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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May 19. 2023

[드렛지] 크툴루 신화와 낚시의 조합

  공포 장르는 어느 매체에서든 호불호가 갈리지만, 의외로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걸 좋아하는 이유는 분분합니다. 등장인물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나태해진 생존 본능을 바로잡기 위해, 긴장이 풀린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좋아서 등등 다양하게 있습니다. 공포의 대상도 가지각색이지만 지배 관계와 관련 있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영화 「나이트메어」에선 잠 들었을 때의 악몽 속 살인마가, 「에일리언」에선 강력한 괴물이 등장하여 주인공과의 상하 관계를 더욱 강화합니다. 반대로 어린이와 장난감처럼 제어할 수 있던 존재가 절대적 포식자로 재배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어할 수 없는 존재들


  소설가 러브 크래프트는 안전한 울타리 너머에 있는 미지의 존재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그의 인종차별주의 성향과 해양 생물 혐오증이 합쳐져 크틀루 신화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다른 미디어에서 숱하게 다뤄지는 중입니다. 그중 [드렛지]는 크틀루 신화와 낚시 콘텐츠를 연결한 게임입니다. 러브 크래프트의 성향을 생각하면 정말 절묘하면서, 왜 지금껏 없었나 싶기도 한 조합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드렛지]가 공포 게임으로서 어떤 작품인지 다루고자 합니다. 단, 미스터리 게임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접한 후 플레이하면 재미가 반감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크툴루 신화는 경이로운 존재를 만났을 때 인간의 무력함을 표현하려고 했다




  공포

  인간은 차원이 다를 정도로 경이롭고 이해하기 힘든 상대에게 공포심을 느낀다는 논리로 만들어진 것이 크툴루 신화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등장하는 괴물은 미지의 존재입니다. 그들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말해주는 경우도 잘 없었고, 필자가 읽었던 단편 몇 편에서도 분위기를 중시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명한 것 치고는 좀 지루했다


  [드렛지] 주인공이 처한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큰골마을에서 정신 차린 주인공은 기억을 잃었고, 배가 부서졌는데 시장은 설명도 안 해주며, 대뜸 낚시하고 오라고 합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진행하다 보면 이상한 낌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현상은 특히 밤에 도드라집니다. 처음 시장은 해가 지면 돌아오라고 했지만 밤에만 등장하는 물고기가 있어서 유저는 그 조언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오징어를 잡고 돌아오면 이상하게 암석이 많아졌다고 느껴집니다. 낮에는 없었던 바위가 조명이 비추는 곳 앞에 갑자기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이상한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어둠 너머로 시선이 느껴지고, 누군가 배를 습격하여 물고기를 상하게 하고, 주변에선 주인공의 공포심을 조절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이 현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나의 적이 누구인지, 왜 주인공이 공포에 떨어야 하는지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저 은은한 분위기로 바다 전체가 주인공을 위협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뿐입니다.


원인도, 정체도 모를 무언가




  안식처

  그러나 그 분위기를 후반부까지 강하게 가져가지는 못합니다. 원래 인간은 적응하는 생물입니다. 아무리 다양한 요소로 공포를 조성하려고 해도 서서히 무감각해지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미지의 존재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해결법도 생기면서 초월적 존재가 그저 게임 플레이의 변수로 변하게 됩니다.


적에게 압박감을 덜 느끼게 하는 요소


  이들을 완전히 막아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선착장입니다. 아무리 무섭게 달려드는 괴물도 주인공이 선착장에 도착하면 추격을 멈춥니다. 크툴루 신화라면 말도 안 되지만, 이럴 때는 그냥 게임적 허용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앞서 설명했듯 인간은 아무리 무서운 분위기라도 적응하기 마련입니다. 그 기류가 계속 유지되면 가끔 지겨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강약을 조절하여 긴장감과 안도감을 번갈아 가며 느끼게 해야 합니다.


안도와 절망의 순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이하 바하)에서 게임 데이터를 수동으로 저장할 때 특정 장소에서만 되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적이 습격하지 않는, 특별한 안식처가 있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그러나 유저는 급한 순간를 멈추고 싶을 때 게임 메뉴 화면을 켜기도 합니다. [바하]는 그 게임적 허용을 특정한 공간으로 만들었고, [드렛지]는 그걸 선착장으로 재창조했습니다. 게다가 게임에선 유저가 직접 안식처에서 무서운 공간으로 나아가야 해서 새로운 압박감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낮과 밤이 흐르는 게임이라서 이런 배려(?)가 있다




  인벤토리

  긴장감을 주는 건 인벤토리도 한몫합니다. [드렛지]에는 엔진이나 낚시대를 장비 칸에 넣지 않습니다. 인벤토리 안에 따로 공간이 배정되어 있고, 거기에 넣어야 쓸 수 있습니다.


