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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택 Oct 15. 2021

[루도 내러티브 부조화] 플레이와 스토리 사이의 괴리감

  톰 홀랜드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언차티드]의 원작 게임 스토리는 익살스러운 트레져 헌터가 보물 너머에 있는 소중한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해적이나 적들과 싸우는 액션씬도 분명 들어가 있지만, 그건 게임에서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유저가 직접 조작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그 장면은 시청이 아닌 경험의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게임에는 시나리오 주제와 플레이 경험이 서로 충돌하여 생긴 괴리감, 즉 루도 내러티브 부조화가 자주 드러나곤 합니다. 2007년 게임계에 등장하여 지금까지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봉인된 이 논쟁은 지금도 가끔 언급되곤 합니다. 누구는 이 부조화 때문에 게임이 예술의 영역으로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고, 다른 이는 게임에서 재미가 중요하지 그런 거 일일이 신경을 쓰는 유저가 얼마나 되냐고도 합니다. 여기서 필자의 입장을 확실히 정리하자면, 루도 내러티브 부조화는 게임을 바라보는 시점 중 하나로 존중할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물을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는 건 현실적으로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자유주의 비판과 융화되는 게임 플레이를 만들지 못했다고 [바이오 쇼크]가 비판받아 마땅한 건 아닙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에서 서술할 내용은 게임이 루도 내러티브 부조화를 두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입니다.


루도 내러티브 부조화를 대표하는 두 작품


  우선 게임이 그 부조화에 어떻게 봉착했는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초창기 게임은 재미를 주기 위한 상품으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스토리를 넣고 싶어도 기술적 한계 때문에 게임 매뉴얼에서나 간신히 알려줄 수 있을 정도로 제작 우선순위에 밀려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작품 내에서 스토리를 풀어갈 수 있게 됐지만 픽셀 덩어리로 세세한 표현을 하긴 힘들기 때문에 주인공의 감정선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정의감이나 적을 향한 분노와 복수 등 굵직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게임 스토리는 드디어 일러스트나 캐릭터 표정 등을 통해 영화처럼 미묘한 감정까지 드러낼 수 있게 됐고, 그동안 게임 플레이는 자기들만 줄 수 있는 재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며 발전해갔습니다. 즉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가 서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기 때문에 괴리감 또한 커진 것입니다. 이는 게임회사가 소설 작가를 잘 기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게임 개발자는 재미를 위해 몬스터 사냥 플레이를 대량으로 넣기 원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겨우 1명 죽이는데 수십 페이지를 할애하며 미세한 감정선을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생명 경시 사상을 비판하자는 메시지엔 동의하더라도, 그 전에 몇 백 마리의 장애물을 죽이는 행동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초창기에는 다양한 설명이 게임 내부로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는 동물입니다. 메인 콘텐츠가 게임 스토리를 방해한다면 아예 걷기만 하며 주위 사물을 보고 스토리를 풀어가면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게 나온 장르가 바로 워킹 시뮬레이션, 대표작으로는 [에디스 핀치의 유산]이 있습니다. 게임의 주인공 에디스 핀치는 옛날에 살았던 집으로 돌아가 숨겨진 통로를 발견합니다. 그곳은 모두 죽은 가족의 방과 연결되어있었고, 그녀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핀치 가문의 저주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시면 이 게임의 메인 콘텐츠와 스토리는 어드벤쳐 장르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조작에 있습니다. 유저가 버튼을 클릭하면 손으로 물건을 잡고, 마우스를 움직인 방향에 따라 주인공 손이 움직이는 등 플레이어와 각 인물의 행동을 유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조작에서 오는 몰임감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스토리에 강하게 빠져들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으로 이 장르는 메인 콘텐츠와 스토리를 동일시하는데 성공합니다.


