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경험을 전달하기 좋은 매체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소비자가 작품 속 인물에게 몰입을 하는 것이 다른 장르에 비해 강하기 때문입니다. 메시지를 이끌어가는 존재와 일체화되면 그들의 행적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커집니다. 그래서 게임이 유저에게 전달하려는 감정은 원초적이고 공감을 많이 살 수 있는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두 게임은 상반되지만 단순한 감정을 자극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복수심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든 있을 수 있는 감정이기에 유저에게 어필하기도 쉽고, 상대를 잡을 때까지 잘 유지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반성이나 후회,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도 유저에게 잘 전달되는 감정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주인공이 잘못을 반복하여 빌드업으로 쌓아야 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갓 오브 워](2018)는 전작이 있었기에 빨리 시작할 수 있었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2](이하 레데리2)는 주인공 무리의 실패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심도 있는 감정일수록 어필하기 까다롭다
지금까지 부정적인 감정만 언급했지만 긍정적인 것도 분명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가져온 [언래블]과 [쇼트 하이크]가 그러했습니다. 둘 다 가족애를 다루며, [언래블]은 추가로 가족에 대한 추억을, [쇼트 하이크]는 친구와의 우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각 작품마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기에 이번엔 서로 비교해 보며 분석하고자 합니다. 단, 무엇이 더 낫다고 평가할 목적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필자에게는 둘 다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둘 다 완전 다르지만 메시지는 비슷하다
주인공
앞서 말했듯 유저는 게임 속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사건을 진행합니다. 그 인물이 아바타가 아니라 자아가 있는 존재라면, 아무리 특이해도 매력적인 공감대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은 현실에서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일수록 유저는 현실성과 개연성을 따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면 몰입감이 쉽게 깨지고 맙니다. 그래서 [에디스 핀치의 유산]은 실제로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갔지만 최소한 연출이라도 환상적이었습니다.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일수록 예민해진다
[언래블]은 유저의 추억을 건드리는 작품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경험이나 감성을 지닌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해당 작품을 이끌어가는 건 털실 인형 야니입니다. 뜨개질이 가지고 있는, 따스한 이미지가 유저의 호감을 사기 좋으며, 장난감을 가지고 논 사람도 많으니 정감가기도 쉽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언래블]에서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작품 전반적으로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주인공이 왜 생겨났는 지도 모르고, 그의 목적도 은연중에 드러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분위기 때문에 유저 개인의 경험이 게임 스토리에 쉽게 대입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아이들 모션이 달라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쇼트 하이크]는 [언래블]과 다소 다른 방식을 동화 느낌을 줍니다. 일단 주인공은 생각보다 자아가 뚜렷합니다. 이모에게 투덜거리는 아기 새이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욕망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클레어란 이름도 있고 말도 합니다. 이렇게 인물이 구체적인 이유는 해당 작품이 섬 전체를 돌아다니는 3D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언래블]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진만 하면 그만이지만, [쇼트 하이크]에선 전화를 받으려면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는 설정이 있어야 유저가 의미 없이 방황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즉 게임 플레이가 주인공에게 영향을 준 것입니다. 게다가 주변 인물이 주인공을 이름으로 친근하게 부르다 보니 동화 속 이야기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욕망이 정말 뚜렷하다
비주얼
이런 주인공을 담아내는 그래픽은 두 작품 다 차이를 보입니다. 우선 [언래블]은 매우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초반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할머니도 실제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다
그러나 이렇게 그래픽이 현실과 유사하면 몰입감을 줄 수 있지만 특정한 감성을 끌어올리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보통은 그 감성을 위해 [플래그 테일]처럼 특별한 오브젝트를 곳곳에 배치하거나 [레데리2]처럼 특수한 필터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언래블]은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영화 「토이 스토리」처럼 조그마한 주인공이 현실 세계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주인공과 발판이 돋보이기 위해 뒷배경을 원근감으로 흐릿하게 만들어서 마치 장난감이 모험을 떠나는 동화 이야기를 카메라로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줬습니다.
주인공이 아주 아기자기하다
그와 달리 [쇼트 하이크]는 카툰 랜더링에다 도트 필터까지 씌워서 매우 투박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예쁘다기보단 정감 간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특이한 건 주변 오브젝트입니다. 상자나 구멍처럼 상호 작용이 되는 것들은 움직이지 않고, 배경인 풀과 나무 등은 바람에 계속 흔들립니다. 주인공이 있는 섬에서 부는 바람 때문인데, 아마 산 정상에서 상승 기류가 일어난다는 설정과 주인공의 활공 기믹을 어필하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옛날에 유저가 움직이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고 했던 내용과 반대로 한 것입니다. 레벨 디자인을 설계할 때는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는데, [쇼트 하이크]는 그보다 분위기나 암시를 더 중시한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든 눈에 띄게 한다
스토리
[언래블]의 주인공은 스테이지 끝에서 수집한 실타래 추억으로 앨범을 완성합니다. 게임은 봄에서 겨울로 넘어가다가 다시 봄이 오는 구조이며, 각 스테이지를 진행하면 할머니의 추억의 단편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마치 그녀가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상황을 보여주며 간점 체험시키는 것 같습니다. 즉, 할머니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유저 개인의 경험을 쉽게 대입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생에 굴곡이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이라면 희망을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포근한 분위기만 즐길 것 같습니다.
