG 작품은 문화 교류가 활발해져서인지 옛날처럼 한쪽 성향으로 쏠리는 일이 적어졌습니다. 다만 이건 그들이 중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특성이 섞일 때가 많다는 뜻입니다. 이제 와서 WRPG와 JRPG를 나누는 건 의미없는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풍화되지 않은 요소가 각각 무엇인지, 그리고 그게 왜 잔존해있는지를 알게 되면 작품을 해석하는 시야가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다잉 라이트2](이하 다라2)에 WRPG 특징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JRPG도 다루고 싶지만 준비가 덜 된 관계로 당분간 미뤄둔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WRPG의 대표인 [울티마], JRPG의 대표인 [드래곤 퀘스트]


  우선 WRPG를 파해치기 위해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전자오락인 [퐁]은 1972년에 출시하였고, 사람들이 테이블에 모여 책과 필기구로 역할 놀이를 하는 RPG의 시초 [던전 앤 드래곤]은 1974년에 출시했습니다. 미국은 전자오락과 TRPG를 비슷한 시기에 접한 겁니다. 둘 다 큰 인기를 끌었지만 TRPG는 사람과 직접 얘기를 하며 진행하기 때문에 자유도가 높은 대신 룰이 복잡하고 혼자 하기 힘들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미국인은 TRPG를 컴퓨터에 옮겨서 편하게 놀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직접 문장을 입력하는 텍스트 어드벤쳐에서 [로그](1980)와 [울티마](1980)까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서양 특유의 컴퓨터 RPG가 완성해갔습니다. 그래서 WRPG의 특징은 TRPG처럼 이동과 스토리 분기의 자유도, 다양한 상호작용 등으로 세계를 표현, 커스터마이징이나 스탯을 통한 자기표현 등이 있습니다. 스토리란 캐릭터가 알아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직접 이끌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그에 따른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세계에 대한 표현이 중요한 것도 플레이어가 판타지 세계에 잘 몰입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동감이 없는 세상에선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힘듭니다. 정리하자면, TRPG에서 캐릭터 이름과 스탯을 유저가 직접 작성하고, 판타지 세계에서의 새로운 자기 자신을 표현하며, 스스로 어떻게 행동할지 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WRPG입니다. 이제 [다라2]를 알아볼 건데, 지금부터 WRPG란 단어를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요즘처럼 WRPG와 JRPG 요소가 많이 섞여 있는 시대에 굳이 그 하위장르를 세세하게 나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작품을 분석하던 중 JRPG 요소가 나오면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이번엔 스토리 스포도 존재하기 때문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서양에서 RPG의 R(role)은 '판타지 세계에서의 새로운 나'를 의미한다


  [다라2]의 스토리는 성경이나 서부극 클리셰 등 북미에서 익숙한 시나리오 구조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에이든이란 주인공이 어느 마을로 들어가고, 악당을 물리쳐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외부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스토리에서 영향력은 중심인물의 내면이 아닌 바깥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즉, 주인공과 상관없는 곳에서 사건이 먼저 터져야 시나리오가 진행됩니다. 주인공이 은퇴한 전문가, 혹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 모험가나 용병으로 자주 설정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주인공이 극복해야 할 문제는 교통사고처럼 들이박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거리감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사건이 중요하다 보니 주변 인물은 그저 적당한 개연성으로 상황을 일으키는 존재가 됩니다. 주인공도 영향력은 있지만 주변 캐릭터에게 내적 성장 요소가 거의 없어서, 그 영향력이 가만히 있던 세계에 가해집니다. 그래서 대화 도중 유저가 무엇을 선택하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집니다. [다라2]도 유저의 선택에 따라 주변 인물을 구할지 말지, 마을을 구할지 말지 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인공 에이든은 JRPG에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캐릭터입니다. 서부극에서 주인공은 주변 사람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이 많이 들고, 게임에선 문제 해결책 정도로 그칠 때가 많습니다. 이를 보완하고자 개발사는 에이든에게 옛날에 헤어진 여동생을 찾고 싶다는 욕망을 부여했습니다. 그의 행동 동기는 엔딩 끝까지 이어집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건 그 여정의 부수적 결과물일 뿐입니다. 


