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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Jun 10. 2022

[아우터 와일드] 공략을 거부하고 경이로움을 주는 게임

  게임은 장르나 성향에 따라 진행을 도와주는 정도가 다릅니다. 한국 RPG는 맵이 넓고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유저가 원하는 정보를 퀘스트 목록, 미니맵, 혹은 맵에 점선이나 마커 등을 표시하며 다양하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언차티드] 등 메인 스토리만 진행하는 레일 로드 게임에선 기본적으로 유저가 직접 길을 찾아야 하며, 그나마 도와주는 방식도 은연중에 드러낼 뿐입니다. 예를 들어 가야 할 곳에 파트너 NPC를 위치시키거나 주인공의 시선을 그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픈 월드 게임에선 자유도가 최고라는 명목하에 최종 목적지만 알려주고 유저를 방치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다룰 [아우터 와일드](이하 아와)는 어느 곳에도 해당되지 않는 작품입니다. 맵이 넓지만 레일 로드이고,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대신 유저가 추리할 부분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게임입니다. 방식도 과감한 듯 섬세해서 이 게임을 하다 보면 힌트를 어떻게 잘 풀어줘야 유저가 공략 없이 진행할 수 있을지 개발자가 스스로 도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유저도 이에 동조해서 인터넷에 해결법을 두루뭉술하게 남기거나 도움을 기피하는 경향을 자주 보였습니다. 둘 다 [아와]를 플레이할 때 작품 바깥에서 스포일러을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아와]가 게임 내에서 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스포일러는 최대한 주인공이 첫 비행을 하기 전까지 일어난 일만 다루고 있고, 그 이후 일들은 일부 유출될 수 있으니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첫 비행 직전


  [아와]는 타임 루프에 빠진 주인공이 태양계를 모험하며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게임입니다. 어드벤쳐 장르인데다 힌트를 직접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유저에게 게임을 할 원동력, 즉 흥미를 끌어올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다음은 괜찮습니다. 행성마다 개성이 뚜렷해서 모험을 시작만 하면 탐색하고 싶은 욕망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문제는 그 전에, 메인 콘텐츠를 드러내기 전에 흥미를 주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 [아와] 시작 지점에서 꼭 드러내야 하는 것이 2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공의 우주선 발사가 처음이라는 것, 두 번째는 천문대까지 찾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둘 다 첫 우주여행이라는 설렘을 느끼게 해서 한 번쯤은 우주선에 타보고 싶게 만들어줍니다. 특히 두 번째에서 언급된 천문대에는 태양계 위성과 고대 종족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유추하게끔 합니다. 천문대까지 가는 길도 제대로 알려주지는 않지만 워낙 작은 마을이라서 어떻게든 찾을 순 있습니다


솔직히 이 지루한 순간을 오기로 극복했다


  이제 위성을 돌아다닐 차례입니다. 하지만 [아와]는 어딜 먼저 가라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굉장히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정보를 직간접적으로 제공하여 유저의 행동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위성으로 가도 되고, 그냥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도 됩니다. 어디에 도착하든 유저가 길을 헤매지 않도록 행성 크기를 적당히 조절했고, 탐색해야 할 건축물 등을 크게 노출했습니다. 정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여 플레이어의 행동을 유도하는 겁니다. 게다가 모든 행성에 고대 종족의 흔적이 있어서 일지에 유의미한 힌트를 기록하고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 정보는 주인공이 타임 루프를 타도 남아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스포일러로 인해 자세하게 말씀드릴 순 없지만, 탐색이 덜 끝난 곳을 물음표로 표시하거나, 흩어진 정보를 조합하여 새로운 진실이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아와의 콘텐츠 중 절반이 우주 비행, 나머지 절반이 글 읽기


  하지만 그 외의 정보는 모두 다 차단됩니다. 간단한 예시로는 우주복을 들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인터페이스가 아무것도 없지만 우주복만 입으면 헬멧에 주인공의 HP나 미니맵, 이동 방향 등이 표시됩니다. 그때만 보여주는 이유는 그게 추진 장치나 우주에서의 생존 등이 필요할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아와]는 사람을 빛으로 유인하기 위해 그 외의 것들을 전부 까맣게 물들이듯 불필요한 것들을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가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선 문단에서 고대 종족의 자취가 탐색에 도움이 된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의사소통의 흔적입니다. 누군가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댓글과 대댓글을 남긴 형태라서 유저는 거기서 중요한 문장만 걸러내야 합니다. 본 작품에선 컴퓨터가 정보를 저장될 때 불필요한 걸 자동으로 다 삭제해주기 때문에 유저는 편하게 핵심 문구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정보 통제가 적절하게 들어온 만큼 과거의 진실을 추리하기도 편해집니다. 일지가 마인드맵처럼 구성되지만 물음표로 표시된 구간은 유저가 머릿속에서 직소 퍼즐 풀 듯 힌트들을 짜 맞춰야 합니다.


다른 화면으로도 정리해주지만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이 이렇게만 진행되진 않습니다. 유저의 행동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고, 우연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아와]는 그 순간조차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발견의 기쁨으로 느끼도록 만들었습니다. A에서 C로 바로 넘어갔을 때 유저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B, 그것은 바로 자연법칙입니다. 물건이 떨어지고, 얼음에 미끄러지고, 불에 화상을 입는 등 기초적인 상식이 힌트를 막는 벽이자 퍼즐을 푸는 도구가 됩니다. 이건 고대 종족의 흔적으로도 알아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게임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자연 현상이 들어갔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타임 루프 등으로 유저에게 비슷한 행동을 계속 반복시켜서 작지만 모든 것을 관통한 상식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앵그리 버드]나 [포탈]에서 비슷한 퍼즐을 몇 번 반복해서 풀게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여길 돌파하여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쳐보자


  [아와]의 퍼즐은 단순합니다. 단서도 비교적 명확한 편이고, 컴퓨터에 기록된 정보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정답마저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만 유저에게 몰입감과 적극성을 불어넣어 줍니다. 개발자의 의도도 유저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서 거부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와]에서의 깨달음은 경이로울 정도로 강렬합니다. 분명 망망대해에 나침반만 줬을 정도로 불편하지만, 그 나침반으로 세계 일주가 가능한 게임이 [아와]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게임에 액션이 없어도 괜찮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초반 어려움만 어떻게든 극복하면 우주의 신비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이 이상한 게 옥의 티


  [아와]는 정보 수집과 추론으로 충분히 모험을 할 수 있게끔 설계된 작품입니다. 하지만 유저의 행동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고 운에 좌우됩니다. 이러한 변수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게임의 재미도 달라집니다. 특히 운에 큰 영향을 받기로 유명한 카드 게임과 로그라이크는 한번 플레이할 때마다 즐거움의 폭이 큰 편입니다. 하지만 이 두 장르가 합쳐졌을 때 반대로 운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오곤 합니다. 다음에 다룰 게임은 필자의 예상과 크게 달랐던 작품, 바로 [슬레이 더 스파이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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