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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May 13. 2022

[드래곤 퀘스트11 S] JRPG란 무엇인가

  약 한 달 전 필자는 [다잉 라이트2]를 통해 WRPG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 장르는 테이블에서 친구들과 앉아서 얘기하는 보드게임에서 출발했습니다. TRPG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얘기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의 나 자신을 상상하며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고, 그 당시에는 그것과 전자오락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70년대 북미 개발자들은 TPRG를 컴퓨터로 편하게 즐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80년도부터 CRPG를 개발하며 기본 뼈대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개성을 표현하거나 원하는 외모를 얻을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과 스탯, 말하는 것처럼 자유로운 이동과 스토리 분기, 상상력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 정도로 생생한 세계와의 상호작용 등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보드게임과 북미의 CRPG가 일본으로 넘어가 그들만의 RPG가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그때부터 WRPG와 JRPG라는 명칭이 만들어져 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세대에 들어서면서 비슷한 부분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전에도 얘기했듯 이제 어느 작품이 WRPG인지 JRPG인지 나누는 건 쓸모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각 나라의 문화와 감성이 그 장르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드래곤 퀘스트11 S](이하 드퀘11)에 남아있는 JRPG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JRPG의 대표인 [드퀘]와 [파이널 판타지]


  우선 JRPG가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일본 위키백과에 따르면 TRPG와 WRPG 중 일본에 가장 빨리 도착한 건 TRPG입니다. 다만 70년대 후반에 처음 들어온 건 영문판이었습니다. TRPG를 이미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TRPG 룰북은 대학 전공 서적 수준으로 두껍고 복잡합니다. 이게 영어로 되어있었으니 아마 즐기는 사람이 매우 적었을 겁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시기는 일문판이 출시된 80년대 초중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는 이미 일본에도 RPG를 출시하고 있었으니 JRPG와 TRPG의 관계성을 찾긴 힘들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영향을 많이 준 건 WRPG였습니다. 86년도에 나온 [드래곤 퀘스트1](이하 드퀘1)은 [울티마]의 이동 방식, [위저드리]의 텍스트 서술 등을 따오며 가벼운 RPG로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드퀘1]은 WRPG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 장르를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일본 특유의 문화가 녹아든, JRPG의 기틀을 마련한 건 후속작인 [드래곤 퀘스트2]였습니다.


[드퀘1]에서 주인공 스탯이 이름에 따라 달라지는 건 WRPG의 자기표현을 따라한 것 아닐까


  그 문화는 ‘와和’라고 하는 것입니다. 와和는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자기 일을 수행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가끔 일본에서 라멘 가게가 대를 이어가며 마을에 오랫동안 운영되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라멘을 만드는 건 자기 가문의 역할이니까 자손들도 이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와가 가장 잘 스며든 건 JRPG의 주인공 파티입니다. 각자가 다른 역할을 맡으며, 2명 이상 같은 직업으로 중복되는 일은 [파이어 엠블렘 풍화설월]처럼 파티원이 10명 이상인 경우에야 겨우 보입니다. 그 파티 시스템은 [드퀘2]부터 추가되어 난이도가 올라갔습니다. 3명이 각자 전사, 마법사, 보조 마법에 특화된 올라운더로 구성되어 서로의 영역을 크게 침범하지 습니다. 전작과 비교해 갑자기 어려워졌는데도 대중적인 인기를 크게 얻은 걸로 봐선 아마 문화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RPG를 직역하면 역할 연기 놀이입니다. WRPG에서 연기하는 역할이 '판타지 세계에서의 새로운 나'라면, JRPG에선 '구성원으로서 조화를 이루는 나'입니다.