주인공은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엮이게 된다


  유저는 게임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여 돌아다닐 수 있지만 스토리나 레벨 등으로 이동에 제한이 걸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플레이어에게 자유가 주어질수록 변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고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겁니다. 하지만 TRPG는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하며, [다라2]의 파쿠르 시스템은 이를 확실하게 실현한 시스템입니다. 유저는 언제든지 도로에 있는 좀비 무리를 피해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고, 지붕 위를 질주하며 아이템과 캠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미러스 엣지]라는 작품도 파쿠르가 들어갔지만 [다라2]와는 아주 다릅니다. [미러스 엣지]는 정해진 골인 지점까지 퍼즐 풀듯 진행하기 때문에 사실상 유저의 행동에 제한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라2]에서는 플레이어가 언제 어디로 움직일지를 스스로 정하기 때문에 어느 건물이든 다 갈 수 있게 구조물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파쿠르 중 스태미나가 떨어져도 어느 정도는 넘어가는 편이고, 심지어 상호작용 판정도 너그러운 편이라서 실패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어떻게든 기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제한적인 1인칭 시점이라서 그런지 진행이 억지스러워도 너그럽게 넘어가게 됩니다.


어떻게든 건물을 넘어갈 수 있는 구조물이 있다


  [다라]의 전투도 재미있는 편입니다. 단순히 타격감과 손맛이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작품의 전투는 어떠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보통 게임에서 낙사를 가장 많이 겪는 건 주인공입니다. 만약 적이 낭떠러지에 쉽게 떨어지면 게임이 단순하고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크소울3]처럼 어려운 게임에서야 가끔 꼼수로 쓰이곤 합니다. 그러나 [다라2]는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도 아니면서 낙사를 권장합니다. 드롭킥이나 던지기 등에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면 상대를 더 멀리 날려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건 공간감을 파악하라는 뜻도 있지만, 주인공의 무대가 높은 곳에 있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즉, 전투가 세계관을 묘사하는데에도 쓰이는 겁니다. 적에게 드롭킥을 썼을 때 스파이크 트랩이 있는 쪽으로 유도되는 것도 상대를 날려버리는 기술을 더 자주 쓰도록 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추가로 고철을 주워 무기를 만드는 것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묘사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물론 내구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유저는 재료를 끊임없이 수급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 좀 이상하지만 드롭킥으로 적을 날리는 건 맞음


  [다라2]는 요즘 유행하는 오픈 월드와 요즘 거의 없는 파쿠르 장르가 섞인 게임입니다. 그리고 출시일을 계속 미루다가 결국 버그투성이로 출시된 게임이기도 합니다. 워낙 장단점이 뚜렷하다 보니 선뜻 누군가에게 추천하기는 힘듭니다. 일단은 1년 정도는 기다렸다가 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개발사가 난항을 겪고 있어서 그런지 버그가 많은 게임이 자주 출시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출시 1년이 지나 완성도가 좋아졌을 때 게임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다라2]는 버그가 많이 잡혔을 때, 좀비나 파쿠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지금도 재미있는 게임이 숙성되었을 때 안정감까지 가지게 되면 꽤 좋은 작품이 될 겁니다.


출시 직후 버그를 고쳐서 비평가와 유저의 평점 차이가 클 수도 있다


  오픈월드에서 유저가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에 개발사는 적의 레벨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해야 합니다. [엘든링]처럼 난이도를 고정하는 방식도 있고, [원신]처럼 특정 수치가 오를수록 적이 더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런 적을 처치하면서 유저가 스스로 잘한다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마냥 어려워져도, 쉬워져도 안 됩니다. 이 모호한 기준을 잘 잡은 게 필자는 [슈퍼마리오 시리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음에 다룰 작품은 [슈퍼 마리오]는 아닙니다. 배워야 할 부분을 잘 강화해서 나온 작품, 바로 [셀레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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