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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Jun 24. 2022

[슬레이 더 스파이어] 운이 합쳐져 전략이 탄생하다

  가끔 게임의 몇몇 많은 요소가 운에 너무 많이 좌우될 때 유저는 작품이 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모든 게임에서 적용될 수 없습니다. 카드 팩에서 원하는 카드를 얻고, 적재적소의 순간에 필요한 것을 덱에서 뽑고, 마침 상대방이 그걸 막아낼 수단이 없어야 강해질 수 있는 CCG 장르에선 우연은 필수입니다. 로그라이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작할 때마다 맵이 달라지다 보니 앞날을 언제나 예측할 수 없고, 죽으면 모든 장비를 다 잃어버립니다.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그 장르에 자주 뛰어드는 이유도 정교한 완성도를 확률로 간단하게 넘겨버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로그라이크에서 도박성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분명 어쩌다 쾌재를 부르는 순간이 오면 게임이 재미있어집니다. 하지만 [슬레이 더 스파이어](이하 슬더스)의 개발자는 우연에 너무 의존하면 게임이 망가진다고 생각했는지 CCG와 로그라이크를 합쳤는데도 운적 요소를 굉장히 많이 줄인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실제로도 [슬더스]에서 엔딩을 보려면 전략이 매우 중요하며, 랜덤 요소는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슬더스]가 이를 어떻게 해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카드 쓰는 순서도 당연히 중요하다


  CCG는 전략과 운이 결합된 게임입니다. 각 카드의 컨셉이나 시너지에 맞춰 필승 전략을 짜고, 그런 카드를 뽑을 수 있는 운이 필요합니다. 그것만 충분하다면 상황이 잘 풀어졌을 때의 쾌감도 크지만, 사실 게임이란 언제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입니다. 이 우연이란 요소가 [슬더스]에선 변수를 창출하는 정도로만 그칩니다. 예를 들어 원하는 카드를 덱에 넣거나 이벤트를 만나는 것 등등입니다. 그 외로 이 작품을 풀어가기 위해선 전략이 필수로 들어갑니다. 로그라이크 요소로 첨부된, 여러 전투를 겪으며 덱 하나를 강하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슬더스]에서 전투를 끝내면 카드 3장 중 1장을 고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덱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싸움을 반복하다 보면 묘한 규칙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슬더스]는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막마다 유저에게 요구하는 것이 조금씩 다릅니다. 1막은 전투를 빨리 끝낼 수 있는 공격력, 2막은 몸을 지킬 수 있는 방어력, 3막은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완성도입니다. 물론 [슬더스]에서 수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덱의 균형을 맞춰놔야 합니다. 다만 다음 막으로 넘어갈 때 특정 능력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좋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전체적인 게임 흐름이나 등장하는 몬스터에 익숙해진다면 앞서 발생할 상황에 맞춰 카드를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운이 안 좋으면 망할 수 있긴 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슬더스]는 CCG에 반복을 통한 숙련, 과하지 않은 변수 등 로그라이크 요소 중 필요한 것만 적절히 가져온 게임이란 사실입니다.


