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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Apr 15. 2022

[시푸] 컨셉을 지켜라

  게임 장르나 시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의 크기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1인칭을 제외한 게임에서 상대방의 덩치가 주인공보다 크면 유저는 위압감을 받는 동시에 패턴을 파악하기도 쉬워집니다. 그 이유는 적의 신체가 거대한 만큼 움직일 때도 티가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적의 덩치가 주인공과 비슷하거나 작으면, 특히 현실적인 맨손 무술을 구사할 경우엔 전투가 어려워집니다. 단순한 정권 찌르기조차 주인공에게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적을 크게 만들거나, 혹은 작은 덩치로 호쾌한 액션을 보여주곤 합니다. [시푸]는 이러한 공식과 반대로 제작된 게임입니다. 동양 액션 영화가 모티브였는지 주인공과 상대방은 전부 인간 사이즈 무도가입니다. 그래서 전투가 작은 움직임과 정교한 판정으로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난이도가 높은 게임으로 유명합니다. 이번엔 [시푸]가 컨셉을 지키기 위해 이 고난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제작단계를 예상해보며 알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필자의 상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걸러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나마 덩치가 큰 적


  앞서 언급했듯 이 게임의 모티브는 동양 액션 영화로 보입니다. 특히 쿵푸를 자주 쓰다 보니 [시푸]에서 등장할 적의 크기는 평범한 인간에서 최대 2m 정도이며, 여러명이 동시에 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상대는 액션 영화에서 서로 합을 맞춘 것처럼 공수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본 작품의 전투는 매우 한정적으로 변합니다. 현실적인 동작으로는 적의 공격을 미리 예견하기 힘들고, 이펙트를 화려하게 하면 상대방이 가려져서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모티브를 생각하면 결국 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어려운데 [시푸]의 회피는 정박과 엇박, 상단과 하단으로 대응 방식을 나눠서 서로 합을 맞춘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회피가 리듬 게임처럼 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사실 모든 공격을 순식간에 눈치채고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한 후 입력키를 누르는 건 유저에게 너무 가혹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어려워도 숙달되었을 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적의 패턴을 잘 보면 대부분 콤보로 구성되어서 첫 번째 공격 이후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상단 회피를 자주 사용하면 꽤 많은 공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 2가지를 알아차렸을 때 유저는 각성이라도 한 듯 게임을 좀 더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상단과 하단 회피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러한 각성을 많은 유저가 경험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도 이에 공감합니다. 반복 숙달이 너무 필수적이며, 이것만으로는 전투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힘듭니다. 그래서 유저의 적극성을 높여줄 무언가가 꼭 필요합니다. 이때 필요한 게 스트럭쳐 게이지와 포커스 공격입니다. 스트럭쳐 게이지는 [세키로]의 체간 시스템과 비슷합니다. 유저가 공격을 잘하면 적의 스트럭쳐 게이지가 채워지고, 마지막에 테이크 다운으로 상대를 한번에 처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회피나 방어를 제대로 못 해 주인공의 스트럭쳐 게이지가 다 채워지면 자세가 무너집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왜 생겨났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스트럭쳐 게이지는 개발사가 의도한 움직임을 잘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해줍니다. 포커스 공격은 유저가 공격이나 방어, 테이크 다운 등에 성공하여 게이지를 채운 후 사용하는 기술입니다. 적의 패턴을 거의 다 무시하며 발동하기 때문에 전투의 흐름을 유저가 강제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스트럭쳐 게이지와 포커스 공격


  이제 시점을 다뤄보겠습니다. 사실 순차적으로 적어서 그렇지, 원래라면 컨셉이나 플레이 방향성을 기획할 때 정해집니다. 그 정도로 게임에서 카메라는 매우 중요합니다. [시푸]에서 1인칭은 영화 느낌이 안 들고, 여러 명과의 전투에도 부적합합니다. 가장 적당한 건 3인칭입니다. 적이 많을 때는 하이 앵글로 전체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소수일 경우엔 수평 앵글로 상대방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면 전투가 수월할 겁니다. 이때 다른 작품을 참고해봅시다. 인간형 적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격투 게임에선 사이드 뷰로 캐릭터를 좌우에 두었는데 서로 패턴을 파악하기 좋았습니다. 게다가 영화 「올드보이」의 장도리 장면도 같은 사이드 뷰라서 오마주로 넣기도 괜찮습니다. 단, 캐릭터를 멀리서 보여주기 때문에 약한 적을 주로 넣어서 빨리 넘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점에 따라 정보와 몰입도가 달라진다


  [시푸]가 동양 액션 영화를 모티브로 삼은 만큼 오마주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앞서 언급한 「올드보이」도 있고, 어느 보스전은 「킬빌1」의 오렌 이시이 결투 씬 오마주가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장면뿐 아니라 설정에도 무협이나 쿵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푸]에서 가장 개성 있는 컨셉은 주인공이 죽을 때마다 나이를 먹으며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데스 카운트가 누적되어서 한 구간에서 너무 많이 사망하면 늙는 속도가 매우 빨라지는 방식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게임에서 쓰기 좋은 컨셉인데, 10살씩 늙으면 체력이 줄고 공격력이 오른다는 설정도 붙어서 노인 고수가 강하다는 무협 설정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킬을 얻을 때 쓰이는 포인트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 완전히 삭제되는 것도 반복 플레이를 유도하는 것도 있지만, 기술을 얻기 위해 하나씩 차근차근 수련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복수 대상으로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것도 무협 영화를 연상케 한다


  [시푸] 개발자는 컨셉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무협 영화를 현대식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때문인지 결과물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난이도는 너무 높고, 분량은 짧습니다. 하지만 쿵푸 동작이 매우 다양하고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그래서 반복 숙달로 높은 난이도를 이겨내는 걸 좋아하는 분들, 혹은 무협이나 쿵푸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이 게임을 추천합니다. 참고로 손가락이 아플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쿵푸 영화에 나올법한 스킬도 있고, 왼쪽 조이스틱이 자주 쓰이는 커맨드도 있다


  [시푸]는 머리보다 손이 익어야 진행이 편해지는 게임이지만, 공략을 보면 부담감을 다소 덜어낼 수 있습니다. 적마다 하단 공격을 얼마나 하는지만 알아도 죽는 횟수를 매우 줄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공략은 게임이 어려워졌을 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이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게임을 하차하는 한이 있어도 공략을 무조건 안 보는 이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필자는 공략을 보든 안 보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2주 후 이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다룰 게임은 개발자가 1회차 때 공략을 보지 말라고 권했던 작품, 바로 [엘든 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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