인벤토리와 장비창이 합쳐져있다


  그리고 [바하]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드렛지]도 물고기나 장비마다 칸을 차지하는 크기나 모양이 다릅니다. 보통 공포 게임에선 아이템에 제약을 둬서 긴장감을 줍니다. 아이템이 적을 때는 총알 하나도 조심히 써야 하고, 진행될수록 인벤토리에 여유를 꼭 남겨둬야 합니다. 중요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표션을 버리는 일이 생기면 앞날이 너무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보관함이 있어서 다행이다


  [드렛지]는 이에 한가지 변화를 추가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배가 어딘가에 부딪히면 인벤토리 칸 일부가 손상됩니다. 즉, 만약 그 칸에 뭔가가 있다면 고장 나거나 유실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거기에 낚시대가 한 칸이라도 있으면 그걸 못 쓰게 되고, 물고기는 사라집니다. 공격당하고 있다면 후속타에 조심해야 하는데, 엔진을 못 쓰게 되어 이동 속도가 떨어지면 배가 전복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구역을 넘어갈수록 배의 속도는 빨라지는데 섬은 미로처럼 복잡해집니다. [드렛지]는 이렇게 크툴루 신화로 주던 공포감이 점점 줄어들 때 게임 플레이의 긴장감을 올려서 전체적인 심리적 압박을 유지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부서진 엔진만큼 이동 속도가 느려진다




  낚시 콘텐츠

  [드렛지]에서 낚시 콘텐츠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낚다 보면 일정 확률로 돌연변이가 나타나는데, 한눈에 봐도 괴상망측한 몰골입니다. 게다가 낚시를 시작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가 되는데 안식처 역할도 돼주지 않아서 괴물의 공격에 무방비해집니다. 그 외에도 이미 설명했던 것들이 낚시 콘텐츠에 잘 스며들어 있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낚시와 인양은 무조건 안전하지 않다


  두 번째는 낚시가 게임 플레이의 토대를 잘 마련해준다는 것입니다. [드렛지]의 무대는 넓은 바다입니다. 다른 지역까지 직접 배를 운전해서 가야하고,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려면 배가 그만큼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주인공의 한계, 특히 인벤토리를 계단식으로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걸 해야 낚시대 칸을 늘려서 더욱 다양한 곳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되고, 엔진 칸을 늘려서 더 먼 곳까지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체감이 좀 되는 편이다


  낚시 콘텐츠만 딱 떼놓고 보면 공포 게임과 어울리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게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드렛지]는 분위기를 중심으로 긴장감을 일으키지만 유저가 적응하면 지루할 뿐입니다. 그래서 배 업그레이드와 낚시에 어느 정도 파고들 요소를 만들었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계속 집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공포 게임치고는 낚시와 육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




  추천

  [드렛지]는 강렬한 점프 스케어보다 은은한 분위기로 공포심을 유발하는 게임입니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포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심심하겠지만, 오히려 압박감에 피로를 느낀 분들이라면 괜찮을 것입니다. 개발자도 그걸 알았는지 의외로 낚시 콘텐츠가 탄탄합니다. 필자도 이 부분에서 조금 놀랐습니다. 배를 강화할 때는 대부분 인양으로 얻은 물품을 소비해야 하고, 이것들의 양이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계속 리스폰되는 곳은 있으나 양이 너무 적습니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섬을 개척해야 하고, 유저가 게임을 계속 진행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끌어나갈 원동력을 스토리에만 의존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공포 요소가 생각보다 약할 수도 있으나 게임 플레이는 탄탄한 편입니다. 그래서 공포 게임을 가볍게 즐길 분, 미스터리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드렛지]를 추천합니다.


도입부가 소설같다




  다음편 예고

  필자는 지금까지 3주씩 금요일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몇 달 뒤면 2년째고, 앞으로도 계속 할 의욕도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글을 쓸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틈틈히 글을 쓰더라도 기존 마감일을 지키긴 힘들 것 같아 당분간은 발행을 비정규적으로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아쉽지만 글을 계속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마감을 신경쓰지 않고 게임을 더 오래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다룰 작품은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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