이때부터 파티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그래서 JRPG 스토리가 주인공의 고향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의 관계에 따라 ‘나’의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 집단에서 어떻게 소속되었는지,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만큼 이 장르에선 캐릭터성이 사건보다 더 중요시됩니다. 인물마다 가슴 아픈 사연을 보여주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건의 시작은 인물 내면의 갈등에서부터 시작하고, 외적 문제와 같이 맞물려 해결되곤 합니다. 대표적으로 일본 만화 「나루토」가 있습니다.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던 나루토는 선생님에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그림자 분신술을 구사하여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림자 분신술은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풀어졌다는 걸 보여주는 동시에 나루토가 집단을 만들어내는 힘을 얻었음을 표현하는 연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라이벌이 힘을 얻는 동기가 상실과 결핍이었다면, 나루토는 대인 관계의 회복입니다. 다시 [드퀘11]로 넘어가서, 이 작품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앞에 다룬 얘기와 다르게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천천히 쌓아갑니다. 몰입을 중요시하는 WRPG의 영향 때문인지 주인공의 개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유저가 빠져들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드퀘] 주인공에게 대사나 감정 표현이 거의 없기로 유명합니다. 괴로운 과거를 안고 등장하는 건 오히려 동료 쪽입니다. 그리고 [드퀘11]은 그걸 각 마을 이야기와 함께 옴니버스 방식으로 차근차근 풀어갑니다. 클리셰가 자주 보이지만 뻔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전개한다기보단 좋은 연출로 감정적 호소를 잘 끌어내며 인물들의 매력을 어필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특유의 반전 요소도 은근히 많아서 언제나 예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 지난 이야기를 다시 알려주는 점도 좋다


  JRPG에서 캐릭터가 중요한 만큼 인물에게 빠져들 만한 요소를 스토리에만 넣어두진 않았습니다. [드퀘11]에선 7명 중 4명을 파티원으로 구성해서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플레이할 수 있는 주인공은 올라운더, 나머지는 어느 정도 역할이 있지만 스킬이나 무기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게임 진행에 지장이 안 가는 선에서, 어떻게든 유저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쓸 수 있게끔 배려한다고 느껴집니다. 도적 특화, 힐러 특화, 보스 전용 등 간섭 못할 역할도 분명 지켜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료에게 말을 걸어서 최근 사건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파티원끼리 돌아다니거나 캠프파이어를 할 때, 혹은 메뉴를 통해 가능합니다. 내용도 짧고 큰 의미가 없는 대화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동료가 그저 나를 따라오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감하는 인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 조심


  하지만 아쉽게도 JRPG 특유의 불편한 점은 몇 개 남아있었습니다. 일단 고전 턴제 전투처럼 적 체력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몬스터 헌터]는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표시하지 않았다고 쳐도, [드퀘11]의 전투에선 마나 등의 자원을 소비하기 때문에 더 답답합니다. 자동 전투일 때는 AI가 알아서 적의 체력을 계산하고 적당히 공격해서 다행이지만, 언제나 좋은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결국 후반부부터 유저가 직접 조작하곤 합니다. 추가로 아쉬웠던 건 존 시스템입니다. 능력치를 몇 턴 동안 상승시켜주는 것인데, 연계 기술로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시스템이지만 랜덤 발동입니다. 유저가 발동시키려면 아이템이나 스킬을 사용해야 하며, 그건 개발자가 단점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기술적 한계 때문에 변수를 확률로 창출하던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특히 극 후반대에 갑자기 난이도가 올라가서 장비나 레벨 노가다를 심하게 요구하는 것도 JRPG 특유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현재 Definitive Edition이 추가되면서 편의성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개선의 여지는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 고집 때문일 수도


  [드퀘]는 JRPG의 시초라고 불릴 정도로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 특유의 단점과 함께 장점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재미는 보장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와 캐릭터도 훌륭했고, 엔딩은 오랜만에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드퀘 시리즈] 작곡가의 극우 성향 때문에 플레이를 망설이시는 분들도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2021년 9월에 사망했습니다. [드퀘11]을 하면서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그를 인간적으로 봤을 때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만약 그 작곡가 때문에 좋은 작품을 미뤄왔던 분들이 계신다면 이번에 한번 [드퀘11]을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오프닝 영상에서 나온 음악은 좋았는데


  [드퀘]는 한국인에게 유명하지만 한글화를 거의 해주지 않는 시리즈였습니다. 게임 등급 위원회가 치를 떠는 도박 시스템, 작곡가의 극우 성향 등이 그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한글화를 많이 해주는 추세입니다. 유명세는 이미 있으며 와和는 한국인들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더욱 활성화될 거라고 예상되는데, 이와 반대로 장르 특유의 어려움 때문에 매니악한 자리에 남아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레이싱, 그것도 시뮬레이션 성향이 강한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필자도 그쪽 장르는 잘 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직접 해보며 무엇이 중요한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음에 다룰 작품은 [포르자 호라이즌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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