연어 통조림 공장에서 직접 조작해야 몬환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하지만 워킹 시뮬레이션 장르는 조작이 너무 단순하여 진짜 게임이냐는 물음을 받곤 합니다. 그래서 여태껏 발전해온 게임 플레이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맞추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펙옵스 더 라인](이하 라인)이 있습니다. [라인]에서 주인공은 두바이 지역 생존자와 자기를 살려준 영웅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도착했지만 알 수 없는 분쟁에 휩싸입니다. 보통 게임에선 그가 상황을 해결하고 전쟁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가집니다. 하지만 [라인]의 주인공 워커는 개선하기는커녕 최악의 선택만 반복하며 민간인까지 학살합니다. 넘으면 안 될 선 위를 걸어가던 그는 시나리오 중반부터 정신까지 불안정해져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고, 게임에 몰입했던 필자는 참전 군인의 PTSD까지 느꼈습니다. 심지어 메뉴 화면이나 로딩창을 통해 유저의 행동을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라인]은 기존 게임들에서 보여준 전쟁 영웅이 얼마나 유치하고 허상에 가까웠는지, 그리고 게임에서 폭력이 진정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게임성 자체는 저평가받고 있지만 게임 스토리 자체에 진지하게 임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해보시길 권유합니다.


게임이 유저를 압박한다.


  [라인]은 분명 괜찮은 게임이지만 유저을 힐난하는 게임이 대중성을 가지긴 힘듭니다. 그래서 이번엔 반대로 스토리를 중심으로 플레이를 진행하는 게임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런 작품들은 폭력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세계관을 종말 직전으로 몰고 갑니다. 예를 들어 문명이 붕괴된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있으며, 대표적으로 도덕성이 붕괴한 인간과 괴물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라스트 오브 어스1]이 있습니다. 그 게임 스토리는 멸망한 세계에서 주인공이 어린아이와 모험하면서 잃어버린 인간성과 사랑을 되찾는 것입니다. 판에 박힌 클리셰지만 그만큼 공감하기 편합니다. 게다가 쓰레기를 조합하여 무기를 만드는 시스템과 상대를 구하기위해 수집품 수집을 뒤로 미루고 약을 찾는 동작 등으로 상황의 몰입감을 계속 높여줍니다. 스토리를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감정을 우선시한 작품으로는 [다크소울3]가 있습니다. 그 게임의 스토리는 멸망의 끝에 몰린 세계를 구하는 것이지만 주인공은 결국 종극을 멈추지 못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도 많은 적이 공격, 방어, 회피, 체력 회복, 심지어 유저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AI도 가지고 있어서 난이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고 [다크소울3]가 유저에게 주는 감정이 절망이나 미련이란 뜻은 아닙니다. 세계가 멸망하지만 그다음 세대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적들이 어려운만큼 공략법도 확실하여 도전 욕구를 자극합니다. 그래서 [다크소울3]가 주는 감정은 믿음과 희망입니다.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닌, 실패해서 끝났다는 절망감으로부터 이기게 해주는 것입니다.


유저 마음속에 무언가를 계속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라스트 오브어스1]과 [다크소울3]가 루도 내러티브 부조화를 완벽하게 극복했다고 보긴 힘듭니다. 모든 게임에서 유저에게 걷기만 시킬 수도, 질타할 수도, 멸망한 세계만 보여줄 수도 없습니다. 루도 내러티브 부조화를 극복하면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어려운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게임의 재미의 본질을 파악해야 하고, 한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게임적 재미와 관련된 특정 행동을 해야 하고, 그 행동이 게임의 메인 콘텐츠로 자리 잡는 동시에 시나리오 주제와 관련이 깊어야 하며, 이를 끌어올 수 있는 구성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생각했을 때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건 [데스 스트랜딩]입니다. 2019년에 출시한 화제작이자 문제작이며, 강한 도전 정신이 깃들어있어서 결과적으로 호불호가 많이 갈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개발자가 '게임의 재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어느 정도 통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선 [데스 스트랜딩]을 통해 게임의 재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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