특정 유물이 있으면 4장으로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것만으론 전략성이 늘어났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다른 CCG인 [유희왕]에서 현재 자주 쓰이는 작전 중 하나는 상대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슬더스]는 앞으로 일어날 것들을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적이 다음에 얼마나 공격하거나 방어할지, 디버프나 버프를 쓸지 가르쳐줍니다. 덕분에 유저는 상대의 행동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계속 세울 수 있습니다. 강화 아이템인 유물에 다양한 페널티가 있지만 적의 패턴을 가리는 건 겨우 하나고, 그마저도 숙련자조차 쓰지 않을 정도로 기피 대상입니다. 그만큼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 건 매우 필수적입니다. 추가로 중요한 건 맵을 통해 이동 루트와 보스 정체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각 층마다 회복이나 상점, 카드 등 보상 종류가 달라서 현재 자기 상황에 따라 길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맵을 알려줘서 난이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스의 정체를 알려주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보스의 첫번재 공격은 유저의 체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체력을 어느 정도 깎아두고 도전하는 게 정석적인 공략이며, 이는 보스를 해치우면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공략을 알았으면 이렇게 안 갔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만 따져도 [슬더스]는 운에 크게 의존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원래 있던 전략을 강화한 것일 뿐, 도박성을 극복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덱을 강화할 기회가 많다고 해도, 앞서 언급했듯 카드 선택지는 결국 운에 맡겨야 합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슬더스]는 덱을 순환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복잡한 건 아니고, 그냥 덱에서 카드를 다 뽑으면 버린 카드 뭉치를 셔플해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슬더스]에선 영향을 크게 주는 시스템입니다. 일반 스토리를 진행할 때 추천되는 덱 두께는 25장 이하, 그중 좋은 카드는 얻기 힘들어서 각자 1장씩 들어갑니다. 매턴 패에 5장 정도 뽑기 때문에 이론상 강력한 카드를 5턴 중 한번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드로우 카드가 많다면 덱의 순환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고, 원하는 카드를 쓸 기회가 많아집니다. CCG에선 드로우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쉽게 해주지 않지만 [슬더스]는 오히려 그걸 장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몬스터는 이를 자주 방해합니다. 쓸모없는 카드를 덱에 자주 넣어서 유저를 괴롭히는 패턴을 많은 적을 통해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슬더스]에선 덱 압축이 중요합니다. 필자도 카드를 추가할 때 필요한 게 없으면 건너뛰기도 합니다. 단, 덱 두께는 취향이나 난이도 등등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해로운 효과로 내 덱에 상태이상 카드를 계속 넣는다


  로그라이크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슬더스]를 하다가 이런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장르에서 특정 성향의 카드만 골라서 가져가면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슬더스]에서도 분명 캐릭터마다 여러 컨셉의 카드와 시너지가 존재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몇몇 카드만 편식하는 건 로그라이크 컨셉 때문에 생긴 편견이자 함정입니다. 앞서 설명해 드렸듯 1막과 2막, 3막마다 상황도 다르고, 보스마다 공략법도 다릅니다. 특히 3막은 각 층마다 성향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덱의 완성도와 균형을 매우 요구합니다. 적 하나에만 강력하게 공격할 수 있거나 방어력에 특화된 덱 등은 3막에서 곤욕을 치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슬더스]는 앞으로 부딪힐 상황을 예상하여 카드를 골라가야 합니다. 매 전투마다 미흡한 점을 발견해야 하고, 필요 없어진 것이 무엇인지 골라가며 덱을 압축해야 합니다. 반영구적 아이템인 유물과 일회용 아이템인 포션도 상황에 따라 사용처에 따라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습니다. 결국 [슬더스]에서 완성해야 하는 건 잡덱입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건 해당 작품의 턴제 전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슬더스]에선 상대의 턴을 빼앗고 휘몰아치는 전개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공수를 꼭 주고받게 설계되어있어서 느리지만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고민 끝에 필요해진 카드가 저번 선택지에서 버린 것들이라면 몇번 더 죽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추월마요덱처럼 강력한 건 제외


  [슬더스]는 완성도 높은 전략 게임입니다. 개발자는 이미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업데이트하지 않지만 아직도 하고 있는 유저를 가끔 볼 수 있습니다. 모드도 많이 활성화되었고, 여러 플랫폼에서도 [슬더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행운으로 얻을 수 있는 희열감이 적을지 몰라도 불운의 절망감은 많이 피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험을 토대로 최고의 작전을 짜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래서 [슬더스]는 퍼즐이나 전략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CCG나 로그라이크를 싫어하는 분들도 한번쯤은 해보시길 바랍니다. 다른 건 몰라도 두뇌 회전만큼은 확실하게 만족시켜 줄 겁니다.


시작할 때부터 전략을 요구한다


  [아우터 와일드]에서도 얘기했었지만 게임은 반복 행동을 강요하여 더 깊은 기믹을 깨우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슬더스]는 그걸 로그라이크 요소로 자연스럽게 추가한 작품입니다. 게다가 이건 퍼즐뿐 아니라 액션에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전투가 단순히 때리고 피하는 것 뿐 아니라 깊은 무언가가 있다는 이해도가 충분하다면, 다른 요소를 다 망쳐도 오로지 액션만으로도 이름을 알릴 수 있습니다. 다음 게임은 마니아층도 사로잡기 힘들지만 전투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인정받은 작품, 바로 [레이지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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