유저마다 느끼는 정도는 분명 다를 듯 하다
[쇼트 하이크]는 반대로 매우 구체적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주인공 클레어는 전화를 받고 싶다는 욕망을 뚜렷하게 어필합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의 전화인지, 애초에 왜 이 섬으로 왔는지를 처음부터 전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저 산을 오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시련을 극복하기만 합니다. 전화는 주인공이 겨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울립니다. 바로 엄마의 연락이었습니다. [쇼트 하이크]는 등산을 하듯 천천히 성장해 가는 아기 새의 이야기를 담은 게임입니다. 부모에게 의존적이기만 했던 클레어는 상승 기류로 섬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를 정도로 용감한 새가 됩니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고 싶어 했던 친구를 도와 다시 등산하기도 합니다. 유저의 경험에 빗대기 힘든 스토리인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성장 이야기가, 그리고 그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는 이야기도 심금을 울리는 건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에 가기 전과 후
게임플레이
[언래블]의 게임 플레이는 주인공의 특징을 잘 살렸습니다. 자기 몸 털실을 주변에 묶어서 점프대를 만들거나, 난간에 매달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심지어 점프에 실패해도 실을 다시 타고 가서 이전 발판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게임 플레이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컨셉이라고 생각합니다.
실 하나로 할 수 있는 게 많다
그러나 특이한 족쇄가 하나 있는데, 바로 주인공이 풀어낼 수 있는 털실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오른쪽으로 진행하다 보면 몸이 앙상해질 정도로 털실이 다 풀어져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새로운 실뭉치로 이어 붙어야 합니다. 퍼즐을 푸는 유저에게 효율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설정이지만, 사실 제대로 긴장감을 주는 요소는 아닙니다. [언래블] 난이도 자체가 낮은 편이고, 한참 뒤까지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도 거의 없습니다.
다 풀어지면 뼈대만 남는다
다른 게임이라면 이걸 개발자의 어리석은 고집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언래블]에선 유저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완성해야 할 앨범의 사진이나 문구는 기억나지 않는 추억처럼 흐려져 있습니다. [언래블]은 그걸 털실 인형 야니가 이어 붙여 되살리는 과정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중한 사람의 관계와 추억은 끊어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어필하기 위해 불필요한 족쇄를 걸어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았다
[쇼트 하이크]는 산을 오르기 위해 금빛 깃털을 모아야 하는 게임입니다. 깃털이 많을수록 절벽을 기어오르거나 점프를 여러 번 하는 등 등산에 도움을 많이 줍니다. 그리고 이걸 모으려면 섬 전체를 돌아다녀야 합니다. 비치 스틱볼이나 경주, 낚시 등 미니 게임을 통해, 그리고 NPC와 퀘스트를 진행하여 깃털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금빛 깃털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낙사도 존재하지 않고, 거의 모든 캐릭터에게 악의가 없으며, 대부분 순진무구합니다. 특히 비치 스틱볼은 공을 최대한 많이 주고받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모든 참가자가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설정이 있을 정도입니다.
참 상냥한 경기다
추천
둘 다 플레이 스타일도 다르고,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도 판이합니다. 하지만 그게 성향을 세세하게 따질 정도로 강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든지 즐기기 편하며, 여차하면 공략을 봐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경험을 중요시하는 분들에게 두 작품 모두 추천합니다. 특히 [쇼트 하이크]를 엔딩 이후로도 플레이하길 권하고 싶습니다. 주인공 클레어는 친구와 함께 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 깃털도 나눠주고, 꿈을 이룬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지만 꽤 감동적인 장면이라서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귀여운 녀석들
다음 편 예고
공감성은 이번 작품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일수록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지만, 그걸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면 사랑을 전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만큼 공감이 적을수록 대상을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그게 극단으로 치달으면 공포심으로 바뀌곤 합니다. 대표적인 예시는 크틀루 신화입니다. 심해와 외국에게 미지의 공포를 느꼈던 러브 크래프트 작가는 다양한 소설을 썼고, 지금도 그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 나오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크틀루 신화와 낚시가 접목된 게임을 가져오려고 합니다. 등대에서 멀어질수록 일상으로 돌아오기 힘들어지는 작품, 바로 드렛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